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청주·인천=사진기획팀] '침수차 유통설'은 사실로 확인됐다. 폐차돼야 할 침수차가 약 50일 간의 불법 개조과정을 거쳐 정상 차량으로 둔갑한 뒤 인천항을 통해 세계 각지로 수출되는 과정을 <더팩트> 취재팀이 단독으로 확인했다. 취재팀은 지난 7월 16일 충청북도 청주시 일대에 쏟아진 기록적인 시간당 91㎜의 폭우로 침수된 차량이 규정대로 폐차 처리되지 않고 수리업체로 옮겨진 뒤 번호판 교체 및 장시간 정비 후 수출되는 과정을 약 2개월 간의 추적 끝에 사진과 영상으로 생생하게 취재했다.
폭우 피해가 발생할 때마다 거론되던 침수차 국내·외 유통설은 '청주 폭우'에서 처음 사실로 확인됐다. 그동안 침수차 유통으로 인한 소비자 피해는 끊임없이 제기돼왔으나 실제로 불법 개조 과정을 거쳐 유통되는 현장이 언론에 의해 확인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7월 16일 청주 일대에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졌다. '물폭탄'을 방불케하는 폭우는 휴일인 이날 0시부터 오전 10시까지 무려 226㎜의 강우량을 기록했다. 청주 일대에서 갑작스런 폭우로 침수된 차량은 1300여 대에 달했다. <더팩트> 취재팀은 그동안 제기됐던 침수차 유통실태를 확인하기 위해 현지 취재를 시작했다.
◆ 폐차장 대신 공업사로 향하는 침수차, '소문은 사실!!!'
'악몽' 같던 폭우가 그쳤다. 언제 비가 내렸냐는 듯 파란 하늘이 빛나던 7월 21일. 침수차들이 모인 청북 청주시 청원구의 충북학생교육문화원 임시 주차장에 이상한 움직임이 감지됐다. 국내 보험사들이 침수차 접수를 받고 있는 현장에서 판정을 받은 일부 차량들이 이동을 시작한 것이다. 적재함 내부를 볼 수 없는 대형 화물차에 비교적 상태가 괜찮아 보이는 침수차 두 대가 지게차에 의해 실렸다.
침수차마다 앞 유리창에는 침수 상태에 따라 전손, 폐차 처리 등의 등급이 매겨져 있다. 이동을 한 것은 폐차 대상 차량이다. 조심스럽게 트럭에 실리는 모양새가 폐차장으로 향하는 것과는 어딘지 달랐다. 추적을 시작했다. 청주에서 확인한 침수차 일부는 인천의 한 1급 공업사로 이동했다. 이곳을 거쳐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것도 추적·확인했다. 트럭에 실린 차량 앞 유리에는 '침수전손'이라는 글씨가 적혀 있었다.
침수차의 은밀한 유통이 시작된 것이다. 보험사는 전손 처리된 침수차를 폐차업자에게 인도하고 폐차업자는 차량등록 말소 후 폐차를 해야 한다. 하지만 폐차는 이뤄지지 않고 수리를 위해 공업사로 향했다.
국토교통부는 올 1월부터 완전침수, 부분침수 구분 없이 침수차에 대해서는 폐차를 권고하고 있다(단 부분침수의 경우는 공업사 판단으로 폐차여부 결정). 일부 중고차 매매업자가 침수차를 무사고차로 둔갑시켜 판매하는 행위를 막기 위한 조치다. 사람의 생명과 직결되는 자동차 사고는 순간적으로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2차 사고 피해 가능성이 높은 침수차 유통을 제한하고 있다. 더욱이 최근 차량은 대부분 전자제어시스템으로 작동되기 때문에 장시간 물에 잠긴 차량은 시간이 흐를수록 치명적 결함을 유발할 수밖에 없다.
보험사는 침수 피해를 당한 차량을 접수해서 판정을 하고, 전손 처리된 침수차를 폐차업자에게 인도하게 된다. 폐차업자는 차량등록 말소 후 폐차를 해야 불의의 2차 사고 피해를 방지할 수 있다. 하지만 출시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차가 침수될 경우 겉은 멀쩡하기 때문에 '불법 유통'의 대상이 되고 있다. 실제로 폐차가 이뤄지지 않고 '부활'을 위해 수리 공업사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인천의 공업사 앞에는 이미 도착한 침수차가 여러 대 있었다. 다양한 차종으로 앞 유리에는 전부 '침수전손'으로 적혀 있었고, 특히 눈에 들어온 남색 올란도의 경우는 '폐차'라고 적힌 것이 눈에 띄었다. 해당 차량들은 보험사에서 전손처리 후 매각한 차량들로 보험개발원이 제공하는 침수차 이력에는 침수전손으로 확인됐다. 보험이력에도 확인되는 침수차량의 흔적이 어떻게 '세탁'이 되는 것일까.
