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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한국 출판업<상>] 베스트셀러 집계도 제각각…"분식점보다 못하다"

  • 사회 | 2019-04-01 05:00
서울 한 대형서점에서 시민들이 책을 고르고 있다./박지혜 기자
서울 한 대형서점에서 시민들이 책을 고르고 있다./박지혜 기자

국내 출판산업계에 큰 충격을 준 출판도매상 송인서적 부도사태가 일어난 지 벌써 2년이 지났다. 이 사태로 통합적 도서유통정보 시스템 미비, 어음관행 등 낙후된 출판 유통 구조 등 출판업계의 민낯이 드러났다. 가뜩이나 독서인구 감소로 위축된 출판산업에 쓰나미급 태풍이 몰아친 것이다. 이후 정부는 '4차 출판문화산업 진흥 5개년 계획'을 내놓고 5년 동안 총 3000억원의 예산을 투입하기로 했지만, 이 사업의 핵심으로 꼽히는 '출판유통통합시스템'의 개발은 2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본격화 되고 있다. 서점과 유통사 등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보니 협의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는 이유다. 5G 시대, IT강국인 우리나라에서 어떤 책이 얼마나 팔렸고, 어디(서점)에 얼마나 남아있는지에 관한 정보를 제대로 알 수 없다는 사실을 믿을 수 있겠는가? 이에 <더팩트>는 한국 출판업계의 현주소를 진단하고, 출판사와 서점 업계 관계자 뿐 아니라 정부, 관련 학계 전문가 등에 대한 인터뷰 및 취재를 통해 우리 출판업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2회에 걸쳐 살펴본다. <편집자주>

송인서적 사태 2년 지나도 '주먹구구'…아직도 어음결제 성행

[더팩트ㅣ송은화 기자] '천만 관객 돌파'

지난 2월 영화 '극한직업'은 2019년 최초로 천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가 됐다.

이 영화를 본 관람객 수는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 바로 영화진흥위원회가 운영하는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을 통해서다. 영진위는 2004년 5월 투명하고 정확한 한국 영화산업의 통계자료를 확보하고, 영화시장의 유통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을 통해 박스오피스를 발표하고 있다. 그 전까지는 영화별 관객 수를 주말 서울 시내 극장을 기준으로 개별 배급사가 집계했으나, 이 시스템을 통해 전국영화관의 입장권 발권정보를 온라인으로 실시간 집계 및 처리하고 있다.

판매실적 알 수 있는 통합시스템 부재…매대는 광고비가 좌우

그렇다면 '책'의 경우는 어떨까? '베스트셀러'는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같은 시스템을 통해 실시간으로 확인이 가능할까? 결론부터 이야기 하자면 'NO'다.

일반적으로 책을 사려면 대형 서점이나 인터넷 서점을 주로 이용한다. 이 때 매장의 '베스트셀러' 가판대나 인터넷 서점에 집계된 순위는 각 서점별로 조금씩 산출 방식이 다르다.

우선 교보문고의 '베스트셀러'는 해당 기간 내 판매 순위로 집계해 제공된다. 교보문고 브랜드관리팀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1인 1건 기준으로 집계하며 세부 집계 기준에 따라 분야와 합산된 종합 순위가 제공"되며 "독자들에게 순수한 판매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사재기 등 여러가지 필터링 작업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절대적인 수치나 기준점을 넘어야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YES24는 대상 기간에 따라 YES24 베스트셀러, 일별, 주별, 월별 베스트를 나눠 집계한다. 베스트셀러는 최근 7일 간의 판매량과 주문 수를 기준으로 매일 1회 집계(그 전날부터 역산해 최근 7일 간의 판매량과 주문수 기준)했고, 일별 베스트는 전일 판매 데이터를 기준으로, 주별 베스트는 전주 월요일~일요일의 판매 데이터를 기준으로 집계했다. 또 월별 베스트는 전월 판매 데이터를 기준으로 집계했다. YES24 베스트셀러는 국내 도서 종합의 경우 잡지와 중고전집, 초등참고서, 중고등참고서 분야의 도서는 집계에서 제외했다.

알라딘은 종이책과 전자책을 합산한 판매량을 기준으로 가장 많이 판매된 도서 순으로 결정한다. 알라딘 관계자는 "베스트셀러는 주간과 일간으로 구분해 집계하는데, 주간 베스트셀러는 해당일 전일~일주일 전까지를 기준으로 한다"면서 "예를 들어 오늘이 수요일이라면 전주 수요일부터 이번주 화요일(어제)까지의 판매량 기준이라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교보문고는 지난 2012년 본사를 종로에서 파주 출판단지로 이전했다. /파주=서민지 기자
교보문고는 지난 2012년 본사를 종로에서 파주 출판단지로 이전했다. /파주=서민지 기자

결론적으로 국내 대표서점으로 불리는 3곳의 베스트셀러 기준은 조금씩 다르다. 가장 많이 판매된 도서 순으로 결정되니 비슷할 순 있지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같은 통합 시스템이 없기 때문에 명확히 하자면 '베스트셀러' 순위는 각 서점별 판매량이다.

