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접촉 체온계·열화상감지기 도입…"코로나보다 재판이 걱정" 목소리도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여기 자리잡아 20년을 장사하면서 사스부터 신종플루, 메르스도 겪어 봤지만 이번에는 특히 무섭더라고." (법원 내 인쇄업자)
법원 인사가 시행된 첫 날인 24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서울고등법원은 한산했다. 재판이 거의 열리지 않는 월요일이지만 법원 관계자들과 몇몇 민원인을 제외하면 1층 로비는 썰렁했다. 법원 내 커피숍과 구내식당 앞에는 "민원인 분들의 이용을 잠정적으로 중단하오니 양해해 주시길 바란다"는 입간판이 우뚝 서 있었다. 로비에 설치된 텔레비전 소리만 울리는 민원실 앞에서 마주친 민원인들은 "코로나도 코로나지만 재판이 더 걱정"이라고 울상을 지었다.
지난 23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이하 '코로나19') 위기 경보가 심각단계로 격상함에 따라 법원의 풍경도 달라졌다. 서울중앙지법·서울고법 1층 동관과 서관 출입구, 2층 중앙 현관을 제외한 모든 출입구가 폐쇄됐다. 로비를 거치지 않고 법정으로 바로 통하는 법정 전용 출입구 역시 "이 출입문은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심각단계로 격상됨에 따라 폐쇄됨을 알려드립니다"는 스티커만 붙어 있었다.
개방된 출입구에서는 비접촉 체온계로 체온을 측정한 뒤 37.5도 이하인 방문객들만 출입이 허용됐다. 동관 1층 출입구 우측 공터에는 열이 있는 방문객들이 임시로 대기할 수 있는 천막이 한창 설치되고 있었다. 이곳으로 안내된 방문객들은 접촉 인원 등 추가 조사를 진행한 뒤 병원 격리 등 후속 조치가 내려진다.
이날 오전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위해 출석한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 전광훈(64) 목사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오전 10시20분께 자가용으로 법원에 출석한 전 목사는 통상 포토라인이 설치되는 2층 4번 출구가 폐쇄돼 서관 출구에서 취재진을 만나 입장을 밝혔다. 전 목사는 마스크를 쓰지 않았지만 그를 에워싼 경찰과 법원 관계자, 취재진과 지지자 등 100여 명은 대부분 마스크를 쓴 채였다. 5분 남짓 인터뷰를 마친 전 목사는 체온을 측정한 뒤 법정으로 들어갔다.
전 목사가 2시간 남짓 영장 심사를 마친 뒤 서울 종로경찰서 유치장으로 떠나 취재진들이 자리를 뜨면서 법원은 더욱 한산해졌다. 점심시간 전후로 인파가 몰리던 법원 내 커피숍과 구내식당은 법원 직원을 제외한 민원인의 출입을 제한하며 인적을 찾기 힘들었다. 커피숍의 경우 직원들 역시 매장 사용은 금지되고 '테이크아웃'만 가능했다. 구내식당 내 설치된 라면 자판기 앞에도 "코로나19 확산방지 대책의 일환으로 라면 자판기 이용을 잠정적으로 중단하오니 양해해 주시기 바란다"는 스티커가 붙었다.
재판이 없어도 관련 업무를 위해 찾은 민원인들로 가득 찼던 1~2층 종합민원실과 접수실 앞 역시 적막감이 감돌았다. 민원인은 줄어 들었지만 법원 관계자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방역에 최선을 다하며 업무를 보고 있었다.
