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서는 '외면'받던 그들, 희생이 쏘아 올린 작은 공
[더팩트|문혜현 기자] "너희가 사람이라면 그렇게 열악한 곳에 일 시키지 않을 거야. 너희들은 사람이 아니야. 짐승만도 못한 놈들이야." 고 김용균 씨가 일하던 한국발전기술의 원청인 서부발전에 김 씨의 어머니가 남긴 말이다. 현장에서 28번씩이나 설비개선을 요구했지만, 서부발전에선 개선에 3억 원이 든다며 차일피일 미뤘다.
그렇게 시한폭탄처럼 가동되던 컨베이어 벨트에 김용균 씨는 스러졌다. 지난 11일 3시 32분 태안 화력 9-10호기 컨베이어 벨트에서 홀로 석탄 찌꺼기를 빼내던 김 씨는 20톤이 넘는 고무벨트 밑에 몸이 끼어 사망했다. 몸과 머리는 분리됐고, 등은 갈라져 있었다고 현장에 있던 동료들은 전했다. 입사한 지 3개월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젊은 나이의 비정규직 하청 노동자. 무시된 2인 1조의 원칙. '막을 수 있었던' 사고. 2016년 5월 28일 구의역에서 달려오는 열차에 숨을 거둔 19살 청년과 너무나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작업지시가 적힌 탄가루 가득한 수첩과 고장 난 손전등, 끼니를 제때 챙기지 못해 갖고다니던 컵라면까지 오버랩되며 많은 이들의 안타까움을 샀다.
구의역 사고는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주고, 위험한 일을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외주'를 주면서 생명을 위협받는 상황에 노출된다는 뜻인 '위험의 외주화'란 말도 이때부터 생겨났다.
하지만 2년 후 비슷한 일은 또다시 일어났다. 심지어 지난 국정감사 때 "나 김용균은 화력발전소에서 석탄설비를 운전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입니다"라는 피켓을 들고 정부와 대화를 요구한 그 청년이 희생자가 됐다.
지난 17일 김 씨의 유족과 노동계 시민단체들은 '태안화력 비정규직노동자 고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 시민대책 위원회'를 발족하고 대책 마련에 나섰다. 이날 열린 기자회견에 나선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대표는 "지난 5년간 5개 발전소에서 44명이 사망했다. 그중 42명이 비정규직 노동자다"라며 "30년 전에도 충남 태안 출신 15살 청년이 공장에서 일한 지 두 달 만에 수은 중독으로 사망했다"라며 변하지 않는 현실을 규탄했다.
그는 "작년 정부가 발표한 산업재해 사망자 수가 대략 2000명 정도 된다. 30년간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다"며 "김용균 군의 참사를 그대로 넘어가면 그다음 30년 뒤에도 똑같이 참사를 끊어야 한다는 말만 하고 끝이 난다"며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상윤 노동건강연대 대표는 "모든 산재 사망은 기업의 살인 행위"라고 비판했다. 그는 "사실 산재 사망은 어떤 방식으로도 '예방 가능했기 때문'에, 무언가를 기업이 하지 않아서 발생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또, 이 대표는 "많은 산재 사망 사고 원인의 대부분은 시스템 실패다. 경영, 노사관계, 의사소통 부족 등 시스템의 문제가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한 사고는 예방할 수 있는 신호를 주기 마련인데, 경영진이 대수롭게 여기지 않고 지나쳤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현재 서부화력발전에선 사고로 가동을 중지한 9-10기 외에 1-8호기는 정상적으로 운행되고 있었다. 이 대표는 "다른 동료들 상심이 큰 상황에 기계 가동이 말이 되는가. 기계를 모두 세워서 도대체 무슨 문제가 있는지 철저히 밝힌 다음에 시정하고 나서 재가동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상황이 이러한 가운데 정부는 긴급 안전조치에 나섰다. 특별감독을 해 태안화력 발전소 운영사인 한국서부발전의 법 위반 여부를 확인하고 재발방지대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지난 17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과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태안화력발전소 사고 관련 관계부처 합동 대책'을 발표했다. 이 장관은 "안타깝게도 산업재해로 사망한 고 김용균 님의 영전에 깊은 애도를 표한다. 유가족분들께도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 구체적인 내용을 전했다.
이 장관은 "특별 산업안전보건감독을 실시해 사망사고가 발생한 현장, 그리고 사고 관련자들을 철저히 조사해 사고 원인을 명확하고 투명하게 규명하겠다"며 "사업장 전반에 대한 특별감독을 실시해 법 위반 사실이 확인될 경우 책임자 처벌은 물론 법 위반 사항들을 모두 개선하겠다"고 말했다. 또 태안화력발전소와 작업방식 및 설계가 비슷한 전국 석탄화력발전소 12곳에 대해서도 긴급 안전점검을 실시해 안전조치와 안전수칙 준수 여부를 집중적으로 확인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성 장관은 "(전국 화력발전소에) 운전 중인 석탄 운반용 컨베이어벨트 등 위험설비 점검 시 '2인 1조' 근무를 시행하고 낙탄 제거 등 위험 작업은 해당 설비가 정지한 상태에서 시행하도록 조치하겠다"며 "컨베이어벨트와 같은 위험시설의 비상정지 스위치 작동 상태도 일제히 점검하겠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발전소 현장 인력 부족으로 안전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발전소별로) 인력 운용 규모가 적절한지 전면 검토하겠다. 또 원청과 협력사, 노동자, 시민단체, 민간 전문가가 참여하는 안전경영위원회를 발전소별로 구성해 현장 개선 과제가 제대로 이행되는지 점검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재발방지를 위해 주요 쟁점으로 논의되는 것은 하도급 사업에서 원청의 책임을 대폭 강화하는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의 국회 통과 여부다. 지난 19대 때부터 상정된 이 법은 20대 국회에 아직까지 계류 중이다. 산업안전보건공당 산업재해 전문가로 일했던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조속한 법안 통과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 의원은 <더팩트>와의 통화에서 "매일 6~7명이 산업재해로 사망하는 상황으로 입법부가 법안으로서라도 책임을 다해야 한다"며 "이번 임시국회에서 논의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에 따르면 현재 산업안전법 개정안은 민주당 차원에서도 본회의 통과를 추진 중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야당이 '탄력근로제 논의를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보여 본격적인 논의가 미뤄지고 있다.
산업안전보건법이 사실상 '무쟁점 법안'인 것을 고려하면 하청 노동자의 생명이 다른 논쟁적 법안에 의해 후순으로 밀리고 있는 것이다. 이에 한 의원은 "여야 합의를 통해 법안이 개정될 수 있도록 사회와 언론의 꾸준한 관심을 바란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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