분식점에서도 포스(POS, Point of sales, 판매시점 정보관리) 시스템을 사용해 하루 매출 중 어떤 메뉴가 얼마나 팔렸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이른바 5G 시대, IT 강국인 한국에서 출판업계만 과거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놀라운 일은 또 있다. 대형서점을 방문해보면 책을 보기좋게 골라놓은 매대에 가장 먼저 눈이 간다. 하지만 신간 매대를 제외한 매대 다수가 '광고비'에 따라 진열된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교보문고 관계자는 "광고가 표시된 매대만 광고집행에 따라 진열된다"면서도 "유통사 마다 광고 기준이 다르고 금액은 점포별, 위치별, 형태별로 다르지만 세부 금액 산정 정보는 제공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한 출판사 대표는 "큰 출판사나 친분이 있는 곳은 당연히 해당 서점 MD의 재량에 따라 조건이 달라질 수 있다"며 "예를 들어 A출판사가 교보에만 책을 납품하기로 하고 다른 오프라인 서점에는 거래를 안 할 경우 독점이기 때문에 대우가 굉장히 좋아진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판매 수익이 확실한 유명인사의 책이나 화제가 된 책이어야 광고비를 받지 않고 매대를 설치한다"고 덧붙였다.

출판사 편집자 출신의 한 소규모 서점 대표는 "인터넷 서점의 수많은 책 소개도 광고비를 기준으로 구성된다"며 "자본 논리로 책이 움직이면 패스트푸드 같은 책만 남고 삶의 지향과 균형을 유지해줄 날카로운 책은 말라 죽고 말 것"이라고 우려했다.

송인서적 부도로 출판업계 민낯 드러났지만 개선은 '소걸음'

2017년 1월. 업계 2위로 알려진 출판도매상 송인서적이 부도를 내자, 당시 국내 출판계에는 위기감이 고조됐다. 출판도매상 및 출판사, 지역서점에 어떤 책이 얼마나 팔렸는지 등을 통합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하지 않은 채 대금을 주고받다 만기가 돌아온 600억원대 어음을 막지 못해 1차 부도를 낸 것. 결국 인터파크가 인수해 현재는 인터파크송인서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송인서적 사태로 국내 출판산업계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났다. 현재 출판 유통 시스템으로는 출판사에서 출간한 책이 몇 권이나 팔렸는지, 어디 서점에 몇 권의 재고가 있는지 등을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때문에 위탁판매와 어음결제 관행도 여전히 살아있다. 통합시스템이 마련된 선진국은 각 서점이 조사를 거쳐 필요한 책을 현매로 구입해 판매하는 구조다. 국내는 아직도 출판사가 총판이나 서점에 위탁해 팔린 책만 돈을 받을 수 있고 그나마 어음으로 지불되는 등 후진국형을 못 벗어났다.

한 출판사 대표는 "국내에서는 총판(출판 도매상)이든 서점이든 무조건 팔리는 책만 정산해 준다"면서 "총판에서 일단 100권 달라고 하면, 이 100권 비용은 홍보비 개념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밝혔다. 즉 101권째부터 정산을 해준다는 것. 특히 "보통 총판과 모든 서점에 책을 유통시키는 일원화 계약을 하면 최대 60% 정도에 계약이 된다"며 "그러니깐 1만원 짜리 책이면 1권 판매시 6000원을 출판사에 매달 결제해 주는데, 그나마도 100만원을 넘어가면 어음으로 주기 때문에 3개월 이후에나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어려움을 호소하기는 총판도 마찬가지다. 한 총판 관계자는 "송인서적 부도사태 후 중소규모 서점들은 더 어려워지고, 출판사들은 대형서점이나 인터넷서점에 직접 유통하는 경우도 늘어나다 보니 총판 역시 운영이 쉽지 않다"고 밝혔다.

송인서적 1차 부도! 출판 업계 '비상'. 업계 2위 규모의 대형 서적 도매상인 송인서적이 50여억원 규모의 어음을 막지 못하며 2일 1차 부도를 냈다. /한국출판영업인협의회 사이트(2017.01.03)
송인서적 1차 부도! 출판 업계 '비상'. 업계 2위 규모의 대형 서적 도매상인 송인서적이 50여억원 규모의 어음을 막지 못하며 2일 1차 부도를 냈다. /한국출판영업인협의회 사이트(2017.01.03)

송인서적 부도 이후 문화체육관광부는 2017년 2월 '제4차 출판문화산업진흥 5개년 계획'을 내놓았다. 2012년까지 도서 발간부터 유통, 판매까지 관련 정보를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는 통합 출판정보관리시스템을 구축하는 게 핵심이다. 이렇게 되면 그동안 제대로 알 수 없었던 유통, 판매 관련 전반적인 정보를 투명하고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으며, 서점마다의 베스트셀러가 아닌 빅데이터를 기준으로한 진짜 '베스트셀러'가 드러나게 된다.

그러나 문체부 산하 출판문화산업진흥원은 2년이 지난 올해 2월 27일에서야 '출판유통 통합시스템'을 구축하겠다고 발표했다. 오는 7월까지 국고 50억원을 투입해 서점의 단말기 등에 도입할 이 프로그램 개발에 집중하고, 시스템 구축 뒤에는 출판사 및 서점, 도매상 등 이해 당사자들의 참여를 유도해 2021년부터 시행할 계획이다.

해당 업무를 담당하는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문재상 주임은 "정부 주도로 2018년부터 통합시스템 구축 사업을 본격화했지만, 출판사와 유통, 서점 등 민간들과 협의할 사항이 많아 협의하고, 연구조사 등을 진행하다 보니 시간이 많이 흘렀다"며 "올해 1월부터 (시스템) 개발이 본격화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happy@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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