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재판 출석은?" 취재진 질문에 '묵묵부답'
[더팩트ㅣ서울중앙지법=송주원 기자] 김백준(79)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처럼 재판을 받는 피고인에게는 주로 '출석했다'는 표현을 쓴다. 그러나 김 전 기획관만큼은 '나타났다'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40년 지기로 알려진 이명박 전 대통령 재판에서 김 전 기획관을 9차례나 증인으로 소환했지만 불출석한 전력이 있어서다. 지난 달 4일과 13일 본인의 항소심 선고기일만 두 차례 공전됐다. 이 전 대통령 재판을 맡은 서울고법 제1형사부는 지난 5월 김 전 기획관이 본인의 항소심 공판에 모처럼 출석했다는 소식에 급히 증인신문기일을 꾸릴 정도였다. 급하게 잡힌 증인신문기일에도 나타나지 않아 해당 재판부는 감치 경고까지 감행한 바 있다.
정작 김 전 기획관을 담당한 재판부는 연이은 불출석에 익숙한 듯 별다른 이야기도 없을 지경이었다. 지난 달 두 번 열린 항소심 선고기일에서 두어 번 이름을 부르더니 기일을 변경하기만 2차례다. 불출석 기간 내내 건강 악화를 이유로 들었던 김 전 기획관이라 폭염경보가 내려진 이날 재판 역시 출석이 불투명했다. 그러나 김 전 기획관은 모두의 예상을 깨고 나타났다.
서울고법 형사3부(배준현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이하 '특가법') 상 뇌물방조 혐의 등으로 기소된 김 전 기획관의 선고공판은 3번째 선고기일이었다.
큰 아들이 밀어 주는 휠체어를 탄 김 전 기획관은 중절모와 마스크를 쓰고 등장했다. 피고인석이 가까워지자 스스로 모자와 마스크를 벗었다. 김 전 기획관은 신원 확인을 하는 재판부 질문에 스스로 생년월일과 주소지를 상세히 말했다. 그동안 출석하지 못한 것에는 "건강이 안 좋아서 (서울로부터) 멀리 떠나서 요양하려고 했는데 잘 안됐다. 그래서 불출석했다"고 또박또박 설명했다.
김 전 기획관은 이 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2008년과 2010년 두 차례 김성호·원세훈 전 국정원장으로부터 4억 원의 특별활동비를 건네받은 혐의를 받는다. 검찰은 특가법 상 뇌물방조와 국고손실방조 등 2개 혐의를 적용했다. 지난 해 1심은 뇌물방조에 대해서는 무죄를, 국고손실방조에 대해서는 단순횡령죄에 가깝다고 판단했다. 단순횡령죄의 공소시효는 7년으로 2018년 재판에 넘겨진 김 전 기획관은 해당 혐의에 대해 면소된 상태다. 검찰은 두 혐의 모두 1심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항소했다.
2심 재판부는 뇌물방조에 대해 "특수활동비가 전달된 경위를 살펴볼 때 통상적 뇌물수수와 다소 차별성이 있다. 상급기관인 당시 대통령의 자금 지원 요청에 (당시 국정원장이) 응한 것으로 보인다"며 "양측의 직무에 관한 대가성이 있는 금품수수로 단정하기 어렵다"고 원심 판단을 유지했다. 또 "국정원 특성상 예산 사용처와 목적을 명시하지 않은 것은 해당 기관의 특수성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국고손실방조에 대해서는 특가법 제5조 '국고 등 손실'에 따라 당시 김 전 기획관의 직책은 회계 사무를 담당했다고 보기 힘들다고 판단했다. 청와대 총무기획관으로 근무한 김 전 기획관의 업무는 국정원 자금 보관 업무와 관련성이 없다는 이유다. 특가법 상 국고손실죄는 회계사무를 처리하는 사람에게만 적용할 수 있다. 재판부는 "김 전 기획관의 당시 지위는 회계 관계에 있지 않아 국고손실방조로 보기 어렵다. 국정원 자금 보관 업무도 하지 않았으므로 업무상횡령에 해당하지도 않는다"며 "이에 따라 단순횡령죄로 볼 수 있겠지만 공소시효 만료로 면소됐다"고 판단했다.
이로서 김 전 기획관은 2개 혐의에 대해 각각 무죄와 면소 판결을 받아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 전 대통령과 김‧원 전 국정원장 등 사건 관계자 중 가장 먼저 혐의를 벗게 됐다. 김 전 기획관은 들어올 때와 같은 표정으로 벗었던 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아들과 함께 법정을 나갔다. 이 전 대통령 재판에 출석할 의향이 있는지 등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 공세를 받았으나 침묵으로 일관했다. 김 전 기획관은 아들의 부축을 받으며 차에 오르기 직전 모여든 취재진을 잠깐 응시하더니 이내 법원을 떠났다.
ilraoh_@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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