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처 통과시키려면 수사대상서 국회의원 뺏어야" 문 대통령 회고 재조명
[더팩트ㅣ송은화 기자]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이 23일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법안을 패스트트랙(신속처리대상안건) 처리하는데 합의한 뒤 법무부는 환영하는 입장을 밝혔으나 검찰은 신중한 모습이다.
법무부는 이날 여야 4당이 공수처법 제정안 등에 대해 '패스트트랙 합의'를 이루자 "적극 참여하겠다"면서 환영의 뜻을 드러냈다. 법무부는 "역점 과제로 추진해온 공수처법안 및 수사권조정법안 등이 신속처리 대상안건으로 국회에서 논의될 수 있게 돼 다행스럽게 생각한다"며 "향후 진행될 국회 논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지원해 국민을 위한 바람직한 검찰개혁이 완수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공수처 합의안은 공수처의 기소 권한을 제한해야 한다는 바른미래당과 기소권 없는 공수처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더불어민주당이 서로 한 걸음씩 물러나면서 합의가 이뤄졌다. 합의안에 따르면 공수처는 수사권과 영장 청구권을 갖되 검사와 판사, 경무관 이상 고위직 경찰과 관련된 사건에는 예외적으로 기소권도 주어진다. 또 공수처장은 15년 이상의 경력을 지닌 법조인 또는 법학 관련 조교수 이상급 중 공수처장추천위원회가 후보를 정해 2명을 추천하고 대통령은 이 가운데 1명을 지명,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임명한다.
1996년부터 논의가 시작된 공수처 설치 등 소위 사법개혁이 20여 년만에 가시화되자 검찰은 공수처 도입에 당연하다는 반응을 보이면서도, 신중한 입장을 드러냈다. '패스트트랙 합의'를 즉각 환영한 법무부와 달리, 검찰 수뇌부인 대검찰청은 특별한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대검 관계자 등에 따르면 검찰은 법안의 상세한 내용 등을 충분히 검토한 뒤 공식적인 의사를 밝힐 것으로 알려졌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찬반 의견이 갈렸다.
찬성론자 사이에서도 일부는 공수처의 기소권 제한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도 있었으나, 대부분은 국회에서 공수처 설치가 이 정도 가시권에 들어온 것은 이번이 처음인 만큼, 첫 걸음을 내딛은 것에 의미를 둬야 한다는데 공감했다. 그동안 법조인들이 특권의식을 내려놓아야 한다고 주장해 온 박찬운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번 합의안에 대해 우선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박 교수는 "공수처 설치가 무산되거나 기소권을 전혀 주지 않는 최악의 상황을 막았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향후 시행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법을 추가로 개정하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도 '부분 기소권' 안으로 합의된 데 대해 아쉬움을 드러내면서도 환영의 입장을 밝혔다. 그는 2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온전한 공수처 실현을 내년 4월 총선 이후로 미루자는 의견도 있곘지만, 일단 첫 단추를 꿰고 첫 발걸음을 내딛는 것이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2020년 초에는 공수처가 정식 출범할 수 있기를 고대한다"고 썼다.
임은정 청주지방검찰청 충주지청 부장검사도 페이스북을 통해 "공수처 도입을 반대하고 수사권 조정 등 큰 틀에서의 검찰 개혁을 요구하는 금태섭(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선배의 원론적인 주장 취지에는 공감한다"면서도 "정치검사들이 차기 총장 후보군을 비롯해 검찰수뇌부에 그대로 있는 상황에서 공수처 도입을 반대하는 것은 너무도 순진한 원론"이라며 공수처 도입을 지지했다. 일선 지청에 근무하는 한 검사도 "취지만 잘 유지된다면 순기능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문무일 검찰총장 역시 2018년 3월 국회에서 사법개혁특별위원회가 바람직한 공수처 도입안을 마련하면 "국민의 뜻으로 알고 존중하겠다"는 수용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검찰 총장이 공수처 도입에 찬성의 뜻을 표한 것은 문 총장이 처음이다.
반면 반쪽짜리 공수처 도입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높았다. 한 변호사는 "제한적 기소권도 문제지만 국회의원과 청와대가 빠진 것은 '앙꼬 없는 찐빵'과 다를바 없다"며 "검찰이 국회의원과 청와대 수사를 제대로 못했기 때문에 공수처를 추진한 것 아니냐"고 비난했다.
임지봉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소장은 "이 정도 수준의 공수처라면 검찰 견제조차 어려울 것"이라면서 "판사·검사·경찰기소법으로 이름부터 바꿔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문재인 대통령은 자신의 자서전 <문재인의 운명>에서 '민정수석을 두 번(2003년, 2005년) 하면서 끝내 못한 일, 그래서 아쉬움으로 남는 몇 가지가 있다'고 밝히며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 불발'을 그 중 하나로 꼽았다. 문 대통령은 이 책에서 검찰 개혁을 제도의 문제라기보다 검찰 스스로 정권의 눈치보기에서 벗어나야 할 ‘문화의 문제’로 해석했다.
문 대통령은 <운명>을 통해 "(공수처 설치는) 국민들의 지지여론도 높고 양대 후보(이회창·노무현)가 함께 제시했던 공약인데도 법안을 만드는 과정에서 장애가 생겼다. 공수처의 수사대상 때문이었다. 대통령 주변 측근과 친인척, 청와대 주변 권력형 비리 위험인물이 기본 대상이다. 그 외 고위공직자들도 모두 망라된다. 국회의원도 당연히 포함됐지만, 국회에서 이를 용납하지 않았다. 국회는 이 법안 처리에 거의 파업을 했다. 형평성 문제가 있지만, 국회의원을 빼고서라도 추진했어야 할 법안이고, 법안통과를 목표로 했다면 국회의원을 수사대상에서 빼는 것을 고려했어야 했다. 국회도 문제였지만, 우리쪽도 유연성이 부족했다"고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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