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자극 숏드라마…뻔하다는 건 소중하다는 뜻"

[더팩트 | 문채영 기자] 이준익 감독에게서 거장의 품격이 느껴진다. 영화계 어른으로서 지닌 신념과 시대의 변화를 똑바로 마주하는 자세에는 그의 관록이 담겨 있다. 깨어있는 감각이라 더 존경스럽다. 이번 '아버지의 집밥'도 마찬가지다. 자극이 넘쳐나는 숏드라마 장르에 따뜻함을 더하겠다는 이준익 감독이다.
이준익 감독은 최근 서울 성동구의 한 미팅룸에서 <더팩트>와 만나 숏드라마 '아버지의 집밥'(감독 이준익) 개봉 관련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번 작품으로 숏드라마에 처음 도전한 그는 작품과 관련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지난 9일 전국 롯데시네마에서 개봉한 '아버지의 집밥'은 40년간 삼시세끼 집밥만 찾던 아버지 하응(정진영 분)이 '요리백지증(요리하는 법을 잊는 가상의 병)'에 걸린 아내 순애(이정은 분)를 대신해 생애 처음 부엌에 들어서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하는 '아버지의 집밥'은 본래 약 2-3분 가량의 짧은 에피소드 61개로 제작된 레진스낵의 숏드라마다. 하지만 제30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플랫폼 기획전: 숏폼 시네마'에 초청된 것을 계기로 약 2시간 30분 분량의 세로형 영화로 편집돼 숏드라마 최초로 극장에 걸렸다.
그간 약 14편의 영화를 대중에게 선보여 왔던 이준익 감독도 '아버지의 집밥' 개봉에서만큼은 긴장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숏드라마 작품 개봉은 처음이라 느낌이 가늠되지 않는다"며 "극장에서 작품을 본 관객들이 당황하는 모습이 그려진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내 그는 '아버지의 집밥'이 관객의 마음에 온기를 전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준익 감독은 "당황은 잠시다. 금세 익숙해진다"라며 "따뜻한 온기를 가득 머금어 영화를 보고 나면 관객의 체온이 올라가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결국 '아버지의 집밥' 극장 개봉은 베테랑 영화감독인 그에게도 새로운 도전인 셈이다. 그는 "영화관용 작품이 아니기 때문에 개봉 자체가 반칙"이라며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덕분이다. 그 행사가 없었으면 개봉 시도도 못 했을 것이다. 반응이 너무 좋았다"고 전했다.

다만 그는 스스로 '도전적인 사람'은 아니라고 밝혔다. 이번 '아버지의 집밥' 역시 후배들에게 떠밀려서 연출하게 된 작품이라고. 이준익 감독은 "요즘 영화감독 데뷔가 어렵다 보니 여러 후배에게 숏드라마 장르를 추천했었다. 그들이 나도 하라고 말해서 하게 된 것일 뿐"이라며 "나는 현실에 순응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지금은 '아버지의 집밥' 결과물에 만족도가 높지만 처음에는 걱정이 많이 됐어요. 잘해야 본전이거든요.(웃음) 제 나이에는 도전이라기보다는 '응전'이 맞는 것 같아요. 도전은 젊은 감독들의 몫이죠. 나이에 맞는 태도로 살아야 해요. 저는 새로운 생태계에 반응하는 것일 뿐이에요."
이준익 감독이 바라보는 숏드라마는 무엇일까. 그는 숏드라마를 영화에서 파생된 장르 중 하나로 정의했다. 이야기 산업 안에서 다른 형식을 띠고 있는 것이라고. 그는 "숏드라마는 가장 현대화된 영화의 새로운 포맷"이라고 설명했다.
그가 숏드라마로 추구하는 바 역시 명확했다. 그는 "'아버지의 집밥'은 무자극 숏드라마"라고 말했다. 자극적인 내용이 넘쳐나는 숏드라마 업계에 도전장을 내민 작품이라는 설명이다. 특히 '아버지의 집밥'으로 더 다양한 연령대의 이용자를 숏드라마 업계에 끌어모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다.
"초반에 숏드라마는 플랫폼을 확장시키기 위해 극단적인 자극을 추구했어요. 하지만 자극에는 피로가 따라요. 더 많은 이용자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폭넓은 이야기로 넓혀야 할 필요가 있죠. 나이 드신 분들도 볼 수 있는 숏드라마가 생긴다면 좋은 거죠. '아버지의 집밥'이 문화적으로 순기능을 할 거예요."

