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당못할 권한 내려놔야" 일부 성찰 목소리도
[더팩트ㅣ박나영 기자] 윤석열 검찰총장의 직무배제 조치에 전국 검사들이 기수별, 직급별로 집단 반발하면서 역사상 '5번째 '검란(檢亂)'이 연출되고 있다. 이번 검사의 집단반발은 2013년 채동욱 검찰총장의 사퇴에 평검사들의 회의를 소집한 이후 7년 만이다.
'검란'은 2003년 노무현 정부의 검찰개혁에 검사들이 집단반발하면서 생겨난 말이다. 정권 교체 후에도 총장직을 유지하던 김각영 전 검찰총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전국 평검사 50명과 생방송으로 진행한 공개 토론 '검사와의 대화'에서 검찰 수뇌부에 강한 불신을 내보이자 사표를 던졌다.
당시 검찰은 검찰총장보다 사법연수원 10기 후배에 비검사·여성인 강금실 법무부 장관이 개혁 드라이브를 걸자 '서열 파괴'에 대한 내부 반발이 극에 이르렀다. 검사들은 수차례 긴급 회의를 열고 파격인사에 반대한다는 뜻을 전달했지만 강 장관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이후 검사장급 이상 간부들의 줄사표가 이어지는 등 거센 반발이 이어졌다.
2005년에는 천정배 법무부 장관이 헌정사상 최초 검찰총장에게 수사지휘권을 발동하면서 '검란' 사태가 있었다. 당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수사를 받던 강정구 교수를 서울중앙지검 공안부가 구속기소할 움직임을 보이자 김종빈 당시 검찰총장에게 '불구속 수사'를 지휘했다. 이에 전국 검사들이 '정치적 중립성이 훼손됐다'며 집단 반발했다. 김 전 총장은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를 거부해야한다는 검사들과 뜻을 함께한다는 의미로 사표를 던졌다.
이명박 정부에서도 '검찰개혁'을 놓고 2차례 검란 사태가 있었다. 2011년 6월 경찰의 수사 개시 권한을 인정하는 내용의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자 전국 각지에서 검사들이 평검사 회의 열며 크게 반발했다. 당시 검·경 수사권 조정 협상을 주도한 대검 기조부장 등 검찰 고위 간부들이 연이어 사퇴했고 김준규 당시 검찰총장도 임기만료를 불과 49일 남겨두고 사퇴했다.
2012년에는 한상대 전 검찰총장이 검찰개혁안을 두고 내부 반대세력과 대치하다 불명예 퇴진하면서 '검란'이 벌어졌다. 당시 연이은 검사 비리사건으로 여론이 좋지 않자 한 전 총장은 대검 중수부 폐지 등을 골자로 한 검찰개혁안을 추진하려했다. 중수부 폐지에 반기를 든 '특수통' 검사들의 주도로 집단반발이 일어났고 일선 검사들은 평검사 회의를 열고 연판장을 돌려 항의를 표했다. 최재경 당시 중수부장과의 극심한 대립 끝에 한 전 총장이 사표를 내며 일단락된 바 있다.
이듬해인 2013년에는 채동욱 전 검찰총장 시절에는 총장의 사퇴를 반대하는 검란 사태가 있었다. 2012년 대선 당시 벌어진 ‘국가정보원의 댓글 조작’ 사건 수사를 이끌던 채 전 총장은 갑작스러운 '혼외자 의혹'에 휘말렸다. 당시 법무부 장관이 사상 초유의 현직 검찰총장 감찰 지시를 내리면서 직을 내려놨다.
윤 총장 직무정지로 발생된 이번 '검란'에 대해 전례 없는 반발 조짐이라는 평이 나온다. 직무정지 명령 다음날 평검사인 대검 34기 검찰연구관들로 시작된 항의 성명이 조상철 서울고검장 등 고검장 6명, 대검 중간간부 27명 등 상위 직급으로 확산되며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어서다. 법무부와 검찰총장이 대립각을 세운다는 점에서 천정배 법무부 장관 당시와 비교되지만 반발 규모가 훨씬 크다.
윤 총장이 사퇴할 의사가 전혀 없다는 점에서 대치 국면이 장기화될 가능성도 높다. 지금까지는 댓글과 성명서로 나타나던 반발이 변수가 많은 사태 전개에 따라 어떤 양상으로 나아갈지도 주목된다.
이에 지난 27일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입장문을 내고 "검찰조직이 받았을 충격과 당혹스러움을 충분히 이해한다, 직무에 전념해달라"며 검찰 '달래기'에 나서기도 했다.
'검란'의 규모를 따지기에 앞서 검찰이 성찰할 때가 됐다는 목소리도 있다. 임은정 대검 감찰정책연구관은 지난 2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그릇에 넘치는 권한이라 감당치 못하니 넘치기 마련이고, 부끄러움을 알고 현실을 직시하는 지혜가 있었다면 이렇게까지 안 되었을 테니 부딪치고 깨어지는 파열음이 요란할 밖"이라고 현재 추 장관과 윤 총장의 대치 상황을 해석했다.
그는 "우리 검찰이 감당하지 못하는 권한을 흔쾌히 내려놓고 있어야 할 자리로 물러서는 뒷모습이 일몰의 장엄함까지는 아니어도 너무 흉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했었습니다만, 그럴 리 없다는 것 역시 잘 알고 있다"고 적었다.
추 장관 또한 검찰에 "이해한다"는 메시지와 함께 "이해하기 어렵다"는 메시지도 보냈다. 추 장관은 검사들이 '판사 사찰 문건'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검사들이 이번 조치에 대해 여러 의견을 나누고 입장을 발표하는 가운데 '판사 불법사찰 문건'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고 당연시 하는 듯한 태도를 보고 너무나 큰 인식의 간극에 당혹감을 넘어 또 다른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bohena@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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