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약처 책임 크게 본 법원…"인허가와 합격은 다르다"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이른바 '인보사 사태'에 연루된 코오롱생명과학 임원들이 식품의약품안전처에 허위 자료를 제출한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법원은 이들이 식약처에 '오인·착각을 유발할 자료를 제출한 건 맞지만 형사 처벌할 수 없다'라고 봤다. 허위 자료를 제출한 혐의 내용이 사실로 드러났는데도 유죄 선고를 피한 이유는 무엇일까.
25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3부(권성수 김선희 임정엽 부장판사)는 최근 위계공무집행방해와 특정경제범죄법상 사기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코오롱생명과학 이사 조모 씨와 상무 김모 씨에게, '인보사 케이주' 품목 허가 의혹과 직결된 혐의인 위계공무집행방해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둘 다 잘못했지만 식약처가 '더 잘못했다'
공소사실에 따르면 코오롱 측은 2005년 8월 인보사 2액 세포를 투약한 누드마우스 10마리 중 3마리에서 악성 종양이 발생한 실험 결과를 통보받았다. 하지만 품목허가 지연을 우려한 코오롱 측은 '누드마우스 종양 형성 시험' 항목 자체를 삭제하고 '누드마우스에 2액 투여 시 종양 조직 형성 가능성이 없다'는 취지의 허위 내용을 기재한 CTD(의약품 국제공통기술문서)를 식약처에 제출했다.
허위 내용으로 조사된 부분은 크게 △종양 원성 실험 △유전자 삽입 위치 △방사선 조사량으로 나뉜다. 이 중 유전자 삽입 위치와 방사선 조사량에 대해 재판부는 각각 "반드시 식약처에 보고해야 할 내용으로 보기 어렵다", "품목허가심사 과정에서 특별히 중요하다고 볼 수 없다" 등의 이유로 위계 행위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쟁점은 누드마우스로 실험한 종양 원성 실험이다. 누드마우스는 털이 전혀 없는 엷은 분홍색 피부를 가진 생쥐로 암세포를 이식했을 때 움직임과 발달 정도를 구체적으로 살필 수 있다.
재판부는 코오롱 측에서 누드마우스 실험 내용을 삭제한 것은 식약처 심사 업무를 방해할 만한 자료에 해당하고, 피고인들에게 식약처를 속일 고의성도 있었다고 판시했다.
"식약처는 피고인들이 이 사건 실험 결과를 알리지 않아 안전성 평가에서 불충분한 정보를 토대로 평가한 것으로 보이는 점 등에 비춰볼 때 이 사건 실험 결과 미제출 행위로 식약처 품목허가 심사 담당 공무원으로 하여금 심사 업무와 관련해 오인·착각·부지를 유발했다고 인정합니다. 피고인들에게 적어도 공무집행을 방해할 미필적 고의가 있었다는 점도 여러 정황에 비춰 인정합니다." (2021. 02. 19 조 씨 등 선고 공판에서)
허위 자료로 공소장에 적시된 유전자 삽입 위치·방사선 조사량과 달리 누드마우스 실험 결과는 식약처에 알릴 필요성·중요성이 있었다고 분석했다.
"누드마우스 실험 결과는 세포기질 가이드라인 해석과 실험 내용의 중요성에 비춰볼 때 식약처에 알릴 필요성이 있는 자료로 봄이 상당하다. (중략) 실험 결과 요약 내용을 삭제하고 실험 결과 자체를 식약처에 제출·보고하지 않은 피고인들의 행위는 식약처에 정확한 내용을 고지할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조 씨 등 사건 판결문에서)
식약처에 알려야 할 필요성·중요성이 상당한 내용을 고의로 빠뜨리거나 허위로 기재한 사실이 인정된다는 취지다. 하지만 뒤이은 설명에 검찰과 피고인의 희비는 엇갈렸다.
"추론에 의한 인허가 처분을 내릴 때는 추론 사유가 사실과 부합하지 않음을 전제로 인허가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행정관청이 그러한 사실을 확인하지 않은 채 허가했다면 이것은 추론자의 위계가 아니라 행정관청의 불충분한 심사에 기인한 것으로 형법상 위계공무집행방해를 구성하지 않는다는 것이 우리 법원의 일관적 측면입니다." (2021. 02. 19 조 씨 등 선고 공판에서)
피고인들이 잘못된 자료를 제출한 건 맞지만 이를 제대로 심사하지 않은 식약처, 즉 행정관청의 책임이 더 크다는 판단이다. 이같은 법원의 입장은 대법원 판례상 30여년째 유지되고 있다.
