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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F이슈] '신림동 CCTV 사건' 강간미수 무죄 이유는

  • 사회 | 2020-03-25 00:00
24일 법원은 서울 신림동에서 귀가하는 여성을 뒤쫓아 여성의 집에 침입하려 한 혐의를 받는 30대 남성에 대해 항소심에서도 주거침입 혐의만 인정, 징역1년형을 선고했다. 사진은 지난해 5월 범행 모습이 담긴 CCTV 영상 일부. /유튜브 캡처
24일 법원은 서울 신림동에서 귀가하는 여성을 뒤쫓아 여성의 집에 침입하려 한 혐의를 받는 30대 남성에 대해 항소심에서도 주거침입 혐의만 인정, 징역1년형을 선고했다. 사진은 지난해 5월 범행 모습이 담긴 CCTV 영상 일부. /유튜브 캡처

재판부 "'의심'만으로 처벌할 수 없다"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새벽에 귀가하던 여성을 따라가 집에 침입하려 한 이른바 '신림동 CCTV 사건'의 범인 30대 남성 조모 씨가 항소심에서도 주거침임 혐의만 인정, 징역1년형을 선고받았다. 당초 검찰은 조 씨에 대해 주거침입 강간 혐의를 적용했디. 피해자 신체에 직접적 위해를 가하지 않았는데도 '강간의 고의'가 인정될지 갑론을박이 있었다. 조 씨의 2심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서울고법 제12형사부(윤종구 부장판사) 역시 24일 열린 선고 공판에서 원심 판결을 인용하는 한편, 따로 자료를 내 "성범죄 의도 가능성은 있으나 현행법상 이러한 의도만으로 처벌할 수 없다"고 고뇌를 드러냈다.

◆'의심스러우면 피고인의 이익으로' 형소법 원칙 따라

재판부는 조 씨의 행위를 매우 의심스럽게 바라봤다. 일면식도 없는 여성을 우연히 발견해 약 200m 따라가고, 피해자 의사에 반해 그 집에 침입하려 했다는 점에서다. 또 CCTV 영상에 나타난 피고인의 구체적 행동, 피해자가 느꼈을 공포감 등을 감안했을 때 "공소사실과 같은 범행을 저지른 건 아닌지" 강한 의심이 든다고 했다. 조 씨의 진술 역시 미심쩍다고 봤다. 지난달 항소심 결심 공판에서 검찰은 "수사과정부터 2심 재판에 이르기까지, 점점 자신이 유리한 내용만 기억난다고 진술한다. 혹시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 아니냐"며 강도높은 피고인 신문을 진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형사재판에서 이같은 의심이 유죄 선고로 이어지려면 재판부가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확신할 엄격한 증거가 있어야 한다. 재판부는 "이같은 증거가 없으면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해야 한다. 피고인 주장이나 변명이 모순되거나, 석연찮은 면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유죄 선고를 내릴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형사소송법 원칙을 따른 것이다. 강한 의심은 들지만, 의심에 그쳤기 때문에 강간의 고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강간의 고의'를 인정할 수 없다는 재판부

주거침입 혐의만을 유죄로 인정한 1심 판결에 불복한 검찰의 근거는 강간죄 구성요건인 폭행과 협박이 있었다는 것이다. 상대방 동의 여부를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입법론적 논의가 이뤄지고 있지만, 현행법상 강간죄가 성립하려면 폭행과 협박이 있어야 한다. 검찰은 조 씨가 피해자 집 앞에서 보인 행동, 당시 피해자가 느꼈을 극도의 공포를 고려했을 때 조 씨의 행위는 폭행과 협박에 해당한다고 봤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같은 행위를 강간죄에서 말하는 폭행과 협박으로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판단한 1심을 인용했다.

나아가 강간의 고의를 인정하기도 어렵다고 봤다. 재판부는 고의를 인정할 '정황사실'이 부족하다고 봤다. 재판부는 "피해자를 처음 발견해 피해자 원룸 건물을 나오기까지 충분한 시간적 여유와 기회가 있었지만,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성적인 의도를 드러낸 말이나 행동을 했다고 볼 정황이 없다"고 했다. 강간죄 보호법익은 피해자의 성적 자기결정권이다. 조 씨가 이같은 보호법익을 헤칠 시간이 충분했는데도 성적인 언행은 보이지 않아, 정황상 강간의 고의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판단이다. 같은 맥락으로 현관문 잠금장치를 휴대전화 손전등으로 비춰보는 등 집에 침입하려한 정황은 확실해 주거침입 혐의는 유죄로 판단했다.

24일 법원은 서울 신림동에서 귀가하는 여성을 뒤쫓아 여성의 집에 침입하려 한 혐의를 받는 30대 남성에 대해 항소심에서도 주거침입 혐의만 인정, 징역1년형을 선고했다. 사진은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남용희 기자
24일 법원은 서울 신림동에서 귀가하는 여성을 뒤쫓아 여성의 집에 침입하려 한 혐의를 받는 30대 남성에 대해 항소심에서도 주거침입 혐의만 인정, 징역1년형을 선고했다. 사진은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남용희 기자

◆"피고인 주장은 궁색한 변명" 고민 담긴 판결문

재판부는 강간의 고의는 인정하지 않았지만 '연락처를 묻고 같이 술마시고 싶어 따라갔다'는 조 씨의 주장에 대해 "궁색한 변명"이라고 일갈했다. 이날 재판이 끝난 뒤 재판부는 이례적으로 판결문 중 일부 내용을 따로 인쇄해 취재진에게 제공했다. 인쇄본 말미에는 A4용지 1쪽을 빼곡히 채운 분량의 '편지'가 포함됐다. 재판부는 이 사건 범행사실을 숲과 나무에 비유했다.

"숲, 나무에 비교해 보겠습니다. 침엽수 숲을 보면 소나무인지, 전나무인지, 잣나무인지 가려야 합니다. 숲만 증명되면 형벌이 가능하다는 국가도 있었지만 대한민국 형법은 숲의 요건과 나무의 요건이 모두 필요하고 구체적으로 확인해야 합니다."

이 사건에 대해서는 "성범죄 의도가 있었을 가능성은 있지만 의도만으로 처벌하려면, 즉 숲만으로 처벌할 특별한 규정을 법률로 제정해야 한다. 우리 법률에는 성폭력이라는 범죄 의도의 미수를 처벌할 규정이 없고 강간으로 의제해 추정할 근거도 없다"며 "사람들이 느끼는 불안감을 줄이거나 해소할 수 있는 다양한 논의가 다른 차원에서 진행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ilrao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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