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안전보건법' 처리 막았던 한국당 애도 거부
[더팩트|종로=문혜현 기자] 7일 고 김용균 씨의 장례가 엄수되고 있는 서울대학병원 장례식장. 5번 분향실 입구에서 멀리 떨어져 놓인 두 개의 조화가 '벽'을 보고 있다. 보낸 이의 이름이 아예 가려져 있어 '지나가는 조문객들은 고 김용균 씨에게 보낸 것인지조차 모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자유한국당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과 나경원 원내대표의 근조화환이었다.
어릴 때 잘못을 하면 종종 벽을 보고 서 있었던 경험이 기자의 머릿속을 스쳤다. 왜 그 많은 화환 중 두 정치인의 조화만 벽을 보고 놓여 있었을까. 문희상 국회의장,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홍영표 원내대표, 민주평화당 정동영 대표의 화환은 분향실 안쪽 김 씨의 영정 옆에 자리하고 있었다.
한국당의 조화를 벽으로 한 이유와 관련한 유족 측의 설명은 다양했다. 먼저 분향소 입구로 배달된 조화를 약 50m가량 떨어진 4 분향실 앞으로 옮겨놓은 김 씨 동료 김경진 씨는 "기자들이 많고 번잡스러워서 한 쪽으로 치워 놓은 것"이라고 말했다.
분향실을 지나던 노조 관계자는 "공식적으로 할 말은 없다. (돌려놓은) 자체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고 답했다.
마지막 동료의 말을 듣고 궁금증이 해결됐다. 5 분향실 앞에서 조문객들을 맞던 고인의 동료는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한국당 사람들이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 관련해서 반대했던 적이 있어 (김 씨가) 그런 것 같다"고 했다. 24살에 떠나간 김 씨와 또래로 보이는 그의 얼굴은 그늘져 있었다.
한국당은 지난해 12월 말 작업 중 컨베이어 벨트에 끼여 사망한 김 씨 사고 재발을 막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에 돌연 반대한 바 있다. 지난해 12월 26일 열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고용노동 소관 법안심사소위원회는 정부가 제출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을 재심사했으나 '공청회 등 의견수렴을 더 해야 한다'는 한국당의 반대로 어려움을 겪었다.
당시 '위험의 외주화'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로 연내 처리가 가능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했기에 파장은 더욱 컸다. 여야는 이날 안전 의무를 다하지 않은 사업주에 대한 처벌 수위, 사고 발생 시 책임을 묻는 수급업체의 범위 등을 놓고 견해차를 좁히지 못했다.
한국당이 반대한 정부안은 도금 작업, 수은·납·카드뮴의 제련·주입·가공·가열 작업, 허가 대상 물질의 제조·사용 작업의 사내 도급을 원천 금지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10억 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토록 하는 내용이었다.
산재 사망 시 원·하청 사업주를 10년 이하 징역 또는 10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는 조항도 포함했다. 처벌 기준을 강화하고, 원청 사업주에게 하청 사업주와 같은 법적 책임을 부여하는 것을 골자로 했다.
소위 위원장인 임이자 한국당 의원은 반대 입장을 전하며 "(법을) 연내 처리 안 하면 적폐고, 연내 처리하면 졸속이고 그런 차원이 아니다"며 "심도 있게 한 번 더 양쪽 이해당사자들의 의견을 들어보는 절차를 신중하게 밟자는 것"이라고 했다.
한국당 원내 고위 관계자는 "정부안을 주축으로 통과되면 산업 생태계가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를 경영계가 전달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다음 날까지도 팽팽한 견해차를 보이던 여야는 극적으로 합의를 이뤘다. 법사위원회를 거친 개정안은 그날 저녁 본회의를 최종 통과했다. '하루'라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다고 할 수 있는 시간 동안 마음을 졸이던 김 씨의 유족과 동료들은 이날 밤에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김 씨는 58일 만에 장례를 치를 수 있게 됐다. '민주 사회장' 삼일장으로 치러지는 고인의 장례식엔 긴 싸움 끝에 떠나는 김 씨를 추모하는 발길이 이어졌다. 분향소 주변 벽을 채운 수많은 위로 메시지와 늘어선 근조화환은 고인의 가는 길을 위로했다.
한국당의 두 대표가 보낸 화환은 지금도 벽을 보고 있다. 비정규직 하청 노동자의 죽음 앞에 '경영계'의 입장을 전한 한국당의 위로는 왠지 모르게 분향소 밖 멀리 떨어져 보이는 화분의 크기만큼 작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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