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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F현장] "이러면 안 되는데"…'변협 압박 방안' 탄생비화

  • 사회 | 2019-10-24 05:00
2016년 4월25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별관 4층에서 열린 제53회 법의 날 기념식에서 참석자들이 법의 날 관련 영상을 시청하며 박수를 치고 있다. 오른쪽 세번째가 양승태 대법원장, 다섯번째가 하창우 대한변호사협회장/뉴시스
2016년 4월25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별관 4층에서 열린 제53회 법의 날 기념식에서 참석자들이 법의 날 관련 영상을 시청하며 박수를 치고 있다. 오른쪽 세번째가 양승태 대법원장, 다섯번째가 하창우 대한변호사협회장/뉴시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사법농단' 37회 공판…'친 변협' 판사의 증언

[더팩트ㅣ장우성 기자]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사법농단' 공판에 증인으로 나오는 현직 판사들은 크게 세 부류로 나뉜다.

우선 당시 개운치 않았던 지시를 따른 것을 후회하며 자성하는 사람이다. 자신도 사법농단 사건으로 기소됐다는 이유로 증언을 대체로 거부하는 '침묵파'도 있다. 또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면서 자신을 적극적으로 방어하는 증인도 있다.

23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박남천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양승태 전 대법원장, 박병대 전 대법관의 37회 속행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김모 변호사(전 법원행정처 사법정책심의관·부장판사)는 세번째에 가까웠다.

김 변호사는 2013~2015년 법원행정처 사법정책심의관으로 일하면서 이진만 양형실장과 임종헌 기획조정실장의 지시를 받아 통합진보당 행정소송 보고서 작성, 강제징용 피해자가 승소한 판결을 뒤집기 위한 대법원 규칙 개정, 대한변호사협회 압박 방안 마련 등을 실행했다.

특히 법원행정처 '통진당 행정소송 TF'의 일원으로 활동하면서 '통진당 행정소송 검토 보고서' 등을 작성했다. 이 보고서에는 2014년 헌법재판소의 통진당 해산 결정을 계기로 재판에 개입하려는 정황이 담겼다. 당시 헌재가 통진당 해산과 소속 국회의원의 의원직 상실 결정을 내리자 옛 통진당 의원들은 법원에 행정소송을 냈다. 헌재의 결정을 법원이 심판할 수 있는 기회였다. 헌재와 최고 사법기관 지위를 놓고 다퉈온 헌재로서는 호재였던 셈이다.

보고서에는 법원의 이익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통진당 행정소송의 처리 방향과 전략이 담겼다. 이후 서울행정법원의 판결은 이 보고서가 제시한 내용과 일치했다. 보고서에는 양승태 대법원의 숙원인 상고법원 입법을 반대하는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회(민변)도 통진당 소송을 활용해 우군으로 끌어들일 수도 있다는 내용까지 포함됐다. 당시 민변 변호사 주축으로 통진당 옛 의원 변호인단을 구성했기 때문이다.

김 변호사는 이 보고서를 정당 해산과 의원직 상실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법원 차원에서 검토한 연구물이라는 취지로 설명했다. 반면 검찰은 재판 독립을 침해하는 월권 행위로 보고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 전 대법관(당시 법원행정처장)과 연결고리를 찾기 위해 따졌다. 그러다 목소리가 높아지는 장면도 연출됐다.

"이런 내용을 보고했을 때 박병대 처장이나 이진만 실장이 재판권 독립을 침해한다고 질책하거나 지적하지 않을까 걱정되지 않았습니까?"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질책받을 수도 없었죠. 보고서 제출하고 끝난 일이었습니다."

"사법행정을 하는 사람이 이런 문제를 다루는 게 적절한지 증인과 본 검사가 견해가 다른 것 같습니다."

다만 김 변호사는 재판개입 의도에는 선을 그으며 "이 보고서가 재판부에 전달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 했다"며 "만약 (처음부터) 그렇게 지시했다면 이견을 표시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법행정권을 남용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박병대 전 대법관이 29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이선화 기자
사법행정권을 남용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박병대 전 대법관이 29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이선화 기자

또 그가 대법원 강제징용 재상고 사건을 배경으로 작성한 '이해관계자 의견제출제도 도입을 위한 민사·형사소송규칙 일부 개정안 검토보고서'는 외교부가 '개인 배상청구권'이 소멸됐다는 의견서를 대법원에 제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정지작업이었다.

김 변호사는 2015년 1월 열린 대법관회의에 규칙개정안을 의결하기 위해 신속히 작업하라는 지시를 받았다는 점을 인정했다. 기억은 나지 않는다는 단서를 달았지만 "박병대 처장에게 직접 보고했을 것이며, 대법관회의에 올라가는 안건이니 양승태 대법원장에게도 보고됐을 것"이라고 증언했다.

행정처 사법정책심의관으로서 그의 업무에는 대한변호사협회와 소통 창구 역할도 포함됐다. 그런데 2014년 '대한변협 압박 방안 검토'라는 보고서도 써야 했다. 당시 대한변협은 하창우 신임 회장 집행부가 들어서면서 대법원이 추진하는 상고법원과 대법관 증원을 반대하는 입장을 뚜렷히 했다.

이에 임종헌 기조실장이 격앙된 반응을 보이며 압박 방안 보고서를 쓰라고 지시했다. '대한변협 및 임원진의 비신사적 행태', '변협과 임원진의 일련의 행태가 도를 넘어선 것으로 보임' 등의 격렬한 표현은 임 실장이 불러준 대로였다.

보고서에는 디테일한 방안이 여럿 담겼다. 변협신문에 게재하던 광고를 끊고 변협 주최 각종행사에 협조하지 않는 것은 기본이었다. 방안에 포함된 변호사평가제도 도입을 위한 TF도 이후 발족해 '부적절한 변론 사례를 언론에 공표해 전략적으로 활용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김 변호사는 검찰 조사에서 "이러면 안 되는데..."라고 걱정하며 이 보고서를 작성했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그는 "꼭 보고서대로 다 되리라고, 해야한다고 생각하고 작성한 것은 아니다. 굉장히 유치하고 말도 안 되는 내용도 있었다"라며 "변협에 친한 변호사도 많았고 평소 잘 지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고 했다.

leslie@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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