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번째 무혐의 처분 뒤늦게 알려져…'제3자 뇌물' 물증 확보가 관건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검찰이 김학의(64) 전 법무부 차관의 성폭행 혐의를 또 무혐의 처분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이로써 '별장 성 접대'를 심판할 무대는 사실상 법원이 유일해졌다. 항소심에서 강간죄는 더이상 거론 불가능하고 제3자 뇌물죄로만 성폭행 혐의를 따질 수 있다. 14년전 별장 성 접대는 법의 심판을 받을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부실 수사 논란 속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공소 유지를 위한 물증 확보가 관건이라고 입을 모은다.
13일 김 전 차관에게 소개한 여성을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건설업자 윤중천(59) 씨의 항소심 재판 절차가 막 시작됐다. 윤 씨에게 성 접대 형태로 뇌물을 받은 혐의 등으로 기소됐으나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김 전 차관 사건 역시 검찰 항소로 2심 재판이 열릴 예정이다.
◆7년간 세 번의 무혐의 처분…골든타임 놓쳤다
이들이 피고인석에 서기까지는 6년의 시간이 걸렸다. 2013년 3월 박근혜 정부 당시 법무부 차관으로 김 전 차관이 임명된 직후, 별장에서 중년 남성이 여성들에게 성 접대를 받는 영상이 떠돌며 논란이 불거졌다. 김 전 차관은 영상 속 남성이 자신이 아니라고 부인하며 차관 임명 6일 만에 사퇴했다.
경찰은 같은 해 7월 동영상 속 인물을 김 전 차관으로 결론짓고 접대를 제공한 윤 씨와 함께 성범죄 혐의를 적용해 검찰에 송치했다. 4개월 뒤 검찰은 당사자인 김 전 차관이 혐의를 전면 부인 중인데다 사건 관련자들의 진술을 믿을 수 없다며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피해자 A씨의 고발로 다시 수사가 재개됐지만 2015년 1월 검찰이 내놓은 수사 결과는 또 무혐의 처분이었다. A씨는 문제의 동영상 속 여성이 자신이며, 윤 씨의 협박 속에서 김 전 차관에게 성폭력을 당했다고 주장했지만 당시 검찰은 동영상 속 여성을 A씨로 확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A씨가 고발장을 제출한 건 2014년 7월의 일이다. 검찰이 고발장을 받아들고 수사 결과를 발표하기까지 반 년 동안 김 전 차관 출석 조사가 한 차례도 이뤄지지 않았다. 검사가 피해자들을 고압적 태도로 조사했다는 의혹까지 제기되며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 논란이 불거졌다.
지난 해 3월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 권고로 검찰은 특별수사단을 꾸려 재수사에 들어갔다. 이미 사건이 발생한지 10년이 넘었고 잇따라 무혐의 처분된 사건의 재수사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같은 달 15일 김 전 차관은 법무부 진상조사단의 출석 요구에 불응하고, 22일에는 태국으로 도피하려다 긴급출국금지로 공항 탑승동에서 출국을 제지당하기까지 했다.
이후 김 전 차관은 또 다른 피해자 B씨와 고발전을 벌이기도 했다. 2019년 4월 김 전 차관은 2013년 자신을 고발했던 B씨를 무고죄로 검찰에 고발했고, 두 달 뒤 B씨는 김 전 차관을 강간치상과 무고 혐의로 맞고소했다.
검찰은 같은 달 6월 김 전 차관에 뇌물 혐의, 윤 씨에게는 강간치상 등 혐의를 적용해 구속기소하는 한편 김 전 차관과 B씨의 쌍방 고발건을 수사해 왔다. 하지만 검찰이 지난 1월 증거불충분으로 두 사건 모두 혐의없음 처분을 내린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별장 성 접대 사건에 있어 세번째 무혐의 처분이다. 한 성범죄 전문 변호사는 "성범죄 사건 특성상 진술이 주요한 작용을 하긴 하지만 정황 증거가 없다면 입증이 어렵다. 14년이 지난 사건을 재판에 넘길 정도의 증거를 찾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14년전 별장 성 접대, '공소 유지'가 급하다
검찰은 일단 공소가 제기돼 항소심에 접어든 사건들에 집중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별장 성 접대 행위를 형사처벌할 수 있을지는 김 전 차관과 윤 씨 사건 모두 미지수다.
