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경 씨 "임신중절, 사회적 기본권 측면에서 재논의 해야"
[더팩트ㅣ송은화 기자] "낙태죄 위헌 여부를 결정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지만, 낙태죄 폐지가 끝이 아닌데 마치 위헌이냐 합헌일까에만 관심이 쏠리는 것 같아 아쉽다."
2018년 1월부터 2월까지 한 달간 '유럽 낙태여행'을 페미니즘 출판사 '봄알람' 3명의 팀원들과 다녀온 이민경(27) 기획자는 11일 헌법재판소의 임부의 임신중지를 금지한 형법 269조 1항(자기낙태죄)과 의사 등의 임신중절수술을 금지한 270조 1항(의사 등 낙태죄)에 대한 위헌 여부 선고를 하루 앞둔 10일 이같이 밝혔다.
이민경 씨는 이날 <더팩트>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2012년 당시 재판관 4(합헌)대 4(위헌) 의견으로 합헌 결정이 내려졌지만, 7년간 한국사회에도 페미니즘 대중화가 진행되고 있는 만큼 위헌 결정이 날 수도 있을 것으로 본다"고 내다봤다. 하지만 "여성의 몸을 국가가 제한할 수 있다는 사고 자체가 잘 못된 것"이라며 "낙태죄 폐지를 계기로 여성의 몸 결정권을 국가가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이 명백해졌으면 좋겠다"고 소신을 밝혔다.
그러면서도 유럽낙태 여행 중 들렀던 루마니아는 1970~1980년대 차우세스쿠 독재정권이 낙태를 전면 금지 시켜 많은 여성이 비위생적인 낙태 수술을 받다 숨졌고, 원치 않은 출산으로 고아의 수가 늘어나는 등 문제들이 잇따랐다고 설명했다. "국가가 낙태를 엄격히 통제했을때 얼마나 끔직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 지를 보여준 실제 사례"인 셈이다.
이 씨는 특히 "현재 루마니아는 낙태는 합법이지만 성교육과 피임 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여전히 여러 문제를 겪고 있다"며, "우리나라 역시 낙태죄가 합헌이냐 위헌이냐뿐 아니라, 낙태 발생 자체를 막을 수 있도록 피임 교육을 활성화하는 등 낙태죄에 연관된 여러 문제들을 논의하고 고민하는 것부터 우선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민경 씨는 네덜란드에서 만난 세계적인 낙태활동가 레베카 곰퍼츠 대표와의 만남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곰퍼츠는 20여년간 낙태약 제공 국제단체인 '위민온웨이브’(Women on waves)에서 일하며 낙태가 불법으로 규정된 나라의 여성들에게 낙태약을 나눠주는 활동을 하고 있다.
"낙태활동가 사이에서는 네덜란드가 마치 여성 재생산권이 보장된 나라, 천국으로 알려져 있는데, 네덜란드나 선진국이 지향점이 되서는 안된다." 곰퍼츠 대표와 대화는 환상이 무저지는 경험이었다. 네덜란드에서 낙태 수술은 합법이지만 정부에서 정한 낙태클리닉이 전국에 12개 밖에 없어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것. 이 씨는 "네덜란드 수도인 암스테르담에 조차 낙태클리닉이 없다는 사실은 정말 충격적"이었다고 했다. 상황이 이렇기 때문에 곰퍼츠를 비롯한 네덜란드 여성단체들은 낙태 수술을 공공의료 서비스로 더 확대해 나가기 위해 여전히 싸우고 있다.
한국은 네덜란드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낙태죄가 위헌 결정되더라도, 낙태 전문병원에서만 수술이 가능한 등 관련 법령이 만들어지면 여성들에게 직접적인 타격이 올 수 있다. 그는 "낙태전문병원이 신설된다면 전국에 몇 개가 조성될 수 있을지, 비용.가격적인 측면에서는 어떨지 등에 대한 이야기들도 낙태죄가 위헌이냐 아니냐와 함께 논의되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또 "임신중절 허용 범위를 일부 넓히는 방식으로 논의가 좁혀지면, 아이를 낳아 기를 수 있는 자격을 여성이 스스로 증명해야 하고, 이를 심사하거나 결정하는 주체는 결국 국가가 된다"며 "이 역시도 여성의 몸 결정권을 본인이 갖지 못하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 씨는 "이런 이유에서 여성의 건강, 재생산권 등 사회적 기본권 측면에서 임신중절이 재논의 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씨는 "1년 전 유럽낙태여행을 하면서 90세에도 여전히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롤모델이 될 만한 분들을 많이 만난 것이 인생의 소중한 경험이었다"면서 "앞으로 잘 살아야겠다, 정신차려야겠다는 생각을 수없이 했다"고 한다.
11일 오후 7시부터 헌재 인근에서 열리는 '낙태죄 위헌선고 여부 환영·규탄 집회'에도 참석할 생각이다 그는 "어떤 결정이 나오더라도 여성의 몸 결정권을 여성 스스로 지킬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될 때까지 역할을 해 나갈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앞서 헌재는 2012년 8월 재판관 4대 4 의견으로 '낙태죄 처벌'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다. 당시 헌재는 결정문에서 "태아는 그 자체로 모(母)아 별개의 생명체이고 특별한 사정이 없는한 인간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생명권이 인정돼야 한다"고 밝혔다. 임신 초기의 낙태나 사회적.경제적 사유에 의한 낙태를 허용하고 있지 않는 것이 임부의 자기결정권에 대한 과도한 제한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찬반양론이 팽팽히 맞섰으나, 위헌정족수인 6명에 미치지 못해 합헌 결정이 났다.
낙태죄 위헌 결정은 11일 헌법재판관 9명 중 6명 이상이 찬성하면 가능하다. 법조계에서는 합헌이 나올 가능성은 높지 않은 것으로 전망했다. 전면적 허용보다는 '임신 초기 낙태행위까지 처벌하는 것은 임산부의 자기결정권을 과도하게 침해하기 때문에 일정 기한까지 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방식의 헌법불합치 결정이 나올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는 2019년 4월 11일. 이날 결정되는 '낙태죄 위헌 여부'에 대해 헌재가 어떤 판단을 내릴지 관심이 쏠린다.
happy@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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