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물 직무관련성 없다" 혐의 전면부인
[더팩트ㅣ서울중앙지법=송주원 기자] 형사재판에서 피고인은 변호사와 나란히 앉는다. 변호인이 2명 이상일 때는 주로 변호인단 사이에 앉아 자신을 변호하느라 열변을 토하는 변호사를 곁에서 지켜본다. 말 한 마디와 작은 행동까지 조심스러운 법정에서 마이크를 끄고 수시로 변호인과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피고인 출석 의무가 없는 준비기일을 제외한 정식 형사재판 절차 내내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13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의 506호 법정 풍경은 사뭇 달랐다. 사회적 신분으로만 따지자면 피고인석에 앉은 5명 모두 변호사다. 말끔한 정장을 차려 입고 자료를 뒤적거리는 4명의 변호사와 달리 또 다른 변호사 1명은 황색 수의를 입었다. 하얗게 센 수염은 덥수룩했고 가지런히 모은 손은 재판 직전까지 수갑이 채워져 있었다. 억대 뇌물과 성접대를 받은 혐의로 기소된 김학의(63) 전 법무부 차관의 이야기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정계선 부장판사)는 26일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이하 '특가법') 상 뇌물 혐의를 받는 김 전 차관의 첫 공판기일을 열었다. 김 전 차관은 구속된 후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호구조사를 하는 재판부의 질문 중 "직업은 변호사가 맞냐"는 것에 작은 목소리로 "네"라고 답했다. 이날 재판에서 김 전 차관이 입을 연 것은 이 짧은 대답이 유일하다. 침묵을 지키는 의뢰인 대신 4명의 변호인단은 혐의를 전면 부인하며 공세를 퍼부었다. 변호인은 검찰이 적용한 뇌물죄를 두고 "검찰 과거사위원회에서 특별수사단을 꾸린 후 어떤 혐의로든 (김 전 차관을) 처벌하려고 한다. 변호인으로서는 공소권 남용으로 보인다"고 강도 높게 비난했다.
검찰은 ▲2007~2008년 건설업자 윤중천 씨로부터 3000만원 상당의 금품을 받은 혐의 ▲같은 시기 윤씨로부터 1억 원 이상 뇌물수수한 혐의 ▲2006~2007년 윤씨로부터 성접대를 비롯한 향응을 13회 제공받은 혐의 ▲2003~2011년 사업가 최모 씨로부터 3천 950만 원 뇌물수수한 혐의 등을 합쳐 포괄일죄(여러 행위가 포괄적으로 하나의 죄에 해당하는 것)로 기소했다. 특가법상 뇌물액이 1억 원 이상이면 공소시효가 15년으로 늘어나 2011년이 마지막 범행 연도인 것을 고려할 때 처벌대상이 된다. 변호인이 "어떤 혐의로든 처벌하려는 것"이라고 주장한 것은 검찰의 포괄일죄 적용에 불만을 품은 것으로 보인다.
변호인은 2006~2007년 강원도 원주시 별장과 서울시 역삼동 오피스텔에서 13차례 성접대를 받은 것에는 "법무부 차관이라는 고위직의 피고인을 파렴치한 강간범이라는 비난과 조롱을 받게 했다"며 "그러면서 종전 혐의와 달리 뇌물죄로 기소했다"고 비난을 이어갔다. 성접대 과정에서 이뤄진 성행위 자체에 대해서도 "10여 년이 지난 과거의 일이라 불분명한 기억이 많다. (성관계를 했다는) 기억 자체가 흐릿하다"고 강조했다.
뇌물죄에 대해서도 물러서지 않았다. 변호인은 "공소사실 대부분 범행 일시와 장소가 제대로 특정되지 않았다. 작위적 법 적용"이라며 "뇌물을 공여했다고 적시된 두 사람 모두 피고인과 직무관련성, 대가성 중 어느 것도 없다"고 반박했다. 김 전 차관의 혐의인 뇌물수수와 제3자 뇌물수수 등은 직무에 관한 대가성이 입증돼야 뇌물죄 적용이 가능하다.
한편 검찰은 김 전 차관이 한 저축은행 회장 김모 씨로부터 2003~2011년 부인 명의로 1억 원 이상 금품을 수수한 정황을 포착했다. 관련 내용에 대한 추가기소 여부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음 공판기일은 27일 오전 10시로, 금품과 성접대를 제공한 건설업자 윤씨와 별장 성접대 영상을 감정한 전문가 윤모 씨의 증인신문이 있을 예정이다.
ilraoh_@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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