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경민 객원기자] 누가 뭐래도 ‘댄스 전성시대’다. 대중 가요계의 ‘꽃’인 아이돌 스타로 성공하기 위한 필수조건이 된 지 오래. 최근 대세인 가요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참가자들이 댄스로 자신의 매력을 보여주는 것 또한 당연한 수순이 되고 있다. 이것도 모자라 댄스를 주 컨셉트로 한 공중파 예능 프로그램이 우후죽순으로 쏟아지고 있는 현실이다. SBS ‘키스 앤 크라이’, MBC ‘댄싱 위드 더 스타’ 등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댄스 붐’의 원류에는 스트리트 댄스가 자리잡고 있다. 그 이전까진 ‘비주류’로 취급 받던 스트리트 댄스는 1990년대 초반 들어 ‘서태지와 아이들’의 폭발적인 인기에 발맞춰 주류 문화의 장르로 급부상했다. 이미 현란한 브레이크 댄스로 유명한 비보이들의 공연은 국가 이미지 홍보에도 첨병으로 인정받을 정도다. ‘영턱스클럽’의 최승민은 국내 댄스 발전사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이다. 그의 입을 통해 우리나라 1세대 댄서들의 세계와 그에 얽힌 ‘야사’에 대해 들어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댄서 오용주와 필자는 서로 잘 알고 지내면서도 불 타오르는 경쟁상대였다.
우리의 배틀은 문나이트클럽에서 이뤄졌다. 사실 그 당시는 배틀 개념이 좀 달랐다.배틀이라기보단 기싸움, 즉 누가 먼저 무대를 장악하는냐에 따라 승패가 갈리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실력이 없으면 당연히 불가능했다. 또한 예전에 무림계에 있던 ‘도장 깨기’와 비슷한(?) ‘연습실 깨기’ 같은 것도 있었다.
배틀에서 지면 분한마음으로 연습실에 가서 연습에 몰두했고 서로가 동생들을 스파이로 두고 상대방의 정보를 얻기도 했다. 상대방 중 누군가가 새벽 연습 들어 갔다 하면 똑같이 새벽연습을 하곤 했다.
오용주와 필자는 서로 약속을 하고 배틀을 붙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서로 끌어당기는 에너지가 있다고 할까. 그런 에너지 때문에 우린 항상 문나이트클럽에서 만났다.
춤은 몇 분이면 끝나서 그런지 온통 춤 생각뿐이었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배틀을 해서 상대방이 승리하면 뒤도 안 돌아보고 나가버리곤 했다. 그러면 구경하던 댄서들조차 넓은 사막에 버려진 것 같은 싸늘함을 느꼈다.
반대로 승리의 맛을 본 이는 그 순간만큼은 세상 어떤 것도 부럽지 않았다.
지금은 춤이라는 개념이 즐기고 공유하는 문화에 정착하고 있지만, 당시에는 이기는 자만이 살아남았다. 그래서 더욱 더 목숨 걸고 연습했던 게 생각난다.
오용주와 필자는 이 같은 일들을 오랫동안 수없이 반복해왔고, 문나이트클럽에서 블루몽키스클럽으로까지 이어온 장본인들이다. 대놓고 말하기 쑥스럽지만 대한민국 ‘배틀 역사’의 산증인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최승민의 댄스 히스토리’는 매주 화, 목요일에 연재됩니다. 11편은 20일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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