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부, 허락 없이 자택에서 한 발짝도 나갈 수 없어..."구금과 같은 상태"
[더팩트ㅣ서울고등법원=송은화 기자] "고맙습니다."
서울고등법원 형사1부(정준영 부장판사)가 6일 조건부 보석을 허가하자 이명박 전 대통령은 법정에 나온 측근들에게 복잡다단한 심경을 담은 '고맙다'는 말을 건넸다. 법원 허락 없이는 자택에서 한 발짝도 나갈 수 없고 접견, 통신이 안되니 구금과 같은 상태가 된다는 엄격한 조건을 내걸었지만 지난해 3월 22일 구속된 지 349일 만에 영어의 몸에서 해방된 이 전 대통령은 법원의 판결을 겸허히 받아들였다.
이날 항소심 법원은 이 전 대통령이 청구한 보석(보증금 등 조건을 내건 석방)을 조건부로 허가했다. 이에 따라 이 전 대통령은 오후 서울 강남구 논현동 자택으로 돌아갔다. 취재진의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됐지만 이 전 대통령은 대기한 차를 타고 곧바로 자택으로 이동, 차량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으며 소감도 밝히지 않았다.
이날 재판은 검찰과 변호인 측 항소 이유에 대한 설명이 각각 40분, 60분 가량 이어진 뒤 정오쯤 이명박 전 대통령의 보석 청구에 대한 재판부의 보석 허가 결정이 내려졌다. 10분의 휴정 뒤 이 전 대통령 측 변호인이 재판부의 조건에 대해 의문스러운 부분 몇 가지를 다시 한번 질의한 뒤 조건부 보석 허가를 받아들이면서 최종 결정됐다.
재판부는 우선 수면 무호흡증 등 건강 문제를 이유로 한 이른바 '병보석'에 대해서는 구치소 내 의료진이 충분히 관리할 수 있다는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법원 인사 등으로 새롭게 항소심 재판부가 형성돼 구속 만기일에 선고한다고 가정해도 고작 43일 밖에 주어지지 않은 만큼 현실적으로 구속기한 최종 만기일인 4월 8일까지 선고는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구속 만료후 석방되면 오히려 자유로운 불구속 상태에서 주거제한이나 접촉 제한을 고려할 수 없지만, 조건부로 보석이 허가되면 임시 석방해 구속영장의 효력이 유지되고, 조건을 어기면 언제든 다시 구치소에서 감금할 수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10억원의 보증금 납입과 석방 후 주거는 주소지 한 곳으로 제한했다. 이에 따라 이 전 대통령은 배우자와 직계 혈족 및 그 배우자, 변호인 외에는 누구와도 자택에서 접견하거나 통신을 할 수 없으며, 병원 진료가 필요할 경우에도 법원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앞서 이 전 대통령 측에서는 진료를 받을 서울대병원도 제한된 주거지에 포함시켜 줄 것을 요청했지만, 재판부는 진료를 받아야 할 때마다 이유 등을 담은 보석 조건 변경 허가 신청을 하라는 조건을 내걸었다.
또 재판부는 최근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의 '황제보석' 논란으로 보석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높다는 점을 의식한 듯 "보석은 무죄석방이 아니며, 엄격한 보석조건으로 구치소에서 석방하지만 구속영장은 유지된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건강문제 청구는 받아들이지 않는 만큼 "매일 자택에서 규칙적으로 한 시간 이상 운동하고 성실히 재판에 임하라"고 이 전대통령에게 당부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 전 대통령 재판에 대해서는 "새로 구성된 항소심 재판부는 전직 대통령이라는 역사적 의미를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으며, 공소사실에 대해서는 선입견 없이 공정하고 엄정히 재판하려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 전 대통령은 재판부가 보석을 허가한 뒤 오늘 재판이 마무리 되자 법정을 찾은 측근들에게 "고맙다"고 말하며 옅은 미소를 보이기도 했다.
실제로 법조계에서는 이 전 대통령 보석 신청과 관련해 허가 될 것이라는 주장과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 팽팽히 맞섰다. 앞서 5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보석 청구가 기각되자 이 전 대통령에 대한 보석 신청 역시 허락되지 않을 수 있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기도 했으나, 이 전 대통령의 경우 양 전 원장과 다르게 구속 만기일인 4월 8일까지 한 달정도 밖에 남지 않아 어차피 다음 달이면 구속이 만료돼 석방되기 때문에 보석 신청을 허가할 것이라는 의견도 많았다.
이 전 대통령측 변호인 법무법인 열림 강훈 변호사는 보석 허가 결정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도 법원이 예상했던 것 보다 훨씬 엄격한 조건부의 보석을 허가하자 (구속 만기일인) 4월 8일까지 (구치소에) 있는 것이 낫지 않냐"고 본인에게 물어봤다"며 "실제로 참모들 가운데도 4월 8일까지 (구치소에) 있는 것이 낫지 않느냐는 의견도 있었다"고 밝혔다.
다만 "어쨌든 기본적으로 이번 보석 청구 이유가 도주 및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다는 것을 법이 인정한 무죄추정의 원칙에 의해 소위 방어권을 보장해 달라는 입장에서 청구한 보석이었고, (재판부가) 그 주장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가혹하지만 감수하자고 결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보석 허가가 된 만큼 변호인들 입장에서도 구치소를 찾아 (이 전 대통령을) 접견해야 하는 부담이 적어졌고, 대통령께서도 마음 편히 과거 기억을 되살릴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기 때문에 대통령의 방어권을 위해서는 잘 된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MB 최측근으로 알려진 이재오 전 국회의원은 이날 재판을 앞둔 오전 9시 35분쯤 서울고등법원 제 303호 법정 앞에 모습을 드러냈으며, 재판이 진행된 2시간 30여분간 법정을 지켰다. 중간중간 작은 목소리로 기자들에게 "(이명박 전 대통령) 보석이 허가돼야 기삿거리가 되겠죠"라고 질문하는 등 이번 보석 허가 결정에 대한 희망을 비추기도 했다. 이외에도 법정을 찾은 이 전 대통령 측근들은 이 전 대통령의 보석이 허가되자 "건강하십시오"라고 조금 큰 소리로 외치기도 했으며, 재판 전에도 마치 보석이 허가될 것을 전망한 듯 밝은 분위기 속에서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오늘 재판 결과에 대해 이야기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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