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소송법 위반" vs "증거조사로 판단할 일"
[더팩트ㅣ서울중앙지법=송주원 기자] 꼬박 4시간 동안 진행된 정경심(58) 동양대학교 교수의 4차 공판 화두는 '증거'였다. 정 교수 혐의 중 증거인멸죄 관련 혐의들을 놓고 공방이 벌어졌다. 검찰이 정 교수의 일기와 딸과 주고받은 문자내역을 증거로 제출하자 변호인단은 "형사소송법 위반"이라며 서로 얼굴을 붉혔다.
서울중앙지법 제25형사부(송인권 부장판사)는 12일 자본시장과금융투자업에관한법률 위반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정 교수의 4차 공판기일을 진행했다.
이날 재판에서는 조국(55) 전 법무부 장관의 국회 인사청문회를 앞둔 2019년 8월 정 교수가 사모펀드 관련 의혹을 덮기 위해 운용사 코링크프라이빗에쿼티(이하 코링크PE)에 증거인멸·은닉·위조를 교사했다는 혐의를 두고 서증조사가 진행됐다.
검찰은 증거인멸교사 혐의의 전제로 △코링크PE의 실소유주는 남편의 5촌 조카 △정 교수가 투자한 코링크PE 블루펀드는 '가족펀드' 등 두 부분을 제시했다. 정 교수 변호인단은 이를 파고들었다. 변호인은 "검찰은 두 전제가 드러날까 염려해 코링크PE 관계자들에게 허위 자료를 만들거나 관련 자료를 폐기하게 했다고 나온다"며 "사실관계도 맞지 않지만 설령 공소사실상 전제된 두 사안이 사실이라도 이는 형사상 범죄가 아니다"고 설명했다.
형법에서 규정하는 증거인멸죄는 '타인의 형사사건이나 징계사건'에 관한 증거를 숨기거나 위조할 경우 성립된다. 변호인의 주장은 정 교수가 사모펀드 의혹과 관련해 기소된 혐의들이 당초 법률상 형사처벌 대상이 아니라 증거인멸 범죄 역시 성립할 수 없다는 내용이다.
투자처를 알면서도 '블라인드 펀드'라고 속였다는 의혹에는 "실제 펀드시장에서도 사모펀드 투자자가 투자처 정보를 어디까지 몰라야 사모펀드인지 의견이 분분한 상황"이라며 "주식투자를 우회적으로 하는 방식이 금지돼야 한다는 입법론적 이야기는 가능하지만, 블라인드 펀드 여부는 형사사건이나 징계사건 그 무엇도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정 교수가 코링크PE 관계자들에게 함께 투자한 동생 정 모 씨의 이름이 새겨진 자료를 폐기하라고 한 혐의를 놓고는 모호함을 꼬집었다. 공소장에는 2019년 8월 17일경 정 교수는 시조카 조 씨에게 "동생 이름이 적힌 자료가 외부에 드러나면 큰일난다"며 동생과 관련된 자료를 숨기거나 없애라는 취지의 요구를 했다고 기재돼 있다.
변호인은 "교사범을 기소하며 '어떤 취지로 요구했다'고 공소장을 적는 경우는 드물다. 피고인이 정확히 '자료를 없애라'고 지시했는지 불분명하다"며 "사건 관계자 진술이 어느 정도 반영된 걸로 보이는데, 검찰 조서에 따르면 조 씨 역시 '정○○ 관련 치워 달라는 말은 안 했고, 이름 적힌 자료가 어디까지 제출됐는지와 외부에 드러나면 큰일난다는 말만 했다'고만 진술했다"고 말했다.
이에 검찰은 "살인 사건과 비교해 보면 살인을 저지른 사람이 사건현장에 갔다는 사실 자체는 죄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살인범이 현장에 간 사실을 숨기려고 타고간 차나 근처 CCTV를 은닉하면 죄"라며 "피의자가 전체 범행을 숨기려 전제사실인 현장 방문 사실을 숨기려 증거를 은닉하면 범죄가 된다는게 대법원의 인정 판례"라고 반박했다.