때문에 이준익 감독이 이번 작품의 소재로 '가족 이야기'를 택한 것은 매우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그는 "좋은 이름이 흔한 것처럼 뻔하다는 것은 그만큼 소중하다는 뜻"이라며 "세상에서 제일 뻔한 관계가 바로 '가족'이다. 동시에 제일 소중한 관계"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아버지의 집밥'이 새로운 선례가 되기를 소망했다. 최근 영화계에서 온 가족이 볼 수 있는 따뜻한 이야기에 투자가 많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데 상대적으로 적은 제작비로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작품이 만들어지길 바란다는 뜻이다.
"자극적인 작품만 추구할 것이 아니라 그 외의 선택지들도 지속 가능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번에 '아버지의 집밥'이 나름의 성과를 거둔다면 따뜻한 가족 이야기를 다루는 다른 작품들에도 투자가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어요."
여기서 이준익 감독이 영화계 거장으로서 가지고 있는 가치관이 드러난다. 그는 "가로 영화, 세로 영화가 중요한 게 아니다. 결국 이야기가 더 중요하다"며 "'아버지의 집밥'은 나이 있는 감독으로서 내가 가지고 있는 가치관이 반영된 작품"이라고 말했다.

그의 새로운 야심작 '아버지의 집밥'은 어떤 작품일까. 이준익 감독은 작품을 "어떠한 자극보다 소중한 뻔한 이야기가 담겼다"며 "'한 끼의 밥이 소중하다. 그걸 차려주는 사람은 더 소중하다'는 대사로도 알 수 있다. 소중해서 뻔해진 관계의 중요성을 그린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관객에게 "작품을 본 후 타인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돌아가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부부도 타인, 부모 자식도 타인이다. 결국 나 아니면 다 타인"이라며 "'아버지의 작품'은 입장 바꾸면 이해 못 할 일이 없다는 내용을 담은 '가족 이야기'"라고 덧붙였다.
결말 역시 그의 오래된 신념이 반영됐다. 이준익 감독은 "내 모든 작품의 결말은 'Unhappy for happy(언해피 포 해피)'"라며 "행복을 위한 불행이 모든 작품의 끝을 장식한다. '아버지의 집밥' 역시 아름다운 비극을 맞이하는 과정을 그린다"고 말했다. 앞서 그가 연출한 영화 '왕의 남자' '라디오 스타' '동주' 역시 같은 맥락이라고.
"저는 비관론자이자 운명론자예요. '어차피 인생은 비극'이라는 말이 있듯이 모든 사람은 결국 죽어요. 그렇기 때문에 이준익의 작품에서 비극은 반드시 아름다워야 해요. 이 말은 '왕의 남자'의 헤드카피로도 쓰였어요. 제 작품은 불행한 결말로 끝을 맺지만 관객의 마음만큼은 따뜻하게 만들어요. 그게 제가 생각하는 영화의 마법이에요."
이렇듯 이준익 감독은 오랜 시간 일궈온 작품 가치관을 꾹꾹 눌러 담아 '아버지의 집밥'을 완성했다. 곧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여전히 깨어있고 살아있는 영화감독임이 틀림없다. 이준익 감독을 만나면 그가 만든 작품이 궁금해지고, 그의 작품을 보고 나면 다시 그라는 사람이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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