◆행정관청과 학교의 차이가 희비 갈랐다
공교롭게도 이 재판부는 지난해 12월 자녀의 허위 인턴 확인서를 제출해 해당 학교의 입학 사정 업무를 방해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정경심 동양대 교수에게 징역 4년을 선고했다. 정 교수 혐의 중 하나도 위계공무집행방해 였다.
학교 역시 지원자 측에서 제출한 자료를 꼼꼼히 살피지 않은 책임이 큰 건 아닐까. 하지만 학교를 바라보는 법원의 시각은 행정관청에 대한 그것과 조금 다르다.
"서류평가를 담당한 평가위원들은 지원자들이 제출한 자기소개서의 기재 내용이 사실이라는 전제 아래 서류평가 점수를 줬고, 평가위원들이 서류평가 단계에서 자기소개서 기재 내용이 진실인지를 확인하는 절차는 없었다. (중략) 따라서 자기소개서 및 증빙서류 기재 내용이 허위일 경우 평가가 부정확하게 이뤄질 수밖에 없다." (정 교수 사건 판결문에서)
'허가 처분을 내릴 때는 추론 사유가 사실과 부합하지 않음을 전제로 인허가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라는 식약처 심사 과정에 대한 시각과 출발점부터 달랐다.
행정관청은 제출된 자료 내용이 허위일 수도 있음을 감안하고 엄격히 심사해야 하지만, 학교는 '진실성'을 심사하는 기관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학교는 제출된 자료를 토대로 학생의 자질을 평가하는 기관이기 때문에 지원자 측에서 허위 자료를 제출했다면 그 평가 업무를 방해한 셈이 된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인허가와 합격의 차이"라며 "행정관청은 제출된 자료가 허위일 수도 있다는 점을 감안하고 면밀히 심사할 권한과 의무가 있고 그런 기능도 갖추고 있다. 허위 자료를 기반으로 인허가 결정을 내렸다면, 공무 집행이 방해됐다기보다 스스로 공무를 소홀히 한 꼴"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반면 학교는 제출된 자료의 진위를 판단하기보다 해당 자료가 진실임을 전제로 학생의 역량을 평가한다"며 "행정관청보다 자료의 진위를 확인할 의무나 권한이 약하고, 현실적으로 그런 기능도 갖추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학교보다는 지원자에게 책임이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덜 잘못했다고' 책임 벗을 수 있을까
결국 1심 판결대로라면 인보사 사태의 시발점으로 볼 수 있는 허위 자료 제출에 대한 법적 책임은 누구도 지지 않게 된다. 허위 자료를 제출했는데도 처벌을 피하는 것이 정당할까.
인보사 피해자들을 대리하는 엄태섭 변호사(법무법인 오킴스)는 2심에서 코오롱 측의 자료 은폐·조작 정도가 심해 식약처에서도 오해할 수준이라고 인정한다면 이들을 위계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처벌할 수 있다고 바라봤다.
엄 변호사는 "(1심 판결은) 국민 보건의 최후의 보루로서 제출된 자료의 진위를 확인해야 할 식약처가 이 정도 속임수에 넘어갔다는 것을 질책한 판결이다. (식약처가 아닌) 다른 기관이었다면 유죄 판단을 받았을 것"이라며 "결국은 정도의 문제다. 2심에서 피고인들의 적극적 기망 행위로 식약처가 '속아 넘어갈 만 했다'고 판단한다면 1심의 무죄 판단이 뒤집힐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검찰은 판결 선고 당일 항소했다. 2심에서 코오롱 측의 은폐·조작 정도와 이에 따른 식약처의 피해를 얼마나 입증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엄 변호사는 허위 자료 제출을 둘러싼 사실관계와 고의성을 인정한 1심 재판 내용과 자료 등을 활용해 같은 법원에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코오롱 측의 과실을 주장할 예정이다.
ilrao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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