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낙마자 대부분 민주당…'색깔론' 등 진보성향에 가혹?
[더팩트ㅣ장우성 기자] 헌법재판소는 6.10 민주화운동의 결실로 1988년 출범했다. 31년 동안 거쳐간 헌법재판소장은 6명, 헌법재판관은 42명(현직 제외)에 이른다. 다만 2005년 헌재 재판관이 인사청문회 대상이 된 후 5명이 임명 문턱을 넘지 못 했다. 5명 중 4명이 민주당계열의 이른바 '진보성향'이다.
헌법재판소장·헌법재판관 후보 중 처음 고배를 마신 사람은 전효숙 전 재판관이다. 2006년 헌법재판소장 후보에 오른 전효숙 재판관은 3개월11일 만에 노무현 대통령의 지명 철회로 물러났다. 전 재판관은 2003년부터 재판관으로 일해오다 노무현 대통령의 헌재소장 후보 지명을 받게됐다. 그런데 고민이 있었다. 이미 재판관으로 3년을 보낸 상태에서 임명이 되면 소장 6년 임기를 보장받지 못 한다는 논란이 일었다. 결국 청와대, 대법원 등과 협의해 지명 직전 재판관직에서 사퇴했다. 이게 함정이 될 줄은 몰랐다.
당시 야당이던 한나라당과 새천년민주당은 전효숙 후보가 헌재재판관에서 물러나 민간인이 됐으니 헌재소장 후보 자격이 없다고 반대했다. '헌재소장은 국회의 동의를 얻어 헌재재판관 중 대통령이 임명한다'는 헌법 조항이 근거였다. 그러나 인사청문회 도입 전에는 김용준, 윤영철 전 헌재소장이 민간인 신분에서 임명된 적도 있었다. 결국 청문회 도입 후 법적 정비가 제대로 되지 않아 벌어진 문제였지만 야당의 속내는 노무현 대통령과 사시 동기인데다 신행정수도특별법 위헌소송에서도 유일하게 참여정부의 손을 들어준 전효숙 후보를 헌재소장으로 용납하기 어려웠다. 야당은 자진사퇴나 지명철회 양자택일을 요구하며 국회 동의안 상정을 3개월간 거부했다. 결국 전효숙 후보가 헌재의 장기 파행을 막겠다며 노 대통령에게 지명철회를 요청하면서 일단락이 됐다. 결국 기대에 부풀었던 최초 여성 헌재소장 탄생은 좌절됐고 지금까지도 나오지 않았다.
2012년 새누리당과 자유선진당의 반대로 8개월을 끌다가 낙마한 조용환 재판관 후보는 '색깔론' 덫에 걸렸다. 민주당 추천을 받은 조용환 후보는 천안함 사건이 북한의 소행이라고 '확신'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국회에서 동의안이 부결 처리됐다. 조 후보는 당시 청문회에서 이은재 한나라당 의원의 "천안함 사건이 북한 소행이라고 믿느냐"는 질문에 "정부가 그렇게 발표했고 저도 그런 것 같다고 생각한다. 다만 확신이라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고 대답했다가 발목을 잡혔다. 새누리당과 자유선진당은 "조 후보의 사상이 의심스럽다"며 선출안 표결을 미루다가 후보 지명 8개월만인 2012년 2월 재적 252명 중 반대 129표(찬성 115표)로 부결시켰다. 헌재재판관 선출안이 국회에서 부결된 건 처음이었으며 특히 야당이 추천한 후보가 낙마한 건 전무후무했다. 설마설마하던 민주당이 충격이 컸던 이유이기도 하다.
이명박 대통령이 임기말인 2013년 1월 지명했던 이동흡 헌재소장 후보는 개인 신상문제로 낙마한 사례다. 이동흡 후보는 위장전입, 장남 증여서 탈루, 주말 업무추진비 사용, 부인 동반 해외출장 등 제기된 의혹이 20가지가 넘었다. 결정타는 헌법재판관 시절 특수업무경비 사적 유용 논란이었다. 임기 동안 3억 2000만원의 특정업무경비를 현금으로 받아 개인 계좌에 넣어 금융상품에도 투자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청문회에서 당사자의 해명도 미흡해 새누리당 의원까지 나서 질타하기도 했다. 당선인 신분이던 박근혜 대통령에게도 부담이었다. 결국 후보자 지명 41일만에 자진 사퇴했다. 지금까지 자유한국당 계열이 지명한 헌재 후보 중 유일무이한 낙마 사례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직후 지명했던 김이수 전 후보는 헌정 사상 최초로 국회에서 부결된 헌재 소장 후보다. 그 역시 개인 자질보다는 색깔론이 암초였다. 헌재재판관 시절 통합진보당 해산 사건에서 재판관 9명 중 홀로 기각의견을 내는 등 뚜렷한 진보적 성향을 보인 게 자유한국당 등 야당의 집중 공세를 불렀다. 게다가 문재인 정부 초기 여야 대치 속에 '고래싸움에 새우등' 처지가 돼 후보지명 116일만에 국회에 동의안이 올라갔으나 과반 147표에 2표가 모자라 분루를 삼켰다.
이미선 신임 헌재재판관과 종종 비교된 이유정 전 헌재재판관 후보도 주식투자 논란에 휩싸였다. 잘 알려지지 않은 코스닥 기업 주식에 투자해 수억원의 차익을 올려 불법 거래 의혹 등을 받았다. 청와대는 임명 강행 분위기였으나 이유정 후보가 대통령과 헌재, 소속 법무법인에 부담이 되고싶지않다며 지명 24일만에 자진사퇴했다. 이후 검찰 수사에서 불법거래 의혹은 무혐의 처리됐고 내부정보를 이용해 N사 주식 폭락 과정에 주식을 매도해 손해를 피했다는 혐의를 놓고 재판이 진행 중이다. 그는 최근 이미선 재판관 논란 이후 언론보도에 자신의 이름이 다시 등장하자 "불법적인 거래로 수억원의 이익을 얻었다는 의혹은 모두 허위로 밝혀졌고 현재 기소된 내용도 무죄를 확신한다"며 "인사청문회 과정은 물론, 금융감독원과 검찰 조사과정에서 사실과 다른 내용의 보도로 인격살인에 가까운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며 억울한 심정을 내비쳤다.
문재인 대통령이 19일 거액 주식 보유가 시빗거리가 된 이미선 재판관 임명을 밀어붙인 것도 역대 재판관 임명 과정의 학습효과라는 풀이도 나온다. 전효숙 전 헌재소장 후보 지명철회 후 더 거세진 야당의 공세에 노무현 정부가 레임덕에 빠진 전례를 되풀이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이동흡 전 후보가 보여줬듯 개인 의혹은 해명이 되느냐가 관건이다. 이미선 재판관은 일단 청문회에서 야당이 제기한 의혹은 대부분 해명이 됐고 검찰 수사를 받아도 자신있다는 입장이라 임명을 밀어붙인 배경이 됐다. 과거 전관예우 거액 수임료, 부동산투기 의혹 등 '국민눈높이'에 한참 맞지않았던 후보도 다 임명됐다는 점도 거론된다. 주식문제가 쟁점이었던 이유정 전 후보의 선례도 반면교사가 됐을 수 있다. 지금까지 낙마한 헌재소장과 재판관 후보 5명 중 민주당 계열이 4:1로 압도적인 점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자유한국당은 과거 전효숙, 조용환, 김이수 후보를 특별한 하자가 없는데도 절차 문제나 '색깔론'으로 시간을 끌다 죄다 낙마시켰는데 더이상 양보할 필요가 없었다는 해석이다.
leslie@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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