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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행 5년 옥외가격표시제<하>] 현장에선 '유명무실'…단속 실적 '0'(영상)

  • 사회 | 2018-03-11 07:00

학원옥외가격표시제가 시행된 지 1년이 지났지만 실효성은 미미했다./ 안양=변지영 기자
학원옥외가격표시제가 시행된 지 1년이 지났지만 실효성은 미미했다./ 안양=변지영 기자

정부가 소비자의 선택권 강화와 요금 안정을 위해 2013년 1월부터 시행된 '옥외가격표시제'가 올해로 5년 째를 맞는다. 매장 면적 66㎡(약 20평)이상의 이·미용실과 150㎡(약 45평)의 일반음식점 및 휴게음식점을 의무 업종으로 외부에 5개 품목 이상의 서비스 가격을 표시해야 한다. 2016년 7월부터는 학원도 의무 업종으로 지정됐다. 이 제도가 제대로 이행되고 있는지 그 현장을 찾아봤다. <편집자주>

[더팩트| 안양=변지영 기자] "그런게 있었어요? 꽁꽁 숨겨두니 알 수가 있나요."

지난 7일 경기도 안양시 평촌동의 학원가에서 만난 학부모 홍민주(41) 씨에게 학원 앞에 고지된 교습비를 확인한 적 있는지 묻자 고개를 갸우뚱 했다. 홍 씨는 "고지해야 한다는 사실도 몰랐다. 다들 알음알음 알아내야 하는 줄 알았다"면서 "학원에서 보낸 명문대 입학생을 광고하는 것만 봤고, 교습비를 고지한 것은 본 적 없다"고 말했다.

'학원 옥외가격표시제'는 학원 교습비등에 관한 사항을 옥외의 보기 쉬운 장소에 게시하는 것으로 계도기간을 거쳐 2017년 1월부터 전국적으로 확대 시행 중이다. 하지만 학원을 찾은 학부모를 비롯해 해당 학원을 다니고 있는 학생들조차 교습비 옥외 표시 의무에 대해 알지 못하고 있었다.

지난 7일 <더팩트> 취재진이 찾은 안양시 평촌동의 학원가도 예외는 아니었다. 중앙차로를 두고 양쪽 건물들에 빼곡히 재수와 교습 등 300여 개가 넘는 학원이 밀집해 있는 평촌 학원가 진입로에 위치한 한 미술학원을 찾았다.

상담 직원에게 교습비에 대해 묻자 이 직원은 "실장님과 상담을 해봐야 알 수 있다"고 선을 그었다. 교습비 고지 정책에 대해 언급하니 직원은 의아하다는 반응이었다. 이 직원은 "이 주변 어느 (미술)학원도 교습비를 붙여놓은 곳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바로 옆 건물에 밀집한 학원들을 무작위로 들어가 교습비 부착 현황을 살펴봤다. 학원가에서 옥외에 부착한 교습비 가격표를 찾기란 숨바꼭질을 하듯 어려웠다. 이마저도 학원 업주들은 광고 배너 뒤로 가격표를 교묘하게 숨기거나, 사람의 이동이 적은 계단 통로에 붙이는 등 극도로 노출을 꺼리고 있었다.

초중고 수학 전문 학원을 운영하는 임모(41) 씨는 "학원이 있는 건물 통로에 붙였으니 된 것 아니냐"면서 "다른 곳은 내부에 붙이거나 붙이지 않은 곳도 허다하다"고 주장했다.

소비자의 눈높이와는 한참 동떨어진 곳에 부착한 업주도 있었다. 사회탐구 전문 학원 원장 최모(48) 씨는 "부착해야 하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서 "교습비가 공개되는 것은 부담스러운 측면이 있다. 오히려 저렴한 가격으로 부착해 두면 강사진이 허술할 것으로 학부모가 생각할 수도 있기 때문에 조심스럽다"고 답했다.

학원들이 교묘하게 교습비를 숨기거나 눈높이에 맞지 않는 곳에 부착하고 있다. /변지영 기자
학원들이 교묘하게 교습비를 숨기거나 눈높이에 맞지 않는 곳에 부착하고 있다. /변지영 기자

◆ '단속건수'는 '제로'…'법망 피하기 쉽네'

가계비 지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사교육비 부담을 줄이기 위한 취지로 시행된 이 제도는 현장에서 유명무실했다. 법망이 허술한 탓이다. 주무부처의 이행 점검 및 단속은 계도 차원으로만 이뤄지고 있었다. 어디든지 부착을 해두기만 하면 넘어가는 등 이행실태를 명확하게 파악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경기도에 있는 2100여 개의 학원 교습소 중 제대로 된 단속 건수도 거의 없는 실정이었다.

현행법상 '옥외에 표시하는 교습비용은 주·출입구 주변, 창문 등에 게시·부착해 학원에 들어가지 않고도 학원비를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언급된 '주 출입구'라는 개념이 모호하고 표기해야 하는 교습비의 크기가 A4용지 한 장 크기에 불과했다.

학원교습비 외부표시는 교습비를 외부에서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한 제도로 반당 정원, 총 교습시간, 교습 기간, 교습비, 기타 경비 등을 적시해야 한다. 이를 지키지 않으면 1회 적발 시 벌점 9점에 과태료 50만 원, 2회 적발 시 벌점 18점에 과태료 100만 원, 3회 적발 때는 벌점 27점에 과태료 200만 원에 달한다.

