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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F인터뷰] "두려웠지만"…그럼에도 이정은이 '경주기행'을 떠난 이유
네 모녀의 엄마이자 죽이는 여행의 주최자 옥실 役 맡아 열연
"배우로서 다른 면의 얼굴을 보여줘야 되는 게 저의 숙제죠"


배우 이정은이 영화 '경주기행' 개봉 관련 인터뷰를 진행했다. /롯데엔터테인먼트
배우 이정은이 영화 '경주기행' 개봉 관련 인터뷰를 진행했다. /롯데엔터테인먼트

[더팩트|박지윤 기자] 누구에게나 가보지 않은 길을 걷는 것은 설렘과 두려움이 공존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배우 이정은에게 '경주기행'이 그랬다. 지금껏 해본 적 없는 것에 뛰어드는 일이 부담감과 책임감으로 다가왔지만 용기를 내며 한 걸음 내디딘 그는 익숙함을 벗어 던진 새로운 얼굴로 스크린을 장악하며 대체 불가한 존재감을 발산했다.

이정은은 '경주기행'(감독 김미조) 개봉을 앞둔 지난 20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있는 카페에서 <더팩트>와 만났다. 네 모녀가 떠나는 죽이는 여행의 주최자 옥실로 분해 작품 안팎으로 든든한 버팀목 그 자체가 됐던 그는 "저희의 이야기가 진솔하게 닿았으면 좋겠다"고 말문을 열며 다양한 이야기를 전했다.

지난 26일 스크린에 걸린 '경주기행'은 수학여행에서 돌아오지 못한 막내딸을 위해 8년의 기다림 끝에 '죽이는' 여행을 떠난 네 모녀의 가족 복수극으로, 데뷔작 '갈매기'(2021)로 연출력을 인정받은 김미조 감독의 첫 상업영화다.

이정은과 김미조 감독은 영화 '오마주'(2022)에서 배우와 스크립터로 처음 만났다. 해당 작업이 거의 끝날 때쯤에 작품 구상 단계부터 자신을 염두에 둔 '경주기행'을 받게 된 것이다. 이를 회상한 이정은은 김 감독의 첫인상을 두고 "의문스러웠다"고 솔직하게 밝혀 궁금증을 한껏 끌어올렸다.

이정은은 막내딸을 잃은 슬픔과 죄책감 속에서 오직 복수만을 바라며 8년을 버텨온 엄마 옥실 역을 맡아 열연을 펼친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이정은은 막내딸을 잃은 슬픔과 죄책감 속에서 오직 복수만을 바라며 8년을 버텨온 엄마 옥실 역을 맡아 열연을 펼친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계에서 '갈매기'가 센세이션하다는 말이 돌았는데 갑자기 '오마주'에서 스크립터를 한다니까 스파이도 아니고 뭘 하려고 하나 궁금했었는데 다 계획이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열심히 하더라고요. 신수원 감독님이 이야기를 만드는 과정이 여성 감독들에게 영향을 주니까 이를 현장에서 배우고 얻기 위해 굉장히 열심히 하더라고요. 이게 끝날 때쯤 시나리오를 주고 같이 하자고 했어요. 저는 현장에서 만난 연출부들이 작품을 하게 될 때 같이 하고 싶어요. 저의 미래가 그분들의 손에 달려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웃음)."

다만 김미조 감독을 향한 신뢰와 애정과는 별개로 대본을 보고 출연을 결심하기까지의 과정은 마냥 순조롭지는 않았다고. 막내딸을 잃은 상실감과 아픔을 품고 8년을 기다린 끝에 '죽이는' 여행'을 떠나면서 여러 일을 거친 후에 '내가 용서하게 될까 봐 두려웠어'라는 옥실의 대사를 잘 구현할 수 있을까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제가 그동안 다른 작품들에서 큰 변화를 갖는 인물을 많이 하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감독님이 그리는 방향으로 옥실을 잘 표현할 수 있을까에 대한 묘한 책임감과 부담감을 느꼈어요. 시나리오를 보고 얼떨결에 오케이를 했지만요. 분명 해보면 좋을 시나리오인데 이렇게 끝까지 가는 인물을 맡는다는 게 당사자가 되면 얼마나 괴로운 작업이 되겠어요."

그럼에도 '경주기행'에 매력을 느껴 선택한 지점을 묻자 "배우니까 안 가본 길을 가봐야되는 시간이 오는 것 같다. 물론 관객들은 제가 했던 것들에 대한 기억으로 새로운 작품을 보고 이게 익숙하고 좋은 부분도 있겠지만 다른 면의 얼굴을 보여줘야 되는 게 저의 숙제인 것 같다. 안 가본 길이라서 가게 됐다"고 강조했다.

