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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F현장] MB 재판 법정이 극장이 된 까닭은

  • 사회 | 2019-09-05 00:01
'다스 의혹'으로 재판에 넘겨진 이명박 전 대통령이 4일 오후 항소심 34차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 들어서고 있다. /뉴시스
'다스 의혹'으로 재판에 넘겨진 이명박 전 대통령이 4일 오후 항소심 34차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 들어서고 있다. /뉴시스

검찰, 증거 수집 영상 공개…결국 '증거 채택'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영상 길이가 얼마나 되죠?" (재판부) "39분 분량입니다."(검찰) "자꾸 같은 장면만 나오는데 좀 넘기죠?"(변호인)

검찰과 변호인의 열띤 공방이 오갈 법정에 때아닌 '상영회'가 열렸다. 검찰이 바다 건너 미국에서 증거를 수집하기까지 과정을 상세히 담은 약 40분짜리 영상을 법정에서 공개한 것이다. 진행 아닌 진행을 맡은 영상 속 변호사가 현장 동태를 설명할 때마다 흡사 SBS '그것이 알고싶다', MBC 'PD수첩' 등 탐사취재 방송 프로그램이 떠올랐다.

서울고법 형사1부(정준영 부장판사)는 4일 오후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뇌물)등 혐의를 받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항소심 공판기일을 열었다.

검찰은 이 전 대통령이 실소유주라는 의혹을 받는 다스(DAS)가 미국 소송에 휘말렸을 당시, 삼성으로부터 소송비를 대납받았다고 본다. 1심은 이 전 대통령이 받은 뇌물액을 약 61억 원으로 판단했으나 항소심에 이르러 약 119억 원으로 늘어났다. 지난 5월 검찰이 익명의 제보자로부터 이 전 대통령이 삼성에게 약 51억 원을 추가로 받았다는 정보를 입수한 것이다. 검찰은 이 전 대통령 측과 약 1개월간 뇌물액 추가를 두고 옥신각신한 끝에 공소장에 51억 원이란 금액을 추가할 수 있었다. 이로써 공소사실상 이 전 대통령의 뇌물죄는 더 무거워졌다.

문제는 익명의 제보자가 추가 뇌물을 입증할 인보이스(invoice, 송장)를 원본이 아닌 사본으로 제보했다는 것이다. 변호인은 신분이 불확실한 제보자로부터 받은 인보이스 사본만으로 공소장을 변경할 수 없다고 극심히 반발해 왔다. 지난 6월 공소장이 변경된 후에도 제보자의 신분과 송장 사본이라는 꼬리표는 늘 따라다녔다. 검찰은 지난 달 23일 재판에서 삼성전자 미국법인(이하 'SEA')이 보낸 회계자료를 추가로 제출했다. 이에 변호인은 "전자정보를 출력한 것에 불과해 오랜 기간 원본과 동일한 내용으로 보관됐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변호인의 지적에 검찰은 "삼성 변호사가 미국 현지에서 해당 자료를 출력하는 과정을 동영상으로 촬영했다"고 예고했다. 그리고 이날 재판에서 문제의 동영상이 공개됐다. 삼성전자 해외법무팀 소속의 고모 변호사가 SEA의 서버를 관리하는 미국 뉴저지주 업체에서 서버를 확인하고, 15분 거리의 SEA 사무실에서 회계자료를 출력하는 39분 분량의 영상을 틀었다. 재판부는 "(화면이 더 잘 보이게) 불 좀 몇 개 꺼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저는 지금 SEA를 비롯해 여러 회사의 서버를 관리하고 보관하는 미국 뉴저지주의 한 업체 앞에 와 있습니다. 이곳은 입구입니다. 보안 유지 때문에 내부에서는 촬영이 불가합니다." (고 변호사)

