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저한 감사 지시일 뿐"…'나상훈 보고서'는 직무상 비밀 인정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수사기밀을 법원행정처에 빼돌린 의혹을 받는 이태종 전 서울서부지방법원장이 무죄를 선고받았다. 사법농단 의혹으로 기소된 법관들 중 4번째이자 6명째 무죄 판결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6부(김래니 부장판사)는 18일 공무상비밀누설,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 전 법원장의 선고 공판을 열고 이같이 판결했다.
이 전 법원장은 2016년 10∼11월 서울서부지법 집행관 사무소 직원들이 검찰 수사를 받게 되자, 이들의 검찰 진술과 영장 사본 등을 확보해 나상훈 당시 서울서부지법 기획법관을 거쳐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에게 유출한 혐의(공무상비밀누설)를 받는다. 이 과정에서 법원 사무국장 등에게 검찰의 수사 상황을 파악하게 하는 등 의무없는 일을 시킨 혐의(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도 있다.
재판부는 이 전 법원장으로선 내부 비리에 대한 철저한 감사 지시를 내렸을 뿐, 검찰 수사를 저지하거나 의혹을 은폐할 목적은 없었다고 판단했다.
김래니 부장판사는 "사건 기록상 피고인이 임 전 차장에게 위법한 지시나 부탁을 받았다고 인정할 자료가 없고, 수사 확대 저지를 위해 어떠한 조치도 실행한 사실이 없다"며 "법원장으로서 철저한 감사 지시를 한 것만으로 보이고, 법원의 자의적 영장 기각 등 수사를 저지한 상황도 발견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사건 관계자들이 수사기관에서 피고인의 수사상황 파악 지시를 받았다고 진술한 부분도 있지만, 법정에 와선 피고인이 법원장으로서 감사를 지시했을 뿐이라고 증언했다. 당시 상황과 업무분장 등을 고려할 때 이들의 법정 진술이 더 믿을만 하다고 판단된다"고 덧붙였다.
다만 나상훈 판사가 임 전 차장에게 유출한 보고서는 형법상 직무상 비밀에 속한다고 판시했다. 김 부장판사는 "당시 서울서부지법 기획법관 나상훈이 누설한 보고 문건에는 수사기관이 어떠한 자료를 확보했고, 수사 책임자의 의견이 무엇인지 등 직무상 취득한 비밀이 일부 포함돼 있다"며 "이같은 정보가 누설될 경우 수사기관의 범죄수사기능에 장애를 초래할 위험이 있다"고 봤다. 그러면서도 "나상훈의 보고 행위는 피고인 지시가 아닌 스스로 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종합하면 재판부는 나 판사가 임 전 차장에 보고서를 건넨 행위는 직무상비밀누설이지만, 이 행위를 하는데 이 전 법원장이 지시를 내리는 등 공모한 점은 없다고 판단했다. 다른 법원 관계자들에게도 위법한 지시를 내려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한 점을 인정할 수 없다며 이 전 법원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피고인석에 서서 판결을 듣던 이 전 법원장은 시종일관 담담한 모습이었다. 재판부가 무죄를 선고한 뒤 "판결 공시에 동의하시냐"고 묻자 "동의합니다"라고 짧게 대답한 뒤 변호인단과 법정을 나섰다.
선고 공판이 끝난 뒤 취재진과 만난 이 전 법원장은 "올바른 판단을 해주신 재판장님께 감사드린다"며 "30년 넘게 일선 법원에서 누구보다 치열하게 재판한 한 법관의 훼손된 명예가 조금이나마 회복될 수 있어서 기쁘다"고 밝혔다.
'앞으로 재판 업무에 어떤 생각으로 임하실 것이냐' 등의 질문이 이어졌지만 "그동안 이 사건 취재하느라 고생 많으셨다"며 확답을 피하고 법원을 떠났다.
앞서 법원은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 신광렬·조의연·성창호 부장판사, 임성근 부장판사 등 세 건의 사법농단 사건에서 5명 모두에 무죄를 선고한 바 있다.
ilrao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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