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박을 좇아 경마와 경륜, 복권과 카지노, 소싸움 등 사행산업의 문을 두드렸지만 쪽박만 찬 이들이 늘고 있다. '합법적인 도박'인 사행산업의 총매출은 지난해 20조 원을 넘어섰다. 여기에 불법도박 규모는 줄잡아 100조 원에 이른다. 가히 '대한민국은 도박 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중 경마는 일명 '화상경마'로 불리는 장외발매소를 앞세워 학교 앞까지 침투하며 우리 생활 깊숙한 곳에 싹을 틔우고 있다. <더팩트>는 지역주민과 마찰을 빚고 있는 장외발매소의 문제점과 실태, 그리고 국내 도박 산업의 부작용 등을 모두 6회에 걸쳐 짚어본다. [편집자 주]
[더팩트ㅣ대전=박대웅·이성락 기자] 월평화상경마장이 자리 잡고 있는 대전시 서구 월평동. 늦은 밤 술 한잔 기울이기에 적합한 이곳은 각종 숙박시설과 주점, 음식점이 밀집된 대전의 대표적인 유흥 거리다. 그러나 누군가에겐 퇴폐유흥업소로 병들어 아이들을 키울 수 없는, 즉 미래가 없는 마을이기도 하다.
<더팩트>는 지난달 27일 서울 용산화상경마장과 함께 '교육권 침해' 논란으로 갈등이 깊은 월평화상경마장을 찾았다. 초행길이라는 걱정과 달리 안마방, 체험방, 게임방 등의 글귀가 적힌 간판을 따라 이동하다 보니 어렵지 않게 정확한 위치에 다다를 수 있었다.
월평동에 도착한 뒤 가장 먼저 발견한 건 버려진 대부업체 명함이었다. 20만 원에서 40만 원까지, 소액을 즉시 빌려준다는 것으로 보아 급전이 필요한 '경마꾼'들을 상대로 영업을 하는 것으로 보였다. 이와 비슷한 대출 관련 전단은 화상경마장 인근 대로변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도착한 월평화상경마장은 (구)계룡사옥 건물에 위치해 있었다. 실질적으로 마권발매가 이뤄지는 곳은 7~12층이며, 한국마사회는 지난 1999년부터 매주 금·토·일요일에 걸쳐 영업을 해왔다. 하루 평균 2000여 명 이상이 이용하는 것으로 알려진 이곳의 지난해 연매출은 2648억 원에 달한다.
다른 특이점은 없는지 살펴보기 위해 고개를 돌리자 하굣길의 중학생 무리와 마주했다. 학생들은 수많은 유흥업소를 등진 채 건널목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집에 가는 길이냐"라고 묻자 그렇다고 한다. 한 학생에게 "이 주변에 학교가 많다고 들었는데 어디냐"고 재차 물으니 허공을 향해 손가락을 찔렀다. "저쪽이랑 저쪽이요. 그리고 이쪽도 초등학교 하나 있어요."
화상경마장과 학교는 그리 멀지 않았다. 학생들의 설명에 따라 5분여를 걸으니 ㄱ초등학교 정문이 나왔다. 대로변에서는 보이지 않았지만, ㄱ초등학교(화상경마장으로부터 500m) 바로 옆에는 ㄴ중학교(345m)가 화상경마장과 더욱 가까운 위치에 자리 잡고 있었다. 반대 길로 15분여를 다시 걸으니 ㄷ초등학교(500m) 운동장이 보였다. 그곳에서 고사리 같은 손으로 흙장난을 치고 있는 아이들을 만났다. "이 학교 학생이니? 1학년? 2학년?"
눈을 말똥거린 한 아이가 답했다. "4학년인데요."
아이들은 비교적 고학년일수록 화상경마장에 대한 존재를 인지하고 있었다. 학부모들은 화상경마장에 대한 아이들의 질문 빈도가 잦아지면, 월평동 주변 환경에 대한 거부감이 동시에 증가한다고 밝혔다.
자녀 두 명을 ㄷ초등학교에 보내고 있는 엄마 장 모(43)씨는 "학교 3개가 근처에 있는데 화상경마장이 있는 게 말이 안 된다. 아들이 화상경마장 이용객을 가리켜 '저 사람들 도박하는 사람들 맞지'라고 물어볼 때면 깜짝깜짝 놀랜다. 여건이 된다면 먼저 마을을 떠난 사람들처럼 당장 이사하고 싶은 심정"이라고 토로했다.
학부모에 따르면 학원가였던 월평동 주변은 화상경마장이 생긴 이후 유흥가로 급격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도박중독자와 만취자들이 북적대는 등 교육과 함께 주거 환경이 크게 훼손되자 이웃들의 '월평 이탈'이 잦아졌다.
