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지주의' 따라 한국 항공기도 영토 포함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몽골 헌법재판소장이 일행과 함께 대한항공 항공기 내에서 여성 승무원 2명을 성추행해 논란이 일고 있다. 오드바야르 도르지(52) 소장과 일행 A(42)은 인천국제공항에서 경찰에 붙잡혀 1차 조사를 받았으나 면책특권을 주장하며 인도네시아 발리로 출국했다. 우여곡절 끝에 1차 조사를 한 경찰은 강제추행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는 중죄지만 외국 고위 인사가 한국 항공기 내에서 저지른 범행으로 처벌 대상이 될 수 있을지 이목이 집중된다.
◆'면책특권' 주장한 도르지 소장…사실은?
도르지 소장과 일행 A는 31일 오후 8시 5분께 몽골 울란바토르를 출발해 인천국제공항으로 향하는 대한항공 항공기 내에서 승무원 2명의 특정 신체부위를 만지는 등 강제추행한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다. 사법경찰 권한을 가진 항공사 직원이 도르지 소장과 A를 현행범으로 체포해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한 직후 경찰에 넘겼으나, 도르지 소장 측에서 면책특권을 주장하며 조사를 거부했다. 경찰은 도르지 소장을 풀어준 후 외교부에서 "면책특권 대상자가 아니다"라는 사실을 전달받고 임의동행해 1차 조사를 벌였다. 면책특권이란 당사국끼리 외교관계 및 외교특권을 규정한 비엔나 협약에 따라 △국가원수 △행정수반 △외교장관에 한해 치외법권 대상이 되는 특권을 말한다.
외교부와 법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하면 도르지 소장 주장과 달리 헌법재판소장은 특권 대상자가 아니다. 외교부 관계자는 "몽골 헌법재판소장과 동행인은 외교관계에 관한 비엔나 협약 등 국제법상 면책특권 대상자가 아니라는 게 공식 입장"이라고 밝혔다. 검찰 출신 이승혜 변호사(변호사 이승혜 법률사무소) 역시 "면책특권이란 대통령과 국회의원, 외교관 등 형사소추를 받지 않을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도르지 소장 측 주장과 달리 면책특권 대상자가 아니다"라며 "도르지 소장의 범죄내용만 입증되면 한국법으로 다스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상대는 해외 고위인사…관건은 수사 의지
면책특권 대상자가 아니라도 외국인이 기내에서 범행을 저질렀다는 점에서 한국법으로 다스릴 수 있을지 관심이 모인다. 한국 사법체계는 한국 내에서 범죄를 저지른 자는 국적에 상관없이 한국법으로 처벌한다는 속지주의를 채택한다. 현행법에서 적용하는 영토의 범위는 한국 국적의 항공기내도 포괄해 도르지 소장의 행위는 속지주의를 적용할 수 있다. 또 국제법은 공해상의 선박과 항공기도 소유 국가의 관할권을 보장한다. 범행이 발생한 상공이 한국 영공이 아니라도 대한항공 항공기 내 사건은 한국 사법부에서 관할할 수 있다.
이처럼 도르지 소장 측의 범죄행위만 명백히 증명된다면 한국법으로 처벌하는데 법적으로 어떤 하자도 없다. 그러나 2차 경찰 조사에 응하겠다고 약속한 후 인도네시아에서 일정을 소화 중인 도르지 소장이 추후 한국 수사기관의 수사 절차에 얼마나 협조할지가 관건이다. 애초 도르지 소장은 한국을 경유해 본국으로 귀국할 예정이지만 이번 사건으로 항공편을 변경한다면 검찰로서는 범죄인인도조약에 따라 강제송환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다. 한국은 2000년 1월 몽골과 범죄인인도조약을 체결해 도르지 소장을 압송할 수 있지만 국내 외국인 범죄 사례들을 볼 때 해외 고위인사에 대해 강도 높은 수사를 진행할지 미지수다. 서혜진 한국여성변호사회 인권이사는 "몽골은 한국과 범죄인인도조약을 체결한 국가라 인터폴에 수배해 강제수사도 가능하지만 통상 외국인의 범죄 사례를 볼 때 이 정도로 고강도 수사를 할 확률은 높지 않아 보인다"고 전망했다.
한국 사법시스템을 본보기로 삼아 설립된 헌법재판소 소장이 한국을 대표하는 국적기 승무원을 추행했다는 점에서 엄중한 수사를 예측한 의견도 있다. 이승혜 변호사는 "신분이 확실한 사람이라 해외에 있다고 해서 신원 불상이나 소재지 불명 등으로 기소를 중지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대한항공 승무원이라는 우리나라 국민에게 피해를 입힌 만큼 국민적 비난이 높은 사건이다. 수사기관에서도 안일하게 처리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봤다.
이충윤 대한변호사협회 대변인(법무법인 해율) 역시 "미투운동 후 한국 사회에서 성범죄를 대하는 수사기조가 강해졌다. 양형 역시 과거 500만 원 이하 벌금형이 나왔다면 최근 징역형의 집행유예까지 나오기도 한다"며 "이 사건은 국적기 안에서 한국인 승무원을 추행했다는 점에서 국격과도 깊은 연관이 있다. 해외 고위 인사라고 해서 약하게 수사하거나 처벌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ilrao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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