당초 검찰은 김 전 차관이 받은 성 접대를 뇌물로 보고 재판에 넘겼다. 성범죄가 아닌 뇌물죄로 의율한데 잡음이 있었지만 이는 검찰이 14년전 성 접대 행위를 기소하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다는 것이 중론이다.
김 전 차관이 받는 뇌물죄의 경우 혐의액이 1억원 미만이면 공소시효 10년, 1억을 넘어가면 15년이다. 2006∼2007년 성 접대를 뇌물죄로 처벌하려면 1억원 이상의 뇌물 혐의가 필요했다. 이에 따라 검찰은 2006~2008년 윤 씨가 성 접대와 3100만원 등을 제공한 혐의에 제3자뇌물 혐의로 1억원을 더해 포괄일죄를 구성했다. 제3자뇌물죄가 인정되지 않으면 별장 성 접대를 포함한 모든 혐의내용이 공소권부터 무너지는 구조였다.
제3자뇌물죄 혐의는 김 전 차관이 윤 씨의 청탁을 받고 자신에게 성 접대를 제공한 A씨의 채무 1억원을 면제해줬다는 내용이다. A씨는 윤 씨에게 진 빚 1억원으로 고소를 당하는 등 법적 분쟁까지 벌였다. 검찰은 김 전 차관이 이 과정에서 A씨에게 접대받은 사실이 폭로될까 윤 씨에게 채무 면제를 부탁했다고 본다.
지난해 11일 1심 선고 공판에서 해당 혐의가 인정되지 않으면서 결국 성 접대를 포함한 개별 공소사실들은 면소 판결을 받았다. 윤 씨의 진술 번복이 컸다. 검찰 조사에서 윤 씨는 A씨에게 "1억 안 받고 한 번 용서해주겠다. 학의 형 아니었으면 넌 죽었다"고 말한 사실을 시인하며 "(1억원을 안 받으면) 향후 형사사건에 걸려 들었을 때 잘 처리해줄 것 같았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증언대에 서자 "1억을 꼭 받을 생각은 없었다"고 말을 바꿨다. 청탁과 대가 사이 인과관계가 모호해졌다.
김 전 차관은 검찰의 불복으로 항소심 재판을 앞두고 있다. 법률가들은 2심에서 1억원의 제3자뇌물죄를 입증하려면 객관적 물증 확보가 필요하다고 본다. 이필우 법무법인 예율 변호사(입법발전소)는 "윤 씨와 A씨의 채무 관계가 절박했고 윤 씨가 A씨에게 반드시 1억원을 받아야 했다는 사정을 증명할 계약서나 각서 등 서류, 또는 녹취록이 물증으로 제시된다면 원심이 뒤집힐 여지도 있다"고 설명했다.
성 접대 제공 과정에서 피해자를 성폭행해 상해를 입힌 혐의(강간치상)를 받는 윤 씨 역시 검찰과 피고인 양측의 항소로 2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윤 씨의 원심 재판부도 강간치상 혐의는 공소기각 판결을 내렸다. 2006~2007년 3회에 걸친 성폭행 혐의가 인정되려면, 강간치상 공소시효가 10년에서 15년으로 연장된 2017년 12월 이후에도 성폭행에 다른 상해 피해가 지속됐음을 증명해야 했다. 피해자 A씨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진단을 받은 건 2017년 12월이다. 1심 재판부는 해당 질환이 6년 전 성폭행에서 비롯된 상해인지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13일 첫 공판에서 검찰은 범행을 당한 피해자가 뒤늦게 장애를 겪을 수 있다는 취지의 정신과 전문의 의견서 제출을 예고한 상태다. 같은 맥락에서 법원내 전문 심리위원에게도 심리를 요청했다. 이같은 증거가 재판부의 심증 형성에 영향을 줄 수도 있지만 물증 확보가 관건이다. 김상균 법무법인 태율 변호사는 "성폭행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진단 사이 인과관계가 있다는 확실한 물증이 필요하다. 6년간 심리적 고통으로 병원이나 심리상담을 받았다는 기록같은 물증이 정황증거로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했다.
ilrao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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