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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F이슈] 청와대는 질책, 대법원은 역정…시달렸던 외교부

  • 사회 | 2020-08-20 00:00
19일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 처장 등의 재판에 외교부 간부가 증인으로 나와
19일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 처장 등의 재판에 외교부 간부가 증인으로 나와 "의견서 제출을 독촉 받았다"고 증언했다. 사진은 지난 6월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속행 공판에 출석한 양 전 원장의 모습. /이선화 기자

'사법농단' 재판 선 외교부 간부…"의견서 독촉 받았다"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외교부 간부가 '양승태 대법원' 시절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 사건 관련 의견서를 제출하라며 청와대와 법원행정처에 질책을 들었다고 법정에서 증언했다. 당시 대법원은 외교부 의견서 제출의 당위성을 얻기 위해 관련 규정을 신설한 것으로 조사됐는데, 이와 관련해서는 "행정기관이 법원에 의견서를 제출하는 건 새로운 일이 아니다"라고 의미를 축소했다.

19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박남천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 고영한 전 대법관의 속행 공판에 김인철 외교부 대변인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김 대변인의 사법행정권 남용 사건 재판 출석은 처음이 아니다. 그는 지난해 5월 사태의 '키맨'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재판에도 증인으로 나왔다. 김 대변인은 국제법률국장을 지낼 당시 임 전 차장이 전화로 의견서 제출을 독촉하며 '역정'을 냈고, "사람이 어떻게 이럴까" 싶을 정도로 불쾌했다고 증언했다.

김 대변인이 불쾌한 전화를 받은 뒷배경에는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의 한 면을 차지하는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 사건 재판 거래가 있다. 당시 외교부는 대법원과 청와대 사이에서 '중간자' 역할을 한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 조사에 따르면 대법원은 법관 해외 공관 파견 확대 등 숙원 사업을 위해 박근혜 정부 당시 청와대의 도움이 필요했다. 당시 청와대는 박 전 대통령의 부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 정권 당시 맺은 한일청구권 협정에 반하는 대법원 판결을 막아야 했다.

2012년 5월 대법원이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일본 전범기업의 배상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원심을 파기하면서 양측의 수요는 명확해졌다. 청와대가 직접 나서면 '소문'이 나니 "외교적 차원에서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 판결이 확정되면 한일관계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취지의 의견서를 외교부를 통해 제출하도록 묘안을 꾸렸다.

강제징용 사건 판결을 늦추고 배상 판결에 신중해야 한다는 취지의 의견서를 제출하면 여론의 뭇매를 맞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이에 따라 외교부는 다소 주저하는 모습을 보였고, 청와대와 대법원의 '의견서 독촉'이 시작됐다. 외교부 내에서도 국제법률국에는 대법원과 청와대의 압박이 유난히 집중됐다.

김 대변인은 이날 재판에서 "2015년 4월 곽병훈 당시 청와대 청와대 민정비서관이 호출해 (청와대로) 갔는데, 곽 전 비서관이 외교부에서 의견서를 왜 제출하지 않느냐고 질책하듯 물었다"며 "유쾌하지 않은 자리로 기억한다"고 증언했다.

임 전 차장에게 비슷한 취지의 역정을 들었다고도 거듭 밝혔다. 김 대변인은 "임 전 차장이 전화해 '제도가 생겼는데 왜 (의견서를) 제출하지 않느냐'며 역정 비슷하게 전화한 사실이 있느냐"는 검찰의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했다. 다만 김 대변인은 임 전 차장의 역정을 들은 일이 곽 전 비서관에게 질책을 듣기 전인지, 들은 후인지는 확답을 내놓지 못했다.

