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률전문가와 판결 지연 검토..."한일관계 악화 우려"
[더팩트ㅣ송주원 인턴기자] 박근혜 정부 당시 외교부가 한일관계 악화를 우려해 강제징용 피해자 재상고심 판결을 지연시키려 노력한 증거가 제시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6부(윤종섭 부장판사)는 30일 오전 10시 서울 서초구 중앙지방법원에서 사법행정권을 남용한 혐의로 기소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장의 16차 공판을 열었다.
검찰은 2013년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손해배상 재상고심 당시 외교부 내에서 작성된 문건을 증거로 제시했다. 이는 검찰이 외교부 압수수색을 통해 얻은 20만 쪽 분량의 자료 중 일부분이다.
검찰이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외교부는 서울고법 판결을 하루 앞둔 2013년 7월 9일 ‘강제징용 동원 피해 사건 파기환송심 판결 관련 보고’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작성했다. 보고서에는 '소송 경과 및 현황', '대법원 판결까지 1, 2년 소요' 등 외교부가 재상고심 재판 진행과 더불어 대법원 최종판결에 관심을 기울인 정황이 나타났다. 다음날 서울고법은 피해자들 1명당 1억 원씩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서울고법 판결 후 약 한 달이 지난 8월 23일 작성된 ‘강제동원 피해 관련 법률 전문가 간담회 결과 보고’라는 문건에 따르면 조태열 당시 외교부 2차관은 자신의 사무실에서 간담회를 열고 서울대, 고려대 교수 등 법률전문가에게 자문을 구했다. 보고서에따르면 간담회에서 나온 대화 내용은 “(서울고법 판결은) 우리 정부의 기존 입장과 상충”, “정부, 외교당국과 협의 정식 제의”, “일본 측 분쟁해결기구(ICSID)에 제소 우려” 등이다. 또한 “대법원 심리 지연 필요성, 조기 선고 방지” 등의 내용도 기재돼 대법원 판결을 최대한 미루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2013년 11월에는 재상고심 승소에 따른 한일관계 악화를 우려한 정황이 더욱 직접적으로 드러났다. 11월 12일 작성된 배상판결 관련 의견서에는 “이번 판결로 외교적 파장이 많을 것으로 예측된다”며 “대법원까지 가기 전에 대법관 전원합의체를 구성해야 한다”고 적혀 있다. 또한 대법원 법관의 정치적 성향까지 거론하며 “2012년 교체된 대법관 중 4명이 보수 성향”이라고 덧붙였다.
같은 달 23일 작성된 문건에서 외교부는 “1969년 한·일 청구권 협정이 주축이 된 양국 관계의 법적, 정치적, 경제적 기반 붕괴가 우려된다”며 “한 국가에서 두 목소리가 나오면 안된다. 사법부와 행정부는 의견을 같이 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대법원 심리 절차를 지연시켜야 한다”고 다시 강조하며 “행정부와 대법관의 직접 접촉이 어렵다면 최종 판결 전 세미나를 개최해 재판연구관에게라도 정부 입장을 전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강제징용 피해자들은 2005년 2월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신일철주금 등 전범기업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걸었다. 앞서 피해자들은 오사카 지방재판소에 강제징용 피해 보상 및 임금 배상을 위한 소송을 제기했으나 패소한 바 있다. 1965년 한일 양국이 맺은 청구권협정에 따라 피해자 개인에게 배상할 책임이 없다는 이유였다. 중앙지법 1, 2심 모두 일본 기업의 손을 들어 줬으나 대법원은 2012년 5월 서울고등법원으로 파기 환송했다. 이날 재판에서 검찰이 제출한 증거 문건은 파기 환송에 따른 재상고심 판결을 전후한 시기에 외교부 내에서 작성된 것이다. 대법원은 2018년 10월 30일 신일철주금에 피해자 1인당 1억 원 배상하라고 최종 판결했다.
ilraoh_@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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