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기존 판례 유지..."혼인 중 '남편 동의'에 한해" 별개 의견도
[더팩트ㅣ송은화 기자] 타인 정자로 인공수정해 태어난 자녀도 남편의 친자식이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3일 오후 2시 대법정에서 A씨가 두 자녀를 상대로 낸 친생자관계부존재확인소송 상고심에서 각하 판결한 원심을 확정하고 "다른 사람의 정자로 낳은 자녀도 친자"라고 판단했다. 36년 전 내린 기존 판례를 유지한 선고다. 대법전원합의체는 지난 1983년 7월 '아내가 남편의 자녀를 임신할 수 없다는 사정이 외관상 명백한 경우에만 친자식으로 추정할 수 없다'는 예외를 인정한 바 있다.
무정자증인 A씨는 B씨와 결혼 후 8년 만에 제3자 인공수정으로 첫 아이를 낳아 친자식으로 출생신고를 마쳤다. 4년 뒤 둘째 아이가 태어나자 A씨는 자신의 무정자증이 치유된 것으로 생각하고 둘째 역시 친자녀로 출생신고했다. 하지만 A씨는 부인과의 협의 이혼 과정에서 둘째가 혼외관계로 태어났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고, 두 자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대법원 판결로 두 자녀 모두 아버지와 친자 관계를 유지하게 됐다.
대법원 관계자는 "우선 인공수정으로 태어난 자녀의 신분관계 역시 다른 친생자와 마찬가지로 조속히 확정되도록 해 새로운 임신, 출산의 모습을 둘러싼 친자관계와 가족관계의 법적 안정을 확보했다"고 판결의 의의를 밝혔다. 특히 "오랜 기간 유지된 가족관계에 대한 신뢰보호 필요성, 혼인과 가족생활에 대한 자율적 결정권 보장, 사생활 보호의 필요성 등을 감안할 때 혈연관계만을 기준으로 친생추정 규정의 적용범위를 정할 수는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고 강조했다.
자녀 측(피고) 대리인 최유진 변호사는 "대법원 판단 중 '혈연관계 유무를 기준으로 친생추정 규정의 효력이 미치는 범위를 정하게 되면 제3자가 가정 내부의 내밀한 영역에 깊숙이 관여하게 되는 결과를 피할 수 없어 헌법과 친생추정 규정의 취지에 반한다'는 구절이 인상적"이었다는 말로 승소의 기쁨을 대신했다.
이는 혈연관계 유무를 기준으로 친생자관계를 정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는 취지다. 친자 관계 관련 소송이 제기됐을 때 친자감정을 하거나 부부간의 비밀스러운 부분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두 사람의 내밀한 사생활이 침해될 수 있다. 혼인과 가족생활을 어떻게 꾸려나갈 것인지에 관한 개인과 가족의 자율적 결정권은 존중돼야 하고, 국가는 인격적·애정적 인간관계에 기초한 가족관계에 개입하지 않아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날 권순일, 노정희, 김상환 대법관은 의학기술의 발달과 사회적, 문화적 배경 자체의 변화로 인공수정으로 태어난 자녀의 친자관계는 민법상 '친생추정 규정의 적용'이 아닌 남편과 아내의 합치된 의사와 시술에 대한 동의를 근거로 인정돼야 한다는 별개 의견을 내놓았다. 세 대법관은 △혈연관계가 없다는 점 △사회적 친자 관계가 형성되지 않았거나 파탄됐다는 점 등 두 가지 요건이 인정되면 친생자 추정의 예외를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유숙 대법관은 남편이 인공수정에 동의한 경우 '자의 출생 후에 친생자임을 승인한 자는 다시 친생부인의 소를 제기하지 못한다'는 민법 852조가 유추적용돼 친생자 관계를 부정할 수 없어 제소기간 2년과 무관하게 친생관계 부정이 불가하다"는 반대 의견을 추가했다. 또 아내가 남편의 자녀를 임신할 수 없었던 것이 외관상 명백하다고 볼 수 있는 '다른 사정'도 친생자 추정의 에외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법 제844조 '남편의 친생자 추정'에 따르면 아내가 혼인 중 임신한 자녀는 남편의 자녀로 추정하며, 제846조' 자의 친생부인'을 보면 부부의 일방은 그 자가 친생자임을 부인하는 소를 제기할 수 있다. 민법 제847조 친생부인의 소'에서는 부 또는 처가 다른 일방 또는 자를 상대로 하여 그 사유가 있음을 안 날부터 2년 내에 이를 제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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