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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장청구서 유출 판사들 "공소장 일본주의 위배" 공세

  • 사회 | 2019-06-17 16:19
신광렬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가 지난해 9월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서 '정운호 게이트' 당시 영장심사에 개입한 의혹과 관련 피의자 신분 조사를 받기 위해 검찰로 향하고 있다. /뉴시스
신광렬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가 지난해 9월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서 '정운호 게이트' 당시 영장심사에 개입한 의혹과 관련 피의자 신분 조사를 받기 위해 검찰로 향하고 있다. /뉴시스

'정운호 게이트' 법관 3명 2차 준비기일…다음달까지 속행

[더팩트ㅣ송주원 인턴기자] "와, 이건 속마음인데."

17일 오전 서울중앙지법 23형사부 심리로 열린 성창호(47) 서울동부지방원 부장판사 외 2명의 2차 공판준비기일에서 유영근 부장판사는 검찰의 공소장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검찰은 조용했다. 피고인 3명 대신 참석한 9명의 변호인단이 공소장 일본주의를 내세우며 열띤 반박을 이어갈 때 예의상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앞서 성 판사와 신광렬(54)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조의연(53) 서울북부지방법원 수석 부장판사는 사법행정권 남용에 관여한 혐의로 지난 3월 5일 불구속 기소됐다. 성 판사와 조 판사는 2016년 4월 서울중앙지방법원 영장전담 판사로 재직할 당시 ‘정운호 게이트’ 사건과 관련해 법관 수사 확대를 막으려 법원행정처에 영장청구서와 수사기록 등을 유출한 혐의를 받는다. 신 판사는 당시 중앙지법에서 형사수석부장으로 근무하며 성‧조 판사에게 이같은 지시를 내린 혐의를 받는다.

'법조 비리' 혐의로 1심 징역 5년을 선고받은 정운호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가 2017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2심 선고공판에서 징역 3년6월로 형량을 감경 받은 후 법정을 나서고 있다. /뉴시스
'법조 비리' 혐의로 1심 징역 5년을 선고받은 정운호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가 2017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2심 선고공판에서 징역 3년6월로 형량을 감경 받은 후 법정을 나서고 있다. /뉴시스

공판준비기일은 피고인이 직접 출석할 의무가 없어 이날 재판 역시 9명의 변호인만 법정에 모습을 드러냈다. 신 판사와 조 판사 측 변호인이 각각 2명씩 출석했고 성 판사 측 변호인은 5명이 참석했다. 피고인이 3명에 이르긴 하지만 검찰에 맞먹는 인원의 변호인단이었다.

9명의 변호인단은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피고인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전반적으로 검찰수사라는 국가기능에 장애를 일으키지 않았고 그럴 의도조차 없었다고 설명했다. 지난 공판에 이어 이날도 약 2시간에 걸쳐 검찰의 공소내용을 두고 공소장 일본주의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공소장 일본주의란 검사가 공소를 제기할 때 공소장 하나만을 법원에 제출하고 기타 서류나 증거물을 첨부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이다. 재판부가 피고인의 유죄를 전제하지 않고 공정하게 판결하도록 하는데 의의가 있다.

변호인단이 가장 문제 삼은 부분은 “피고인 3명이 사전 공모해 법관의 비리를 은폐‧축소하기로 마음먹고 법원행정처 지시를 적극적으로 수용했다”는 내용이다. 변호인은 신 부장판사에게 영장청구서 등을 제출하라고 지시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재판이 아직 진행 중이므로 법관의 비리를 덮으려 했다고 단정한 검찰 측 설명은 옳지 않다고 반박했다.

사법 농단 의혹 사건으로 구속기소 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지난 3월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진행된 첫 정식 재판에 출석하고 있다. /이선화 기자
사법 농단 의혹 사건으로 구속기소 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지난 3월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진행된 첫 정식 재판에 출석하고 있다. /이선화 기자

재판부는 변호인단이 공소장에 제기한 문제점들을 일부 동의했다. 지난달 열린 1차 공판준비기일에서도 검찰에게 “공소장에 힘이 좀 들어간 것 같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에 따라 검찰은 지난 12일 공소장변경신청서를 제출하고 이날 재판에는 변경된 공소장을 내보였지만 지적은 이어졌다. 재판부는 공소장의 각 조항을 직접 검토하며 일본주의에 위배되는지 애매한 부분은 ‘세모’, 완전히 옳지 않다고 보이는 내용은 ‘가위표’라고 사실상 채점을 했다.

특히 조 판사의 공소사실을 읽으며 “피고인은 다른 직원들이 모르도록 (신‧성 판사와) 사전 공모해 법관의 비리를 은폐‧축소했다”는 조항을 읽던 중 잠시 멈추고 “와, 이건 속마음인데”라고 혼잣말을 하기도 했다. 이어 “이건 정말 속마음이다. 그런데 결론에서 또 같은 내용을 강조했다”면서 “먼저 기소된 임 전 차장의 재판에서도 아직 다투는 부분을 우리 재판에서 결론내자는 거냐”고 검찰을 몰아세웠다. 변호인단도 “그 부분뿐만 아니라 공소사실 10항 내내 그런 내용이 나온다”고 힘을 보탰다.

재판부와 변호인단의 공세에 검찰은 지적받은 내용은 다시 검토할 것이나 공소장 일본주의에 위배된다는 지적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했다. 검찰은 “법관의 비리를 덮으려 했다는 내용은 단순한 동기나 배경이 아니라 필수적 내용”이라면서 “저희 검찰의 대표적 공소사실인 ‘국가기능의 장애를 초래했다’는 주장에 직결되는 쟁점이다”라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3차 공판준비기일을 다음달 15일로 넉넉하게 잡았다. 그러면서 검찰 측에게 다음 기일 전까지 공소장 의견서를 제출하라고 지시했다. 변호인 측에게도 검찰 측 증거자료에 대한 증거인부서를 공판 전까지 미리 준비하라고 권고했다.

재판부는 준비기일이라도 채택된 증거에 한해 증거조사를 실시하겠다며 신속한 재판 진행을 예고했다. 3차 공판준비기일에 공소장 심리가 완료된다면 성 판사 외 3명의 정식 공판기일은 바로 지정될 것으로 보인다.

ilraoh_@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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