임 전 차장의 '역정'에 언급된 제도는 2015년 1월 신설된 민사소송 규칙 조항이다. 외교부와 같은 국가기관이 법원에 의견서를 제출하고 이를 법원이 참고하도록 보장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대법원으로서는 외교부 의견서를 반영할 '만반의 준비'를 마친 셈이다.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의 한 축은 대법원이 강제징용 사건 재판을 박근혜 정부와 거래할 '대상'으로 삼았다는 의혹이다. 사진은 인천 부평공원에 전시된 '일제강점기 징용노동자상'. /이덕인 기자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의 한 축은 대법원이 강제징용 사건 재판을 박근혜 정부와 거래할 '대상'으로 삼았다는 의혹이다. 사진은 인천 부평공원에 전시된 '일제강점기 징용노동자상'. /이덕인 기자

공소사실에 따르면 제도까지 신설했는데도 외교부 제출이 늦어지자, 임 전 차장은 꽤나 답답했던 것으로 보인다. 임 전 차장은 2015년 4~5월경 곽 전 비서관에게 "외교부에서 의견서를 빨리 내야 하는데 여론 눈치를 보는지 소심하게 안 내고 있다"고 토로했고, 곽 전 비서관은 김 대변인을 청와대로 호출해 이같은 법원행정처의 '불만사항'을 전달했다는 것이 공소사실이다. 다만 김 대변인은 전달이 아닌 역정과 질타로 받아들였고, 5년이 지난 이날 재판에서도 불쾌한 순간으로 기억했다.

강제징용 사건 재판을 거래 대상으로 삼은 양 전 원장 등 대법원 수뇌부들의 방침으로 관련 규정이 신설됐다는 검찰 주장과 배치되는 증언도 나왔다. 불쾌한 감정과 별개로 김 대변인은 규정 신설 배경에 강제징용 사건이 있는 줄 몰랐고, 각 기관에서 법원에 참고자료를 제출하는 건 통상 있는 일이라고 증언했다.

김 대변인은 민사소송 규칙이 신설 당시 해당 내용을 보도한 언론 기사를 취합해 윤병세 당시 외교부 장관에게 보고했다. 그는 "강제징용이라는 현안 관련 사안은 중요하게 생각해 실국장 회의에서도 보고했고, 같은 맥락에서 관련 뉴스를 상시 모니터링했다"며 "(규정 신설 전에도) 각급 법원에서 행정기관에 자료를 내라는 일은 새롭지 않은 일"이라고 설명했다.

관련 기사 모니터링 당시 '강제징용 사건이 신설 계기가 됐구나'라고 생각했냐는 양 전 원장 측 변호인 질문에도 "제가 알 도리가 있었겠느냐"고 반문했다.

곽 전 비서관에게 '질타'를 들을 당시 법원행정처에서 의견서 제출을 독촉한다는 말을 들은 기억은 없다고도 증언했다. 김 대변인은 박병대 전 처장 측 변호인단의 반대신문에서 "(곽 전 비서관이) 대법원 쪽에서 독촉 한다는 말을 들은 기억은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제가 청와대에서 근무하더라도, 법원이 이렇게 하라고 하더라는 식으로 전달하지는 않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김인철 외교부 대변인(사건 당시 국제법률국장)은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처장에게 의견서 제출을 독촉하는 '역정'을 들었다고 거듭 증언했다. 사진은 지난 12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속행 공판에 출석한 임 전 차장의 모습. /남용희 기자
김인철 외교부 대변인(사건 당시 국제법률국장)은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처장에게 의견서 제출을 독촉하는 '역정'을 들었다고 거듭 증언했다. 사진은 지난 12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속행 공판에 출석한 임 전 차장의 모습. /남용희 기자

김 대변인은 변호인 반대신문에서도 임 전 차장 관련 질문을 받자 "거두절미하고 의견서 제출 안 했다며 질책하고 독촉해 '사람이 어떻게 이럴까' 싶었다"며 불쾌한 심경을 전했다.

변호인이 "기관은 다르지만 비슷한 직급인데 증인이 말씀하신 내용만으로 '사람이 그럴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는 아니지 않느냐"고 묻자, 이에 대해서도 "(임 전 차장과) 여러 사람 있는 자리에서 담소하며 저녁 먹은 게 다인 관계인데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 않느냐"고 분명히 했다.

임 전 차장은 지난해 5월 공판에서 김 대변인에게 "너무 언짢게 생각마시라"며 사과의 뜻을 전했다.

ilrao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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