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족 측 "살해 전 상습 폭행" 주장…경찰 "조사 중"
꽃다운 나이에 민주(가명·26) 씨는 가족의 곁을 영영 떠났다. 억울하고, 잔인한 죽음이었다. 이른바 '시멘트 암매장 사건'으로 그의 죽음은 최근 세상에 알려졌다. 미국 명문대 출신의 민주 씨, 그는 왜 한국서 살해당했나.
피의자 이모(26) 씨는 경찰 조사에서 '헤어지자'는 여자 친구 민주 씨의 말에 목을 졸라 살해한 뒤 충북 제천의 야산에 깊이 1m의 구덩이를 파 시멘트를 부어 시신을 은폐했다고 자수했으며, 혐의(살인 및 시체유기) 대부분을 인정했다.
청천벽력과 같은 민주 씨의 죽음에 어머니와 가족들은 피를 토했다. "예쁜 내 딸이 무엇 때문에 차디찬 죽음을 맞아야 하느냐"며 분노했고, 또 다른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더팩트>는 지난 20일부터 27일까지 사건 발생 전후를 뒤쫓았다. ①사건의 전말 ②피해자 어머니 인터뷰 ③의혹 ④현장 검증 등을 차례로 보도한다.
◆ 민주 씨의 죽음까지 무슨 일이 있었나
민주 씨는 초등학교 이후 홀로 미국에서 학창시절을 보냈고, 뉴욕의 명문 대학을 졸업한 뒤 유명 기업에 취직했다. 오랜 외국 생활로 가족들과 떨어져 있었기에 지난 2013년께 1~2년 동안 가족들과 함께할 생각으로 한국에 들어왔다. 칡과 약초를 캐며 자식들을 뒷바라지 한 부모님을 생각해 한국에서도 일을 놓지 않았다. "한국에서 잠깐이라도 돈을 많이 벌어 어머니께 좋은 선물을 사드려야겠다"던 그였다.
그는 지난해 부산의 한 어학원에서 영어강사로 일했고, 수강생이던 이 씨를 만났다. 두 사람은 연인 사이로 발전했다. 이는 이 씨의 자백과 유족 측의 얘기가 일치한다. 다만 유족들과 민주 씨의 친구들은 "이 씨가 교제 몇 개월 후 상습 폭행을 했다"고 주장한다.
민주 씨의 오랜 친구 B 씨는 <더팩트>와 통화에서 "지난해 9월 17일께 민주가 이 씨에게 맞아 얼굴이 상하고 손가락이 부러져 깁스를 한 사진을 카톡으로 보냈고, 이 씨 때문에 많이 힘들어했다"고 털어놨다. 민주 씨의 어머니는 "어학원에서 일한 동료 강사 C 씨는 이 씨에게 맞고 얼굴이 붓고, 손가락이 부러져 깁스를 하고 출근한 딸을 봤다고 한다"고 토로했다.
부산에서 일하던 민주 씨는 최근 서울에 새 직장을 구했고, 거처를 옮겼다. 그리고 지난 2일 밤, 서울 관악구 신사동의 한 오피스텔 이 씨의 집에서 이별을 통보했다. 격분한 이 씨는 민주 씨를 목 졸라 살해했고, 5일 신림역 인근에서 승합차를 렌트하고 철물점에서 삽과 시멘트 등을 구입해 충북 제천으로 향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오피스텔 건물주는 "이 씨가 집을 4월 말에 계약했다. 하지만 10일 밖에 살지 않았다"면서 "둘이 동거했다는 건 알 수 없는 부분이다. 사건 당시 둘이 언제 집으로 들어가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겠다"고 답했다.
다음 날(6일) 이 씨는 물색해둔 충북 제천의 야산에 구덩이를 파고 시멘트와 물을 부어서 깔고 그 위에 비닐과 이불을 감싸 시신이 담긴 여행 가방을 넣은 뒤 시멘트와 흙으로 덮었다.
◆ 서울->충북 160㎞, "살해 후에도 회사 출근"
그는 시신 유기 당시 상황을 26일 오전 11시께 현장 검증에서 재연했다. 신사동 오피스텔에서 충북 제천까지는 차로 약 2시간 30분, 160㎞. 이 씨는 왜 시신 유기 장소로 이곳을 택했을까.
충북제천경찰서 관계자는 "여기는 인적이 드물어 소리를 질러야 들릴 정도"라고 말했고, 인근 주민들도 "하루 종일 밭에서 곡괭이 질을 해도 사람 드나듦을 모르는 곳이다. 처음에 경찰들도 시신 유기 장소를 찾느라 애를 먹어 주민 몇몇이 길 안내를 할 정도였다"고 귀띔했다. 실제 취재진도 쉽게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인적이 드문 야산이었다.
계명대학교 윤우석 경찰행정학(범죄심리) 교수는 "원래 살인자는 유기 장소로 자신이 알고 있는 장소를 택하는 습성이 있다. 잘 아는 지역이나 사물 등으로 유기를 계획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족들을 분노케 하는 것은 그가 범행 후 검찰에 자수하기 전까지(지난 7일부터 16일까지) 피해자 아버지와 동생에게 민주 씨인 것처럼 50차례에 걸쳐 문자를 보냈다는 것이다. 경찰도 이를 확인했다.
이 씨와 같은 회사에서 일했다는 D 씨는 민주 씨의 친구에게 "이 씨가 살해한 날 일 있다고 하루 쉬고, 그 다음 날부터 아무렇지 않게 회사에 계속 나왔었다"고 말했다.
이 씨는 범행 후 열흘(16일)이 지나서야 부산의 한 호텔에서 목숨을 끊으려다 실패하고, 지난 18일 112에 신고 후 경찰에 자수했다. 19일 서울 관악경찰서로 인도된 뒤 20일 구속됐다.
◆ 우발적 살인이냐, 계획적 살인이냐
유족 측은 현장 검증 이전 "우발적 살인이 아니라는 것과 단독 범행이 아닐 가능성"을 제기했다. "내 딸인 것처럼 위장해서 문자를 보내고, 충북 제천까지 와서 시신을 유기했으며, 이 씨 혼자서 시멘트와 물을 붓고 시신을 유기할 수 있었겠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와 관련해 관악경찰서 관계자는 "현재로선 단독범행으로 보고 있다. 원룸 주변 등 폐쇄회로(CC)TV를 확보해 확인한 결과 공범 정황을 찾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다만 "죄목(상해죄)을 추가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윤 교수는 "우발적인 살인이란 말 자체가 화가 난 감정으로 범행을 벌인 것인데, 사건 정황을 보면 죽일 때는 갑자기 욱해서 죽였을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그리고 계획적인 부분은 증거를 없애려고 하다보니 시멘트를 사서 어디에 묻어야 겠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결국, 살인 그 자체에 대한 계획성은 엿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만 만약 '계획적인 살인을 했다'고 가정했을 경우 "원래 폭력이 잦았다는 점, 시멘트 등 도구를 미리 차 트렁크에 실어놨다는 점 등이 성립이 된다면 살인을 계획적으로 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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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팩트 | 오경희·신진환·이성락 기자 ari@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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