또 검찰은 정 교수가 동생과 함께 코링크PE에 10억 원을 투자한 뒤 수익금 보전을 위해 허위 컨설팅 계약을 맺어 회삿돈 1억5000만 원 상당을 횡령했다는 혐의에 대한 증거 조사 과정에서 정 교수의 휴대전화에 저장된 일기 형식의 메모를 증거로 제시했다.
2018년 1월 정 교수가 해외 출장에서 귀국한 날 꾼 꿈의 내용을 기록한 해당 메모에는 "땅바닥에서 죽은 줄 알았던 물고기 두 마리를 혹시나 해서 어항에 뒀더니 살아 돌아다니더라. 이 두 마리의 의미가 뭘까", "○이(정 교수의 아들) 로스쿨? 아니면 투자? 코링크에 투자한지 1년이 다 돼 가는데 아들은 로스쿨에 합격하고, 딸은 의사 공부 잘 마쳤으면 좋겠다" 등의 내용이 담겼다.
검찰은 "단순히 돈을 대여해 준 사람이 이런 메모를 남긴다는 건 상식적으로 불가능하다. 피고인의 사모펀드 비리와 자녀에게 부를 대물림하려는 시도를 증명할 단서"라며 "피고인은 이같은 꿈을 실현하기 위해 범행수단을 활용했고 이 메모는 곧 범죄의 증거"라고 주장했다.
변호인단은 "이렇게 일기까지 증거로 제출하는 것은 헌법상 과잉금지의 원칙을 어긴 것이다. 현행 형사소송법은 탐색적·포괄적 증거 수집을 금지한다"며 "요즘처럼 디지털 증거가 압수되면 속되게 말해 한 사람 인생이 털리는 문제가 발생한다"고 반발했다. 이어 피고인석 책상에 쌓인 A4용지 수십장 분량의 증거자료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검찰은 피고인이 딸과 주고 받은 문자내역들, 언제 어디서 만나서 함께 극장을 간다던가 이런 내용을 전부 다 증거로 내셨습니다. 형사소송법은 물론 개인정보보호법에서 규정하는 여러 조항들을 정면으로 저촉한 것 아닙니까?" (변호인)
"저희가 문자내역 전체를 제출한 건 일부만 낸다면 검찰에게 유리한 자료만 제시한다는 이의 제기가 있을 거라 그냥 통으로 제시한 겁니다. 또 문자내역은 딸의 허위 경력 의혹과 관련있어 제출한 자료입니다. 증거 가치는 증거조사로 판단해도 되는데 이런 식으로 파행을 이끌어가는 건 유감스럽습니다"
"파행, 파행이라니…" (변호인)
재판부는 달아오른 분위기를 잠재우며 재판부 변경에 따른 공판 절차 갱신 방안을 논의했다. 이날 공판은 24일 서울남부지법으로 인사 이동을 앞둔 송인권(51·사법연수원 25기) 부장판사가 심리하는 마지막 재판이기도 했다. 송 부장판사는 "지금까지 4회 공판을 진행했는데 자료의 양도 방대하고 만만치 않은 사건이다. 공판 절차 갱신이 쉽지 않을 것"이라며 "27일 검찰과 변호인이 공판 절차 갱신을 주도적으로 한 뒤 증거조사 절차 협의를 하는게 바람직할 것으로 보인다"고 제안했다.
사문서위조 혐의 공소장 변경 신청이 불발되자 송 부장판사에게 언성을 높이기도 했던 검찰 역시 "피고인이 구속된 사건인 만큼 신속하게 진행돼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별다른 이의없이 재판부 뜻을 받아들였다.
송 부장판사는 인사이동에 대한 별다른 소감은 밝히지 않았다. 다만 정 교수의 보석 석방을 요청하는 변호인에게 "재판부가 바뀌는 시기에 저희가 결정하기는 어렵다"며 양해를 구했다.
정 교수의 5차 공판은 27일 오후 2시에 열린다.
ilrao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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