고 변호사의 말에 카메라는 촬영을 금지하는 그림기호로 가득한 게시판을 비췄다. 해당 서버가 잘 보관 중인지 확인하고 나온 고 변호사는 SEA로 돌아와 다스(DAS)의 소송을 지원하던 미국 로펌 에이킨 검프(Akin Gump)로 돈을 보낸 회계자료를 찾아 출력했다. 방화벽을 해제하고 저장된 자료의 확장자명을 접근성이 쉬운 PDF 파일로 변환해 출력하는 과정까지 상세히 담겼다. 고 변호사는 자료를 검색하던 중 오타를 낸 부분까지 "제가 잘못 입력한 번호는 이것이고, 원래는 이렇게 검색해야 한다"고 바로잡았다. 복합기에서 출력물이 나오면 컴퓨터에 띄운 자료와 함께 내보이며 동일성을 증명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다스 비자금 120억 조성 의혹과 관련해 서울동부지검 소속 검찰 직원들이 지난 해 1월 서울 서초구 다스 서울지사 사무실을 압수수색 하고 있다. /더팩트DB
이명박 전 대통령의 다스 비자금 120억 조성 의혹과 관련해 서울동부지검 소속 검찰 직원들이 지난 해 1월 서울 서초구 다스 서울지사 사무실을 압수수색 하고 있다. /더팩트DB

40분의 '증거수집 상영회'가 끝난 후 재판부는 방청석에 앉아 있던 영상 속 고 변호사를 바로 증인으로 채택해 신문을 진행했다. 변호인마저 수 차례 "똑같은 장면이 반복되는데 넘기는게 어떻냐"고 요청할 정도로 상세한 과정이 공개된 가운데 어떤 공방이 오갈지 이목이 쏠렸다. 방화벽을 해제하고 사내 보안자료에 접근한 만큼 고 변호사가 얼마나 '서버 전문가'인지에 초점이 맞춰졌다.

변호인단은 "해당 회계자료는 컴퓨터 전문가도 아닌 변호사가 출력한 자료로서 디지털 포렌식 전문가가 담보하는 수준의 증거가 되지 못한다"며 "자료가 최초 생성된 시점부터 고 변호사가 출력하기까지 어떠한 가공이나 조작이 없었다고 증명하기 어렵다"고 반박했다. 실제로 고 변호사에 따르면 SEA에 근무하는 직원은 법인장 또는 유사한 지위 임원의 허락만 있으면 회계자료를 보관하는 서버에 접근할 수 있다. 그러나 사내 회계자료를 저장하는 프로그램은 보안 목적에 따라 최초 입력과 삭제만 가능할 뿐 사후 수정은 불가능하게 설계됐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현재 제출된 SEA 회계자료를 증거로 채택하겠다. 다만 당초 체출한 인보이스 사본을 증명하는 측면에서 채택한 증거가 아님을 밝힌다"고 마무리했다. 지난 기일부터 공방을 벌였던 SEA 회계자료는 증거로 채택하되, 권익위로부터 확보한 사본의 증거 효력과는 상관없는 결정이라고 선을 그은 것이다. 미국 뉴저지주에서 촬영해 서울고등법원까지 영상을 들고온 검찰로서는 나름의 성취다.

한편 이날 재판에서는 지난 기일에 재판부에서 제안한 국제사법 공조도 구체적으로 논의됐다. 국제사법 공조란 재판에 넘겨진 사건과 관련해 국가 간에 민·형사의 사법절차에 대해 협력하는 것으로, 미국 로펌 에이킨검프에 삼성으로부터 다스의 미국 소송비를 대납받았는지 사실조회를 신청하기 위함이다. 재판부는 "검찰은 국제사법 공조를 통해 변호인 측의 질문을 취합해 사실조회를 신청하라"고 지시했다. 검찰은 국제사법 공조 절차가 별도로 존재하므로 좀 더 검토하겠다고 답했다.

이 전 대통령의 항소심 속행 공판기일은 23일 오전 10시 10분에 열릴 예정이다.

ilraoh_@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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