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해된 가족이 고군분투하고 연대하면서 어려움을 헤쳐 나가는 이야기

[더팩트|박지윤 기자] 가족의 의미를 확장하고 무너진 줄 알았던 관계 속에서 서로를 구원하는 이들의 끈끈한 연대를 담은 '비광'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영화인지는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다. 다만 문제는 메시지에 닿기까지 너무 많은 설정과 이야기를 펼쳐놓는다는 것이다. 여기에 다급한 마무리까지 더해지며 어느 하나에 깊게 파고들지 못한 채 막을 내려 짙은 여운이 아닌 아쉬움만 남긴다.
오늘(2일) 스크린에 걸리는 영화 '비광'(감독 이지원)은 톱스타 부부 중구(류승룡 분)와 남미(하지원 분)가 갑자기 나타난 중구의 딸 동주(김시아 분)로 인해 파경을 맞은 뒤 8년 후 충격적인 사건에 휘말린 동주를 구하기 위해 마지막 남은 모든 것을 걸고 진실을 파헤치는 이야기를 그린다. 영화 '미쓰백'(2018)으로 제55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신인감독상을 받은 이지원 감독의 신작이다.
작품은 우여곡절 끝에 한국 야구의 간판스타가 된 중구와 잘나가는 배우인 남미가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결혼하고 남 부러울 것 없이 화려하게 사는 톱스타 부부의 삶을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러다가 중구가 과거에 짧게 만났던 가수가 남긴 유서를 통해 그에게 딸이 있었다는 사실이 세상에 공개되고, 언론의 폭로와 여론의 비난이 쏟아지면서 중구와 남미는 파경을 맞는 걸 넘어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지고 만다.
차마 동주를 외면하지 못한 중구와 과거 아픔으로 인해 아이를 받아들일 수 없는 남미가 각자의 삶을 살아내던 8년 후 어느 날, 우림천 여중생 사망 사건이 발생하고 현장에 있던 동주가 유력 용의자로 지목되며 또 다른 위기가 찾아온다. 이에 중구와 그의 가족은 벼랑 끝에 몰린 동주를 구하기 사실을 바로잡기 위해 필사적으로 매달리고 남미는 과거에 자신들을 추락시킨 악연이 지금까지 이어져 있음을 알게 되면서 부패한 경찰 세력에 맞서 은폐된 진실을 파헤친다.

앞서 이지원 감독은 '미쓰백'을 통해 어린 시절의 상처를 안고 거칠게 살아가던 백상아(한지민 분)가 학대받는 아이 김지은(김시아 분)을 만나면서 아이를 구하기 위해 세상과 맞서는 과정을 밀도 있게 펼쳐내며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이렇게 한 여자와 아이의 연대에 집중했던 이 감독은 '비광'으로 이야기의 풀을 확장시켰다. 중구와 남미는 부부로서의 인연을 끝냈고 남미와 동주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남이지만, 한때 가족이 될 뻔했다는 이유만으로 갈라졌음에도 서로를 구원하고 연대하며 평범하지 않기에 더욱 깊은 울림을 남길 수 있는 가족애를 다루면서 말이다.
분명 이러한 메가폰의 의도는 기대감을 심어주기 충분했지만 결과물에는 어둡고 우울하고 왠지 모르게 축축 처지는 이야기만 있을 뿐 신선함이나 흥미로움은 찾아볼 수 없었다.
우선 작품에 담고자 하는 것들이 너무 많으니 정작 중구와 남미가 어떤 사랑을 했고 중구가 갑자기 나타난 딸과 어떤 시간을 보냈으며 왜 남미가 중구의 가족들과는 연락하고 지내는지 등에 관해서는 찰나의 플래시백으로 지나가 버린다. 켜켜이 쌓여야 할 서사들이 헐겁게 맞물리는 데 그치니 관객이 여러 인물의 시선에 몰입하거나 이들의 결정에 무조건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이야기를 여러 가지로 뻗어내는 과정에서 선택과 집중을 했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또한 촬영을 끝낸 지 5년 만의 개봉이라는 시간의 간극도 결국 영화의 발목을 잡는다. 빽이 좋은 같은 하교 남학생은 죄책감 없이 만행을 저지르고 힘없는 동주가 누명을 쓰는 구도부터 돈으로 언론 매체를 휘두르는 정치판까지, 그동안 어디선가 본 듯한 익숙한 상황과 갈등 요소는 피로감을 높일 뿐이다. 여기에 위기 상황이 어영부영 해결되면서 통쾌함이나 해방감보다 당황스러움이 앞서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럼에도 중구 역의 류승룡은 제 몫을 다 해내며 관객들의 시선을 붙잡는다. 그는 극이 전개됨에 따라 거칠고 투박한 부성애라는 감정의 밀도를 차곡차곡 쌓아 올리고 결정적인 순간에 터뜨리면서 또 다른 아버지의 얼굴을 꺼낸다. 중구의 누나 지숙으로 분한 김선영은 까칠하지만 누구보다 가족을 아끼는 인물을 현실적인 생활 연기로 그려내며 몰입도를 높인다.
톱의 자리에서 한순간에 추락한 여배우 남미를 만난 하지원은 군데군데 다소 과장되거나 어색한 톤을 보여주지만, 지금껏 선보이지 않았던 결의 캐릭터에 도전하면서 과한 메이크업과 화려한 의상으로 파격적인 외적 비주얼을 완성했다는 점 자체만으로 값진 의미를 남긴다. 김시아도 이지원 감독의 선택을 또 한 번 받은 이유를 연기로 보여준다.
현재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와 '오디세이'가 쌍끌이 흥행을 하고 있고 여성 감독이 펼쳐낸 여성 서사라는 차별화된 매력을 지닌 '경주기행'을 시작으로 각기 다른 장르를 내세운 '인턴' '암살자(들)' '타짜: 벨제붑의 노래' '부활남: 더 레드' 등의 한국 영화들이 줄줄이 출격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다.
이처럼 치열한 경쟁이 예상되는 9월 극장가의 포문을 열게 된, 하나나 삼광일 때는 힘이 없다가 오광일 때 힘을 내는 패인 '비광'이 끈끈한 가족 누아르로 경쟁력을 갖추고 관객들의 선택을 받으며 존재감을 발산할 수 있을지 이목이 집중된다. 15세 이상 관람가이며 러닝타임은 109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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