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권조사 결과 발표…"비서실, 묵인·방조는 아니나 성인지 감수성 부족"
[더팩트ㅣ이헌일 기자] 국가인권위원회가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비서에게 한 행위는 성희롱에 해당한다는 결론을 내놓았다.
또 비서실 직원들이 이런 행위를 고의로 묵인·방조한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지만, "성인지 감수성이 낮았다"고 지적했다.
인권위는 25일 오후 최영애 위원장과 상임위원 3명, 비상임위원 7명 등 11명이 참석한 가운데 제2차 전원위원회를 열고 이같은 내용이 담긴 박 전 시장에 대한 직권조사 안건을 의결했다.
인권위는 전원위 결과 박 전 시장의 성희롱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인권위는 "성적 언동의 사실 여부와 관련해 피해자의 휴대전화 디지털 포렌식 등 증거자료 및 박 전 시장의 행위가 발생했을 당시 이를 피해자로부터 들었다거나 메시지를 직접 보았다는 참고인들의 진술, 피해자 진술의 구체성과 일관성 등에 근거할 때 박 전 시장이 늦은 밤 시간 피해자에게 부적절한 메시지와 사진, 이모티콘을 보내고, 집무실에서 네일아트한 손톱과 손을 만졌다는 피해자의 주장은 사실로 인정 가능하다"며 "이와 같은 박 전 시장의 행위는 성적 굴욕감 또는 혐오감을 느끼게 하는 성적 언동으로 성희롱에 해당한다"고 명시했다.
국가인권위원회법에 따른 '성희롱'은 업무, 고용, 그 밖의 관계에서 공공기관의 종사자, 사용자 또는 근로자가 그 직위를 이용하거나 업무 등과 관련해 성적 언동 등으로 성적 굴욕감·혐오감을 느끼게 하거나 고용상의 불이익을 주는 행위다.
인권위는 피해자의 주장 외에 행위 발생 당시 이를 들었다는 참고인의 진술이 없거나 휴대전화 메시지 등 입증 자료가 없는 경우 사실로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성희롱 인정은 성적 언동의 수위나 빈도가 아니라 공적 영역에서 업무관련성 및 성적 언동이 있었는지 여부가 관건이므로, 이 사실 만으로도 성희롱으로 판단하기에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피해자의 전보 등 조치 요청에도 다른 비서실 직원들이 성추행을 묵인·방조했다는 의혹은 인정하기 어렵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묵인 또는 방조는 참고인들이 박시장의 성희롱 행위를 알고도 침묵했거나, 박 전 시장의 성희롱 행위가 용이하도록 도와줬다는 의미로, 이는 참고인들이 박시장의 성희롱 행위를 인지했다는 점을 전제로 한다.
이런 전제 아래 인권위는 "전보와 관련해 피해자가 비서실 근무 초기부터 비서실 업무가 힘들다며 전보 요청을 한 사실 및 상급자들이 잔류를 권유한 것은 사실로 보인다"면서도 "그러나 동료 및 상급자들이 피해자의 전보 요청을 박시장의 성희롱 때문이라고 인지했다는 정황은 파악되지 않는다"고 결론을 내렸다.
다만 비서실 직원들의 성인지 감수성이 부족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인권위는 "지자체장을 보좌하는 비서실이 성희롱의 속성 및 위계 구조 등에 대해 인식하지 못하고, 두 사람의 관계를 친밀한 관계라고만 바라본 낮은 성인지 감수성은 문제라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박 전 시장이 피소 사실을 미리 인지한 것과 관련, 경찰, 검찰, 청와대 등의 피소사실 유출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확인이 어려웠다"는 입장이다. 경찰청, 검찰청, 청와대 등 관계기관은 수사 중이거나 보안 등을 이유로 자료를 제출하지 않았고, 박시장의 휴대전화 디지털 포렌식 결과는 입수하지 못했으며, 유력한 참고인들 또한 수사 중이라는 이유로 답변을 하지 않는 등 조사에 한계가 있었다는 설명이다.
인권위는 "성희롱은 권력 관계에서 발생한다. 통상적으로 권력의 우위에 있는 남성이 여성에게, 직장 내 높은 지위에 있는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성희롱을 행사하는 양상으로 드러난다"며 "박 전 시장은 9년 동안 시장으로 재임하면서 차기 대권후보로 거론되는 유력한 정치인이었던 반면 피해자는 하위직급 공무원으로, 두 사람이 권력관계 혹은 지위에 따른 위계관계라는 것은 명확하고, 이러한 위계와 성역할 고정관념에 기반한 조직 문화 속에서 성희롱은 언제든 발생할 개연성이 있으며, 이번 사건도 예외가 아니었다"고 밝혔다.
honey@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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