"검찰 스스로 절차적 정의 어겨…징계 사안"
[더팩트ㅣ김세정 기자]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공소장 유출을 두고 연일 논란이 거세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유출 행위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진상조사를 지시하자 일각에서는 '선택적'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절차적 정의를 강조하며 김학의 출국금지 사건을 수사한 검찰이 스스로 절차를 어기는 모순을 보였다는 비판도 적지않다.
22일 법조계에 따르면 이성윤 지검장 공소장 유출 의혹 감찰에 착수한 대검찰청은 의심 대상자들을 추려 진상조사에 나섰다. 이 지검장의 공소장 내용은 기소 다음 날인 지난 13일 처음 보도됐다. 피고인 측이 받기도 전에 공소장 내용이 공개되면서 박 장관은 대검에 진상조사를 지시했다.
유출된 공소장은 12쪽 분량의 사진 파일 형태다. 이 지검장의 혐의는 물론 박상기·조국 전 법무부 장관 등의 혐의 사실과 정황 등 상세한 내용이 적시됐다. 특히 조국 전 장관은 한 차례도 검찰 조사를 받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논란을 부채질했다.
◆'김학의도 국민' 출금사건 기소한 검찰의 자기모순?
법조계에서는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출국금지 사건으로 절차적 정의를 강조하던 검찰이 스스로 절차를 어겼다는 지적이 나온다.
검찰은 지난 7일 김학의 출금 사건으로 기소된 이규원 검사와 차규근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의 1회 공판준비기일에서 "본질은 김학의가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를 가리는 게 아니라 법 집행기관이 국민을 상대로 위법한 집행을 했는지를 가리는 것이라는 점을 유념해 달라"고 했다.
이같은 발언이 나온 지 일주일도 안 돼 이 지검장 공소장이 검찰 안에서 유출됐다. 공소장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비실명 처리도 되지 않은 상태였다.
서보학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김학의도 국민 한 사람이고 기본권 주체이기 때문에 절차적 위법이 있다면 책임져야 한다는 논리로 검찰이 수사·기소를 했다"면서 "그런데 검찰 자신들이 지켜야 할 적법 절차를 지키지 않았다. 상당히 이율배반적이고 자기모순"이라고 지적했다.
서 교수는 "재판을 하기 전에 공개하는 것이 뭐가 문제냐는 이들도 있겠으나 그동안 검찰은 수사 도중 언론에 피의사실을 흘려 여론을 왜곡하는 행태로 비판을 많이 받았다. 이번 유출도 그 연장선에 있다"며 "이성윤 지검장을 기소하겠다고 예고하는 게 언론에 보도됐다. 또 기소가 결정된 이후에는 검사들의 일방적 시각이 담긴 주장을 퍼뜨려 여론을 조성해 피고인에 선입견이 생길 수 있는 여지를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2019년 12월 시행된 법무부 훈령 '형사사건공개금지 등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공소제기 후 형사사건 내용을 국민에게 알릴 필요가 있으면 공개 가능하다. 다만 피고인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 피고인, 죄명, 공소사실 요지, 공소제기 일시·방식, 수사경위·상황 등에 한해서 공소제기 후 공개할 수 있다.
박범계 장관은 17일 "기소된 피고인이라도 공정한 재판받을 권리 또는 개인정보와 같은 보호해야 할 가치도 있다"며 "수사기밀 같은 보호 법익이 있는데 통칭해 침해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 있다"고 말했다.
특히 박상기·조국 전 장관, 이광철 청와대 민정비서관 등의 혐의 내용이 공개된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유출된 공소장에는 이성윤 지검장 혐의 뿐 아니라 기소 안 된 사람들도 등장한다"며 "이규원 검사나 이 지검장 등 기소된 인물 외에는 형법상 피의사실공표죄 위반이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최진봉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공소장은 검찰의 일방적인 주장이고 재판에서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며 "국민 알 권리를 제공하려면 반론도 제시해줘야 하는데 공소장 내용만 보도되고 국민들은 혐의가 확정된 사실인 줄 알 수 있다. 이게 바로 여론 왜곡"이라고 했다.
◆"형사처벌 가능성 떠나 책임자 징계해야" 목소리도
공소장 유출 감찰에 반발도 크다. 법무부가 '김태현 스토킹 살인 사건' 등 피고인 또는 피의자가 일반인인 사건은 공소장을 공개하면서 이성윤 지검장 등 여권 인사 사건만 문제 삼는 건 '내로남불'이라는 게 비판의 핵심이다.
법무부는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이다. 공개된 재판정에서 공소사실이 드러나게 되는 1회 공판기일 전에는 공소사실 요지만을 제공한다는 설명이다. 그 후에는 공소장 전부를 법령에 따라 요구하는 국회의원에게 보낸다. 실제 '김태현 사건'의 공소장 전문은 제출된 적이 없고, '광주 세 모녀 사건' '스파링 가장 학교폭력 사건'은 1회 공판기일 후에 공소장이 제출됐다.
일각에서는 검찰 내 시스템에서 이 지검장의 공소장을 열람한 사람이 100명이 넘는데 색출 지시는 지나치다는 의견도 나온다. 그러나 인원수를 떠나 열람한 내용을 누군가에게 의도를 가지고 줬다면 그 자체로 문제라는 주장도 있다. 또 공소장 사진 파일이 외부에 퍼진 시각으로 미뤄 유출 의심자는 10~20명으로 압축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박범계 장관은 조심스럽지만 징계 수준을 넘어 형사처벌 가능성도 언급했다. 박 장관은 지난 21일 출근길에 "위법의 소지가 크다. 징계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형사사법정보가 안전하게, 유출되지 않도록 조치할 의무가 있다. 누설하는 경우에는 처벌 조항도 있다"고 강조했다.
박 장관이 언급한 법률은 '형사사법절차 전자화 촉진법'이다. 이 법 14조 3항은 '형사사법업무에 종사하는 사람은 직무상 알게 된 형사사법정보를 누설하거나 권한 없이 처리 또는 타인이 이용하도록 제공하는 등 부당한 목적으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다. 이를 위반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법조계에서는 유출 행위를 공무상 비밀누설로는 보기 어렵다는 의견도 많다. 그러나 형사처벌은 아니더라도 징계 조치로 잘못된 문화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않다.
서초동의 또 다른 변호사는 "공무상 비밀누설에 해당하는지는 따져봐야 하지만 징계 대상인 것은 당연하다"고 했다. 한 법조계 인사도 "국민 알 권리를 강조하는데 그것과 별개의 문제로 규정 등을 어긴 것이 누군지는 파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보학 교수는 "언제까지 검사들이 언론을 이용해 여론을 조작하는 행태를 용납할 것인가"라며 "국민 알 권리라고 그냥 넘어갈 사안은 아니다. 국민 알 권리는 계속 묻히는 것이 아니라 재판이 시작되면 금방 충족되는 문제"라고 강조했다.
sejungkim@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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