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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F이슈] '12년 해외도피' 정태수, 그는 살아있나

  • 사회 | 2019-06-25 05:00
1997년 서울구치소에서 열린 한보 청문회 당시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YTN 캡처
1997년 서울구치소에서 열린 한보 청문회 당시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YTN 캡처

"에콰도르서 사망" 아들 증언…생존했다면 96세

[더팩트ㅣ장우성 기자]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은 1923년생, 올해 96세다. 고혈압, 당뇨병, 심장질환, 대장암을 앓은 바 있다. 70대의 나이에 6년간 옥살이도 했다. 그리고 12년간의 해외도피 생활. 과연 그는 살아있을까.

정태수 전 회장의 넷째 아들 정한근 씨가 해외도피 21년 만에 국내 송환돼 "아버지가 지난해 에콰도르에서 대장암으로 사망했다"고 검찰에 진술했다. 임종을 지켜봤다고도 했다. 검찰은 아직 믿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내 건강비결은 하루에 3시간 걷기입니다. 세 끼 식사를 마칠 때마다 반드시 30분 쉬고 나서 1시간씩 걷습니다. 이걸 20년 동안 하고 있어요. 2002년 대장암 수술 받고 한 달쯤 꼼짝 못했지만, 억지로 걸음을 떼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걷고 있죠."

정태수 전 회장은 2004년 신동아와 인터뷰를 했다. 정말 사망했다면 생애 마지막으로 기록될 이 언론 인터뷰에서 그는 자신의 건강을 과시하며 기업인으로서 재기를 장담했다. 당시 나이 81세.

"일주일 동안 미국과 중동을 다녀왔습니다. 강행군이었는데, 젊었을 때보다 건강이 더 나은 것 같았어요. 젊어서 중동 오갈 때는 시차나 음식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비행기를 40시간이나 타면서 먹고 자고 했는데도 아무렇지 않더라니까."

그러나 그의 병은 항상 검찰과 법원에 불려만 가면 악화돼 방패막이 구실을 했다. 1991년 수서 택지 분양 비리 사건 당시에도 검찰 조사 도중 지병을 이유로 병원에 입원했다 잠적하기도 했다.

수서 비리는 집행유예로 마무리됐고 사면까지 받았지만 1995년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뇌물을 준 혐의로 다시 구속됐다. 그러나 재판부는 "오른쪽 반신 마비 증세가 있어 수감생활이 어렵다"며 구속집행정지 신청을 받아들여 풀어줬다.

해외 도피 21년 만에 중미 국가인 파나마에서 붙잡힌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의 넷째 아들 정한근 씨가 2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소환되고 있다./남용희 기자
해외 도피 21년 만에 중미 국가인 파나마에서 붙잡힌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의 넷째 아들 정한근 씨가 2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소환되고 있다./남용희 기자

1997년에는 IMF 구제금융 사태의 도화선이 된 이른바 ‘한보사태’로 징역 15년을 선고받는다. 같은 해 서울구치소에서 열린 ‘한보 청문회’에는 수의를 입고 나타나 두고두고 회자되는 어록도 남겼다. "주인인 내가 알지, 머슴(계열사 사장)이 뭘 알아." 이번에는 피해갈 수 없을 듯 했다. 그러나 2002년 말 대장암 발병을 이유로 특별사면을 받아 또 다시 자유의 몸이 된다.

정 전 회장이 한국 땅에서 마지막 모습을 보인 건 2007년 4월. 자신이 이사장인 영동대 교비 60억 원을 횡령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고 항소심을 진행하던 중이었다. 법정구속은 면했던 그는 출국금지 집행정지 신청을 냈다. 대장암이 재발해 일본에 가서 치료를 받아야겠다는 이유였다. 법원은 한 달간 출금을 정지했다.

그 순간이 기나긴 해외도피의 출발점이었다. 법원은 뒤늦게 사전 구속영장을 발부했지만 정 전 회장은 이미 일본에서 말레이시아를 거쳐 카자흐스탄으로 넘어간 뒤였다. 카자흐스탄 정부에 범죄인 인도 요청을 하자 이번에는 키르기스스탄으로 빠져나갔다. 현지에서는 금광 사업에 투자하려 했다는 소문도 돌았다. 신출귀몰이었다.

그의 생사가 마지막으로 언급된 건 2017년. 작가인 조용래 씨가 JTBC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에서 친구인 정한근 씨에게 정 전 회장이 위중하지만 미국에 살아있고 자서전을 남기고 싶어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증언한 내용이다.

정한근 씨와 조용래 씨의 말이 사실이라는 전제로 종합하면 정태수 전 회장은 일본-말레이시아-카자흐스탄-키르기스스탄-미국-에콰도르 등 6개국에서 11년을 보낸 셈이다.

검찰은 에콰도르 정부에 정 전 회장의 생사 확인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별도로 이번 주 안에 그동안 진행한 수사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정 전 회장은 지금까지 국세 2225억2700만원, 지방세 49억9000만원을 체납했다. 그가 사망했다면 체납액을 징수할 길은 사실상 사라진다. 은닉재산을 캐내는 수밖에 없다.

말단 세무공무원에서 시작해 한때 재계 랭킹 14위의 그룹을 지배했던 정태수 전 회장. 1970년대 강남 아파트 투기 열풍으로 돈방석에 앉기 시작해 국회의원부터 대통령 아들까지 가리지 않고 정경유착의 전형을 보여준 '일그러진 재벌'. 그가 입을 열어 국민에게 사죄하는 모습을 보일지, 대답없는 불귀의 객으로 기별을 전할지 주목된다.

leslie@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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