점심시간이 끝나갈 무렵 홀로 자리를 지키던 민사 재판 관련 민원 업무 담당 공무원은 "서울고법에 설치된 재난안전대책본부에서 전 직원에게 마스크를 끼라고 공지를 내리는 등 철저히 방역과 안전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대면 업무가 많은 저희도 마스크를 끼고 일하는 중"이라며 "저희로서도 걱정이 되지만 뭐 어쩌겠나. 그래도 방역이 본격화된 뒤 열화상감지기 설치도 고려 중이라 하고 청사 차원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형사재판과 항소심 재판 법정이 모여 있는 서관에서 마주친 한 경위는 "전 직원에게 마스크를 쓰라는 공고가 내려와 법원 내에서 다 착용 중이고, 법정 내 경위들도 마스크를 착용 중"이라고 전했다. 전 목사의 영장 심사처럼 사람들이 몰리는 날에 걱정되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그동안 법원에서 근무하며 크고 작은 전염병이 몰려왔지만 우리는 비상상황시 즉각 대응해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점심시간이 지난 뒤 민원실 앞에서 마주친 민원인들은 법원의 방역에 안심하는 한편 예정된 재판일정에 차질이 있을까 걱정했다. 지인의 재판 관련 일로 법원을 방문한 민원인 이모(29) 씨는 "법정에서도 그간의 관행을 깨고 마스크 착용을 허용했고 오늘 보니 몇 번이나 들락날락하는 사람들도 체온을 꼼꼼히 재는 걸 봐서 별 걱정은 없다"며 "사실 그냥 (지인의) 재판이 잘 풀렸으면 하는 생각밖에 없다. 법원에 와 있는 사람들은 코로나보다 훨씬 걱정되는 일 아니겠나"라고 했다.
30대 민원인 고모 씨는 "그래도 민원 업무 보시는 분들은 물론 법원 내 직원 모든 분들이 마스크를 끼고 다니셔서 안심된다"면서도 "오늘 아침처럼 유명인이 와서 사람들이 많이 몰리니 불안하다. 이런 시기에 유명인을 이렇게 공개적으로 부르는 건 민원인도 그렇고 기자들, 경찰들도 다 걱정되는 부분 아니냐"라고 했다.
오후 3시경 대법원 법원행정처는 법원 내부망 '코트넷'을 통해 "각급 법원이 위치한 지역의 코로나19 감염 상황을 고려해 긴급을 요하는 사건을 제외한 나머지 사건의 재판을 연기·변경하는 등 휴정기에 준해 탄력적으로 운영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달라"는 권고를 내렸다. 이를 전해 들은 30대 여성 민원인 A씨는 "가까운 지인의 재판 때문에 속상하다 못해 속을 많이 태워서 얼른 끝났으면 했는데, 재판 일정이 미뤄질까봐 걱정된다"고 말했다.
법조인들도 코로나19 확산에 영향을 받기는 매 한가지다. 바로 다음날(25일) 재판을 앞두고 있다는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그동안 지검만 가다가 내일 재판인데 겁난다. 저희같은 변호사들은 그저 신에게 맡길 수밖에"라고 웃어 보였다. 그러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야 하는 직업인 만큼 출근 전에 체온을 꼭 재고, 마스크도 수백 장씩 구매해 놨다. 서초 법조타운이 알아주는 '흡연타운'인데 요즘 마스크를 항상 쓰고 다니니 저절로 금연 분위기"라고 전했다. 이어 "사실 저희와 의뢰인들은 당장 구속 걱정, 유·무죄 걱정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재난안전대책본부가 꾸려진 서울고법 측에 따르면 25일 오후 열화상감지카메라가 법원에 도착해 체온 측정이 이뤄지고 있는 법원 동·서관 출입구에 설치될 예정이다. 서울고법 관계자는 <더팩트>와의 통화에서 "(동·서관 출입구에) 지금도 비접촉 체온계로 체온을 재고 있긴 하지만 유동인구가 제일 많은 출입구라 열화상감지카메라를 따로 설치하기로 했다. 내일 오후 카메라가 도착하면 바로 설치해서 빠른 시일내 정상적으로 가동할 예정"이라며 "이전에도 손소독제가 법원 곳곳에 배치되긴 했지만 민원 업무를 보는 곳은 더 촘촘히 손소독제를 배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서울고법은 25일부터 내달 6일까지 각 재판부에 휴정기에 준해 재판을 탄력적으로 운영할 것을 권고했다. 또 이날 예정된 전입법관 오찬과 인사 등 행사도 취소한 것으로 전해진다.
ilrao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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