엇갈린 전두환-5·18 평가…보수 vs 진보 지지자 충돌
[더팩트|연희동=문혜현 기자] 전두환(제 11~12대 대통령) 씨가 5·18 민주화운동 희생자 명예훼손 혐의로 광주지방법원에서 재판을 받는 날인 7일,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에 위치한 그의 자택 인근에는 다수의 의경이 배치됐다. 전 씨 지지자와 비판하는 이들 간 충돌이 우려됐기 때문이다. 우려는 현실이 됐고, 양측의 말다툼이 벌어졌다.
전 씨는 회고록에서 계엄군의 헬기 사격을 증언한 고 조비오 신부를 "가면을 쓴 사탄" 등으로 표현해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당했다. 이와 관련된 재판이 이날 광주지법에서 열리기로 예정돼 있었고, 전 씨의 출석 여부는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사건을 맡은 광주지법은 "5·18 당시 헬기 기총사격이 있었다"고 판단해 전 씨를 기소했다. 하지만 전 씨는 건강상의 이유로 지난해 8월 첫 공판에 불출석했고, 이번에도 독감을 이유로 불출석 의사를 밝혔다. 이에 재판부는 전 전 대통령 측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강제구인 여부 등을 검토하기로 했다.
<더팩트> 취재진이 이날 오전 찾은 전 씨 자택 인근은 오후 2시부터 예고된 태극기집회 때문인지 오가는 사람들 모두가 통행을 통제받았다. 신분과 목적을 밝혀야 이동이 가능했다.
가장 먼저 자택 주변에 도착한 사람은 태극기집회 참가자인 권재구(68) 씨였다. 권 씨는 전 씨에 대해 "8년을 대통령하고 30년을 고생하네"라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옆으로 맨 가방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사진과 태극기 모양의 열쇠고리가 달려 있었다.
"여기 왜 왔느냐"는 취재진의 물음에 그는 "저분(전 전 대통령)을 지키러 왔다"고 답했다. 권 씨는 "89세 노인을 저렇게 나오라고 하는 건 아니지 않느냐, 서울도 아니고 광주에"라며 부당함을 호소했다.
올해로 3년째 태극기집회에 참가해온 권 씨는 2016년 이후로 '나라가 무너졌다'고 말했다. 그는 "그동안은 나라가 잘 돌아갔다. 그런데 2016년 9월부터 언론이 망가지면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했다"며 "그 해 12월 12일부터 헌법재판소 탄핵 무효화 92일 시위를 했다"고 밝혔다.
특히 권 씨는 "전 전 대통령은 '무죄'다. 5·18 당시 그는 그냥 보안사령관이었다"며 "5·18과는 관련이 없다. 독재는 했지만 당시 통일주체국민회의 선거에서 8년 동안 하기로 한 것 아니었냐"고 주장했다.
이어 현장을 찾은 태극기집회 참가자 B씨는 5·18을 '폭동'이라고 규정했다. 인근 주민과 함께 이곳을 찾아온 그는 "이순자 여사의 말대로 전 전 대통령이 민주화의 아버지라고 생각하느냐"라는 물음에 "그렇다"고 말했다.
옆에 있던 권 씨도 거들었다. 그는 "전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지 않았으면 사회주의·공산주의 국가가 돼 나라가 엉망진창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가져온 태극기를 자랑스럽게 펼치고 흔들어 보이기도 했다. 그러면서 "나라를 지켜야 한다"며 얘기하며 주변을 서성거렸다.
잠시 후 진보 성향의 시위자도 이곳을 찾았다. 자신을 사회 선생님이라고 소개한 40대 여성 A 씨는 "상복을 뜻하는 검정 옷과 피를 의미하는 빨간 목도리를 하고 왔다"며 이곳에 온 이유를 밝혔다.
그는 "내 눈으로 전 전 대통령이 잡혀가는지 보러 왔다"며 "양치기 소년 이야기처럼 이 핑계 저 핑계 대고 안 나오면 진짜 아파서 죽을 때가 되면 아무도 안 도와준다. 거짓말 하면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전 전 대통령이 재판에 나와야 한다고 보느냐"는 질문엔 "당연하다. 재판이란 게 뭐냐. 판단은 판사가 할테니 나와서 할말을 해야 하지 않느냐"고 답했다.
결국 전 씨 지지자들과 A 씨는 말다툼을 벌이기도 했다. A 씨는 권 씨에게 "망월동 묘지에는 가보기나 했나. 사람이 얼마나 많이 죽은 지 알고 있냐"며 따졌고, 권 씨는 "광주시청 보상과에 따르면 176명이다. 사실이다"라고 맞받았다. 이에 A 씨가 "진상 규명이 되지 않은 것"이라고 재차 반박하며 다툼이 벌어졌다.
전 씨와 5·18에 대해 상반된 인식을 가진 이들은 언성을 높여가며 다툼을 이어갔다. B 씨는 "만약 내 눈 앞에서 자식과 부모형제가 죽었다면 나도 총을 들었을 것이다. 말이 안 된다"며 울분을 토했다. 이에 B 씨는 "5·18은 폭동이다. 민간인들은 탈북자로 위장한 북한 사람들에 선동당한 것"이라며 "말이 안 되는 건 현 정권"이라고 맞섰다.
양측 의 다툼이 격화되자 권 씨는 "그만 말해라. 서로 떨어져 있자"고 중재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은 이후에도 "뭘 알고서 이야기 하라", "똑바로 배워 똑바로" 등 거친 말들을 주고 받았다.
이날 전 씨 자택 앞은 '빨갱이', '공산당', '간첩' 등의 단어가 난무했다. 양 측의 목소리가 꽤 커 전 씨의 집에까지 들릴 정도였다. 시간이 지나며 점차 태극기집회 참가자들은 늘고 있다. 청산되지 못한 39년 전 역사의 슬픈 장면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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