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까지 실형" 공포의 취재…법무부 감찰은 미정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종합편성채널 '채널A' 기자가 윤석열 검찰총장의 최측근인 현직 검사장과 유착해 이철(55) 전 벨류인베스트코리아 대표를 협박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논란이다. 법무부는 대검찰청에 진상 파악을 지시한 상황이다. 기자가 이 전 대표 측에게 들려준 녹취록의 주인공이 실제 검사장으로 밝혀지면 파장은 커질 것으로 보인다.
◆"사모님을 비롯해 가족 분들이 조사를 받게 될 것"
이번 논란은 지난달 31일 채널A 기자가 '신라젠' 대주주였던 이철 전 대표에게 현직 검사장과의 친분을 언급하며 유시민(61) 사람사는세상노무현재단 이사장 비위를 제보하라며 강압적인 취재를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시작됐다. 이 전 대표는 신라젠 대표주주 시절 7000억원대 투자사기를 저지른 혐의로 기소돼 지난해 징역 12년형이 확정된 인물이다. 지난 2월에는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 등으로 추가기소된 사건에서 징역2년6월을 선고받아 총 14년6월을 감옥에서 보내게 됐다.
MBC 보도에 따르면 기자는 2월 중순경 옥중에 있는 이 전 대표에게 검찰이 신라젠의 비공개 정보 이용 의혹 수사를 재개했다며, 유시민 이사장 등 정계 인사의 비위 내용을 알려달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편지에는 "이번 수사 목표가 '예전 수사에서 부실했던 부분을 짚고 넘어간다'임에 따라 가족 분들이 처벌을 받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협박성' 내용도 포함됐다. 검찰 고위층과 친분을 과시하며 제보를 해주면 편의를 봐주겠다고도 했다. 기자가 보낸 편지에는 "검찰 고위층에 대표님의 진정성을 직접, 자세히 수차례 설명할 수 있다. 대표님께 자료를 받으면 '이철이란 사람이 억울해 하고 있다, 가족들까지 실형을 살까 우려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말이죠" 등의 내용이 담겼다.
중형을 선고받은 점을 강조하며 이같은 위기에서 벗어날 방법은 자신에게 제보해 검찰 간부의 도움을 받는 것뿐이라는 회유성 발언도 있다. 편지에는 "14년6월은 몹시 긴 시간이다. 여기에 추가 수사로 형이 더해진다면 대표님이 75살에 출소하실지, 80살에 나오실지도 모를 일", "그 시간 동안 누군가는 대표님과의 인연을 부정하고, 헐뜯고, 대표님을 몰염치한 사람으로 매도할 것이다. 이런 결과를 초래한 변호인 역시 믿으시면 안 된다"고 쓰였다.
◆녹취록의 검사장은 누구인가
의혹의 핵심은 기자가 취재과정에서 검사와의 친분을 무기로 삼았다는 점, 검사는 반대로 언론을 이용해 여권의 핵심 인사를 겨눈 것 아니냐는 이른바 '검언유착'이다. 수감된 이 전 대표를 대신해 기자와 실제로 만났던 이 전 대표의 측근이 "기자가 윤석열 총장의 최측근이라는 검사장과의 녹음파일을 들려줬다"고 주장하면서 이같은 의혹은 더 커졌다. 2일 자신을 이 전 대표의 대리라고 소개한 제보자는 KBS '김경래의 최강시사'에 출연해 "기자가 녹취파일을 들려주겠다고 만나자고 해 나가서 들었더니 A 검사장의 목소리였다. 한 20초 들은 것 같다. 길게 들을 필요가 없었다"고 밝혔다. 20초간 들었다는 통화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
채널A와 A 검사장 측은 모든 의혹을 부인한다. 채널A는 MBC 보도 당일 "기자가 이 전 대표 측과 접촉한 사실은 있지만, 이 전 대표 측에서 감찰의 선처 약속을 받아달라는 부적절한 요구를 해 즉각 취재를 중단시켰다"며 "다만 취재원 대응 방식에 문제가 있었는지 전반적 진상을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진상 파악에 나선 나선 대검찰청은 1일 오전 법무부에 "채널A 기자가 자신의 취재 내용이 정리된 메모와 통화 녹음을 취재원에게 들려준 적 있지만, 통화 상대는 지목된 검사장이 아니었다"는 취지로 보고를 올렸다. A 검사장 역시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이다.
◆법무부 "감찰은 시기상조"…취재윤리는 도마에
논란의 중심에 선 채널A와 검찰이 제기된 의혹을 부인하며 법무부가 자체 감찰에 나설지 관심이 모인다. 추미애(62) 법무부 장관은 1일 한 방송매체에 출연해 "언론보도가 사실이라면 대단히 심각한 사안"이라면 "사실 여부에 대한 보고를 먼저 받아보고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수 없는 단계라고 판단되면 감찰 등 여러가지 방식으로 조사하겠다"고 감찰 가능성을 시사한 바 있다. 지난 3일 제주지검을 방문한 자리에서도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며 "여러 의문점에 대해 법과 원칙대로 조사가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다.
대검 보고를 받아본 법무부는 2일 공문을 보내 진상 파악을 지시했다. 이를 놓고 법조계 일각에서는 "대검의 1차 조사가 미흡하다고 판단한 것"이라며 법무부 감찰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기도 했다. 하지만 법무부는 절차에 따라 대검에 진상 조사를 지시한 것일 뿐이고, 감찰 역시 시기상조라는 입장이다. 감찰 규정에 따르면 검사에 대한 감찰은 대검이 하는 게 원칙이다. 이후 법무부가 2차 감찰을 할 권한은 있다. 법무부 관계자는 "원칙적으로 검사에 대한 조사는 대검이 하는 게 맞다. 감찰 검토 단계도 아니다"라며 "전날 지시한 것 역시 사실관계 파악을 위해 절차적으로 움직인 것으로, 대검이 보고한 내용과 아무 관련없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문제의 통화 상대가 A 검사장으로 밝혀지거나, 또는 다른 검사가 언론과 유착해온 사실이 드러난다면 법무부 차원에서 움직여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익명을 요청한 한 법학자는 "검찰로서는 '언론보도로 의혹을 접했고 수사에 착수했다'는 명분이 생기고, 언론은 수월하게 취재해 단독보도를 하는 일종의 상부상조식 '카르텔'이 지금까지 지속돼 왔다. 유시민 이사장의 비위를 확보해 이를 기소함으로써 총선에 영향을 주려는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든다"며 "지금도 이미 구체적 정황이 드러나고 있는데 녹취록의 주인공이 실제로 현직 검사장이고, 기자가 이를 이용해 협박하기에 이르렀다면 당연히 법무부 차원에서 감찰이 이뤄져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검언유착' 논란과 별개로 이 전 대표 측이 받았다고 주장하는 편지들의 내용이 진실이라면 채널A 기자의 취재 방식은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한 언론학자는 "검찰 유착 전에 짚고 넘어가야할 점은 해당 편지의 진위를 밝히고 취재윤리 위반 여부를 검토하는 것"이라며 "만약 MBC 보도가 사실이라면 제3자가 읽기에도 고압적인 이같은 취재 방식은 명백한 취재윤리 위반"이라고 했다.
채널A는 김차수 대표이사를 위원장으로 한 자체 진상조사위원회에서 취재 과정을 조사 중이며 조만간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ilrao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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