학원이 교습비를 표시해둔다고 하더라고 학부모들이 외부에 공개된 가격표를 신뢰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일부 학원은 학원 입구 유리문에 A4용지로 프린트한 교습비를 부착했다. 하지만 확인 결과, 이들이 부착한 가격표는 2015년, 2016년 등 1, 2년 전의 교습비를 부착한 것이 대다수였다. 방학과 개학을 기준으로 3~4개월 사이에 수차례 바뀌는 교습비의 현실을 고려해보면, 옥외 게시한 교습비와 실제 교습비와 같은지에 대한 의문이 생기는 대목이다.

미술학원 수강생 김모(17) 양은 "미술학원은 부수 재료값이라거나 특별 지도 등 추가 사항이 많아 가격이 점점 높아진다"면서 "2015년보다 교습비는 15만 원 정도 더 올랐지만 교습비를 교체하는 일은 없었다"고 대답했다.

허울뿐인 학원 교습비 외부 표시는 학원업주들 사이에서 암암리에 이뤄지고 있었다. 일선 학원에서는 의도적으로 눈에 띄지 않는 곳에 게재하거나 표시해야 할 내용을 누락하면서 법망을 피해가고 있었다.

일선 학원들은 의도적으로 교습비를 허위 기재하거나 누락하기도 했다. 경기도 안양시의 학원가 모습./ 변지영 기자
일선 학원들은 의도적으로 교습비를 허위 기재하거나 누락하기도 했다. 경기도 안양시의 학원가 모습./ 변지영 기자

이와 관련, 학원연합회 측은 "현재 운영 인원이 적어 전체 학원 원장에게 고지하기가 어려운 실정"이라며 실질적으로 소비자들이 교습비의 정확한 고지를 필요로 하는지도 의문이라고 말했다. 경기도학원연합회 관계자는 <더팩트>와 통화에서 "직원이 2명이라 옥외가격표시제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답변하기 어렵다"고 대답했다. 안양시학원연합회 김은희 간사는 "가격표시가 큰 의미가 있을지 싶다"면서 "저렴한 곳이라고 학원을 선호하진 않는다. 교습비를 표시한다고 해서 저렴한 곳으로 소비자들이 찾아 가진 않을 것"이라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 적극적인 단속 필요…피해는 고스란히 학부모에게

학원비를 투명하게 공개해 학부모들의 합리적 선택권 보장, 학원 간 건전한 가격경쟁 유도 및 사교육비 경감 취지에서 도입된 '학원교습비 외부표시제'가 허울만 남으면서 보다 적극적인 단속, 점검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난해 7월 한국소비자원이 수도권(서울·경기지역) 학교교과교습학원 중 대학입시학원 100곳의 옥외가격표시 이행 실태를 조사했다. 조사결과, 수도권 대입학원의 옥외가격 표시율은 평균 63%로, 수도권 대입학원 10곳 중 6곳(63.0%)만이 옥외가격표시를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옥외가격을 표시한 학원 63곳을 대상으로 표시한 학원비와 실제 학원비의 일치 여부를 조사한 결과, 일치한 곳은 28.6%(18곳)에 불과했고, 불일치 31.7%(20곳), 옥외에 표시된 교습과정을 운영하지 않는 곳도 39.7%(25곳)에 달했다.

학원비가 불일치한 이유를 살펴본 결과, 교습비 외에 추가비용(교재비, 개인학습지도비)을 요구한 경우(13곳), 교습비가 변경되었으나 게시표에 반영하지 않은 경우(7곳)로 조사됐다. 특히 옥외에 가격을 표시했지만 눈에 띄지 않는 장소에 게시하거나 글씨 크기가 작아 내용을 쉽게 확인하기 어려운 학원도 있었다.

학부모들은 학원들의 행동에 분통을 터뜨렸다. 평촌동 주민 민승현(37) 씨는 "학원가 주변에서 거주한 지 5년 차인데 옥외에 가격을 표시해야한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다"면서 놀라워했다.

2018년 1월 경기도청의 학원교습비 외부표시제 단속 결과, 97%의 학원이 제대로 제도를 이행하고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경기도교육청 제공
2018년 1월 경기도청의 학원교습비 외부표시제 단속 결과, 97%의 학원이 제대로 제도를 이행하고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경기도교육청 제공

◆ 제도 실효성 논란 인지한 교육청…"전수조사는 어려워"

상당 수의 학원들이 '교습비 등 게시표' 양식에 포함된 항목을 삭제하는 등 임의로 양식을 수정하거나 특정 항목을 기재하지 않고 있는 것을 정부는 인식하고 있을까. 한국소비자원 시장조사국 약관광고팀 한성준 팀장은 "한국소비자원은 이행 실태 조사를 바탕으로 시·도 교육규칙의 위반사항에 '교습비 게시표'의 게시 장소나 글씨 크기가 적절하지 않은 경우, 학습자가 보기 쉬운 눈높이에 게시하지 않는 경우, 또 부분만 게시한 경우 등을 추가할 것을 해당 교육청에 건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제도의 실효성 논란에 대해 이미 교육청도 인지하고 있었다. 경기도 교육청 평생교육과 학원정책담당 장명학 주무관은 "경기도에만 학원이 2만 개가 넘다보니 전수조사를 하긴 어렵다. 안내 문자라거나 학원장 연수 등에 홍보활동을 진행해 자리를 잡아가는 상태"라고 말했다.

다만 단속보다는 지도·점검에 나서고 있어 향후 실효성있는 제도 이행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고민하겠다"는 입장이다. 한국소비자원의 실태 조사에 대해 장 주무관은 "이행 실태조사는 잘 되지 않은 특정 구역을 설명하기 위해 표본조사를 한 것으로 보고 있다" 며 "교육지원청에서는 일상점검을 매일 나가고 있다. 올해 1월 10일에도 현장 단속을 한 결과, 97%의 이행률을 보이는 것으로 파악했다"고 말했다.

hinomad@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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