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법관이 감내 어려울 정도로 수사" 주장 …내년초 결심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에 연루돼 기소된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 측은 항소심 재판에서 "25년 경력 법관으로서 이 사건은 공소기각 판결을 내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위법한 수사로 무리한 기소를 감행했다는 이유다.
서울고법 형사5부(윤강열 장철익 김용하 부장판사)는 12일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와 공무상비밀누설 등 혐의로 기소된 유 전 연구관의 두 번째 항소심 공판을 열었다.
유 전 연구관은 2016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 근무 당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지시를 받고 박근혜 전 대통령의 '비선 의료진' 박채윤 씨의 특허소송 상고심 진행 상황을 정리한 '사안 요약' 문건을 박 모 재판연구관에게 작성하게 한 혐의를 받는다.
지난 1월 1심 재판부는 직권남용 등 모든 혐의에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은 지난달 8일 항소심 첫 공판에서 "사법부가 소송당사자를 위해 사건 진행 경과 및 처리 계획을 알려줘 재판의 공정성과 국민 신뢰를 심각하게 훼손했다"고 지적했다. 원심 재판부를 향해 "검찰에 편견을 가진 건 아닌지 우려될 정도로 추측성 판단을 했다"며 정면 비판하기도 했다.
이날 재판에서는 유 전 연구관 측이 검찰을 향해 날을 세웠다. 유 전 연구관 측은 법관 출신 변호사로서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위헌적 수사를 벌였다며, 무죄를 넘어 '공소기각 판결'을 주장했다.
유 전 연구관 측 변호인은 "25년 경력의 법관 출신 피고인이 이 사건에 대해 공소기각 판결이 내려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건 이유가 있다"며 "관행이라는 이유로 이뤄진 위헌적 수사 행태는 법관 출신 변호사가 감내하기 어려울 정도였다"고 밝혔다.
변호인은 "검찰은 압수수색 영장이 기각된 뒤 비공식적 면담 형식을 빌려 업무수첩부터 하드디스크까지 모든 자료를 임의제출하도록 요구했다. 이 과정에서 플리바게닝을 제안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플리바게닝(유죄협상제도)이란 피의자가 혐의를 인정하는 조건으로 검찰이 가벼운 범죄로 기소하거나 형량을 낮춰 주는 제도다. 국내에서는 원칙적으로 위법이다.
또 변호인은 "피고인은 사법농단 관계자 중 유일하게 포토라인에 두 번 세워져, 망신주기식 사진 촬영을 당했다"며 "장시간 변호인 참여권을 제한당한 채 망신을 당하고 수치스러운 상태에서 피의자 신문이 이뤄졌다"라고도 말했다.
그러면서 "일각에서 피고인이 현직에 있을 때 함구하다가, 정작 수사를 받게 되니 (수사의 문제점을) 제시한다며 순수성을 의심하는데, 그동안 피고인은 위법 수사의 문제점을 논문으로 지적해왔다"고 반박했다.
법리적으로도 유 전 연구관의 공소사실은 모두 무죄라고 주장했다.
박 전 대통령의 비선 의료진 상고심 진행 상황을 정리한 보고서를 만들었다는 혐의에는 "임 전 차장은 이 문건과 관련해 피고인과 논의한 적 없다고 증언했고, 보고서 작성을 지시받았다는 박 전 연구관도 피고인이 지시했는지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고 변론했다.
이어 "(검찰의 증거는) 임 전 차장의 USB에 이 문건이 피고인의 이름으로 저장됐고, 임 전 차장이 작성자의 이름을 파일명으로 쓰는 습관이 있다는 것뿐"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변호인에 따르면 임 전 차장의 USB에서 발견된 8600여 건의 파일 중 '유해용'이라는 파일명으로 저장된 문건은 총 4건인데, 문제의 사안 요약 문건을 포함해 2건의 파일은 유 전 연구관이 관여했는지 명확하지 않다고 한다.
유 전 연구관은 2014~2017년 대법원 선임·수석재판연구관으로 재직하면서 확보한 재판연구관 검토 보고서 등을 반출해 변호사 영업에 활용한 혐의(절도,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개인정보 보호법 위반)도 받고 있다.
변호인은 반출한 보고서는 유 전 연구관이 직접 작성해 소지한 것이기 때문에 절도 등의 범죄가 성립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변호인은 "재판연구관이 자신이 직접 작성한 보고서를 가지고 나가는 건 일종의 관행"이라며 "심지어 이수진 국회의원도 본인이 재판연구관 시절 작성한 검토보고서를 기자에게 보여줬는데, 검찰의 논리대로면 이 의원도 기소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날 검찰은 공소사실상 유 전 연구관과 공모관계에 있는 임 전 차장을 증인으로 신청했다. 유 전 연구관에게 문건 작성을 지시받은 것으로 조사된 박 전 연구관에 대한 증인신문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외에도 검찰 수사의 적법성을 입증하기 위해 이모 수사관 등을 증인으로 신청했다.
재판부는 임 전 차장과 박 전 연구관에 대한 증인 신청은 반려했다. 임 전 차장은 이미 1심에서 증인으로 나왔고, 이 사건으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기 때문에 증언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다. 박 전 연구관도 이미 참고인 조사가 충분히 이뤄져 신문 필요성이 적다고 판단했다.
다만 이 수사관에 대해선 "압수수색의 적법성을 판단할 핵심 증인으로서 증거조사가 필요하다"며 채택했다.
재판부는 다음 달 22일 오후 3시 20분 이 수사관을 증인으로 불러 신문하기로 했다. 증인 불출석 등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다음 해 7일 변론을 종결하고 결심 공판을 열 전망이다.
ilrao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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