초등학교 4학년 아들을 둔 엄마 김 모(43)씨는 2014년부터 '화상경마장 반대' 운동을 하고 있다. 화상경마장의 존재를 몰랐던 그는 아들의 학년이 올라갈수록 학급수가 줄어드는 것을 보고 처음엔 의아하게 생각했다고 한다. 그는 "아들의 친구들이 자꾸 전학을 가는 이유를 모르고 있었다. 알고 봤더니 화상경마장이 있었고, 그 주위에 여러 퇴폐업소가 가득했다. 경마가 열리는 날이면 이 근처는 외부에서 온 만취자들로 넘쳐난다. 부모 입장에서 학교 주변이 이러니 굉장히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실제로 인근 학교의 학생수는 꾸준히 줄어들고 있다. 지난 2010년 42개 학급 1233명이었던 ㄱ초등학교는 올해 29개 학급 575명(-53.3%)으로 줄었다. 마찬가지로 ㄷ초등학교는 2010년 21개 학급 528명에서 올해 15개 학급 267명(-49.3%)으로 감소했다. 특히 ㄴ중학교는 2010년 24개 학급 740명에서 올해 12개 학급 291명(-60.6%)으로, 상황이 좀 더 심각했다. 출생률 저하로 인한 신입생 감소가 보편적인 현상임을 고려하더라도 불과 몇 년 사이 이 같은 감소세는 눈에 띄는 수준이다. 참고로 같은 기간 대전 지역 초등학생 평균 감소율은 -21.2%, 중학생은 -27.7%다.
장 씨는 "사람들이 월평동을 떠나는 이유는 여러 가지라고 생각한다. 100% 화상경마장 때문이라고는 단정할 수 없다. 그러나 사람들이 떠나가는 것에 (화상경마장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건 사실이다. 지금도 (화상경마장과 유흥업소 때문에) 월평동을 떠나겠다는 학부모들을 주위에서 흔하게 만나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학부모와 주민들은 '월평동화상경마도박장 외곽이전 및 폐쇄 주민대책위원회'(대책위)를 구성해 3년째 반대 운동을 벌이고 있다. 이들은 최근 2개 층이 확장된다는 소식을 듣고 즉각 반발해 이를 저지하기도 했다. "도박중독자를 양산하는 화상경마장 문제 해결을 찾기는커녕 이익만을 위해 확장을 시도하는 한국마사회를 규탄한다"는 내용의 성명을 내기도 했다.
이날 늦은 오후, 대책위원장인 김대승 씨를 만났다. 수심이 가득한 얼굴로 마주 선 그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입을 뗐다. 이후 유흥가를 가리키며 "이런 곳에서 아이들이 어떻게 공부를 할 수 있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씨는 월평동 터줏대감이다. 1993년부터 월평동에서 식당을 운영한 그는 화상경마장으로 인해 변해가는 월평동의 모습을 직접 지켜봤다. 그리고 그는 "경마장은 우리 삶 속에 절대 있어선 안 될 시설"이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김 씨는 화상경마장을 용인하는 학교 측의 태도에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학교가 마사회 측으로부터 지원금을 받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반대 의사를 밝히지 않는다는 것. 실제로 이와 관련된 학부모들의 증언도 이어졌다. 한 학부모는 "마사회가 도서관을 새로 만들라며 ㄷ초등학교에 상당 금액을 전달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마사회 측은 '입막음용' 지원금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수익을 사회에 환원하는 차원에서 이뤄진 지원금일 뿐 불순한 의도나 목적이 없었다는 설명이다. 마사회 관계자는 "도서관 시설이 낙후된 ㄷ초등학교에 5000만 원을 지원했고, 다른 학교에도 여러 방식의 지원금을 전달한 것이 맞다. 화상경마장으로 인해 피해가 발생한다고 하니 세 학교에 대해 좀 더 많은 지원금이 지급된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다른 지역 학교에도 지원 사업을 벌이고 있다. 마사회의 여러 지원 사업 중 한 가지 사례일 뿐 문제가 될 것은 없다"고 설명했다.
이날 만난 학부모와 김 씨 등은 남아 있는 아이들마저 월평동을 떠나게 될까 우려하고 있었다. 아울러 마사회가 화상경마장을 '레저'가 아닌 '도박'임을 인정하고, 해당 시설을 도심에서 외곽 지역으로 이전할 것을 촉구했다.
김 씨는 "아이들이 더 줄어들게 되면 월평동은 점점 저항 능력을 잃어갈 것이다. 아이들이 마음껏 활동할 수 있는 마을이 될 수 있도록 다른 지역에 사는 주민들도 이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4편에서 <'도돌이표' 마사회 주장 "법적으로 문제없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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