◆ 차량번호 말소 후 은밀히 진행되는 '부활' 수리 작업
공업사로 이동한 침수차량은 먼저 번호판 말소작업에 작업에 들어갔다. 번호판만 따로 떼서 말소 작업을 한 후 폐차 처리 절차를 밟는다. 실제 폐차는 이뤄지지 않지만 서류상으로는 폐차가 되는 것이다.
손해보험협회 관계자는 "전손 차량에 대해서는 다 폐차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도 "보험사가 폐차 업체로부터 폐차 확인서 등 증빙서류를 받아 확인해 폐차가 진행된 것으로 판단한다"며 서류상 확인의 한계를 지적하기도 했다.
또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보험업계가 위험소지가 있으니 권고를 받아서 상당수 폐차를 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보험사가 폐차하기로 했는데 안 지켜지면 정부에서 관련해서 조치를 하지 않겠냐"라고 말했다.
침수차 폐차를 권고한 국토교통부와 이를 이행하겠다고 약속한 보험사들이 실제로 폐차가 진행되는지에 대한 확인에 소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는 지적이 따를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침수차량의 수리는 상당한 기간이 소요된다. 부품 분해, 건조 등이 끝나면 본격적인 작업이 시작되는데 작업 특성상 여러 공업사를 다니며 추가 작업이 이어지기도 한다. 올란도의 경우 최초의 공업사 포함 총 세 곳에서 수리가 이뤄졌다.
◆ 일반 '수출중고차'로 둔갑...'50여일 만의 변신'
차량등록번호가 말소된 차량은 침수차 이력조회에 검색되지 않는다. 보험개발원이 제공하는 카히스토리에서 말소된 번호는 조회 자체가 되지 않아 침수차 여부를 확인할 방법이 없다. 이때부터 침수차는 침수이력을 지우고 일반 수리차량으로 분류된다. 침수차 이력 조회의 한계가 드러나는 부분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카히스토리는 말소 전 차량만 조회가 되기 때문에 말소된 차량의 침수여부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침수차 이력을 숨긴 해당 차량들은 송도중고차수출단지로 이동해 해외 바이어들에게 판매되는 것으로 확인됐다. 중고차 수출을 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해당 차량의 말소가 필수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더팩트> 취재진이 지켜본 공업사는 중고차수출을 전문적으로 하는 업체로 이미 해당 차량의 번호를 말소했기 때문에 침수차 이력을 전혀 남기지 않고 수출을 할 수 있었다. 이렇게 중고차로 수출되는 침수차는 인천항을 통해 세계로 팔려나간다.
손해보험협회 관계자는 "침수차를 폐차업체에 매각한 후에는 해당 차량이 어떻게 유통되는지 알 수가 없다"며 "침수차 수출 문제는 손해보험협회가 관여할 문제는 아니고 폐차업자나 중고차 업자의 문제"로 국한했다.
◆ 침수차 수출의 사각지대, '국가신인도' 하락 '우려'
세관의 통관과정에서 침수차 수출을 저지할 방법은 없다. 수출 차량의 경우 이미 등록이 말소돼 차량기록을 확인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침수차량이 수출돼 해당차량에서 결함이나 사고가 발생하면 국가와 기업브랜드 이미지 손상으로 이어져 무형의 큰 손실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소탐대실'의 표본이 될 수 있다. 이익을 떠나 사람의 생명과 직결되는 부분이어서 원천 제재가 필요한 부분이다.
국내 완성차 업계의 한 관계자는 "침수차가 해외로 유출된다는 소문을 들은 적은 있는데 사실로 확인됐다니 충격이다. 안전에는 국경이 따로 없다. 침수차를 운전하던 외국인이 갑자기 사고를 당한다면 단순히 운전자 피해에 그치지 않고 국내 완성차 신인도와 국가 경쟁력이 한꺼번에 무너지게 된다. 침수차 유통을 철저히 단속해야 하는 이유"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문제는 말소된 차량의 침수차 확인이 불가능하고 이렇게 수리된 침수차 수출에 아무 문제가 없다는 점이다. 침수차 국내 유통에 갖가지 제동을 걸더라도 또 다른 판매 경로가 존재하는 한 침수차 유통의 근절은 힘든 일이다. 침수차의 안전상 문제가 국내에 국한 돼서는 안 될 부분이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말소 후 폐차로 분류된 차량의 수출은 자동차관리법상 가능하다"면서 "다만 보험사들이 폐차하기로 한 차들이 유통이 된다는 자체는 약속을 안 지킨 것으로 문제가 된다"고 지적했다.
<사진기획팀ㅣ임영무·문병희·남윤호·이덕인·임세준 기자>
photo@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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