이정은은
이정은은 "다른 면의 얼굴을 보여줘야 되는 게 저의 숙제인 것 같다. 안 가본 길이라서 가게 됐다"고 출연을 결심한 이유를 전했다. /롯데엔터테인먼트

동네 수선집 '옥패션'을 운영하며 평범하게 생계를 꾸려오던 옥실은 막내딸을 잃은 슬픔과 죄책감 속에서 오직 복수만을 바라며 8년을 버텨온 인물이다. 이를 연기한 이정은은 딸을 잃은 슬픔과 분노에 매몰돼 다른 것들은 신경 쓰지 않는 엄마의 내면을 더벅머리와 같은 옷만 입는 등의 거친 외적 비주얼로 드러냈고, 복수를 향한 집념과 그 이면에 숨은 인간적인 갈등을 밀도 높게 그려내며 관객들의 가슴에 깊은 울림과 여운을 남긴다.

"옥실은 집에서 가내수공업을 하는 재봉사이면서 리모컨을 움켜쥔 집안의 실세예요. 경제권을 가지고 가족의 붕괴를 책임지는 만큼 아이의 죽음을 마주하는 장면에서 감정을 절제하는 방향을 선택했고요. 딸들에게 공평하게 사랑을 표현하지는 않지만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지키기 위해 일탈행위를 하는 동주(이연 분)에게 심하게 분노하죠. 제 눈에 보이지 않으면 불안함을 느끼는 엄마거든요. 그런 지점에서 감독님과 저는 엄마가 아이들을 꼬드겨서 복수를 하려는 게 아니라 제 복수와 가족이 같이 가는 건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어요."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지만 도전을 선택한 이정은이 이번 작품을 통해 명확하게 얻은 게 있다. 바로 액션이다. 상대와 합이 잘 짜여진 고난도 액션신은 아니었지만 복수의 상대를 제압하기 위해 머리채를 잡고 물건을 휘두르고 구르는 등의 몸싸움을 소화한 그는 "얼굴을 구기고 있으니까 더 실감난다더라. 얼굴 액션이 가능하다는 걸 알았다"고 환하게 웃어 보였다.

그런가 하면 이날 막내딸 경주를 연기한 배우 황현정과는 본격적으로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특별한 방법으로 서사를 만들어갔다고 밝혀 관심을 모았다. 황현정은 캐스팅이 된 후 자신의 실제 어린 시절 사진을 전달하면서 '이렇게 자랐다'는 걸 알려줬고, 이에 이정은은 그의 집을 방문해 어머니를 만나고 함께 시간을 보냈다고.

"제가 그 친구의 어릴 때 얼굴을 전혀 몰랐는데 사진을 받고 이 모든 전사를 알아서 연기에 도움이 됐어요. 또 현정이의 어머니가 저랑 비슷한 걸 보면서 천운 같았어요. 촬영 전까지 이런 시간을 보내면서 애틋해졌죠. 현정이가 실제로 엄마랑 어떻게 지냈는지 직접 봤는데 애교가 많은 딸이더라고요. 그 모녀의 관계가 저에게 롤모델이 됐고 굉장히 좋은 레퍼런스를 받은 것 같았어요. 그래서 옥실과 경주의 신을 어렵지 않게 찍었죠."

이정은은 '경주기행'을 두고
이정은은 '경주기행'을 두고 "가족애에 대한 공감대가 더 형성돼서 각자의 상황에서 빗대서 볼 수 있는 작품"이라고 자신하며 많은 관람을 독려했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이와 함께 2019년 종영한 KBS2 '동백꽃 필 무렵' 이후 7년 만에 공효진과 엄마와 딸로 다시 만난 소회도 전했다. 이번에서 공효진은 가정을 꾸린 뒤에도 엄마를 1순위로 생각하는 든든한 첫째 딸 장주 역을 맡아 작품 안에서는 옥실의 오른팔로서, 현장에서는 믿음직스러운 동료로서 존재했단다.

"'동백꽃 필 무렵' 때도 너무 스타고 연기를 잘했는데 결혼하니까 결이 달라지더라고요. 배우는 자신이 어떠한 방향으로 사느냐에 따라 바뀌는 것 같아요. 역사가 있는 얼굴 같았달까요. 공효진이 '엄마 이제 저는 작품에 따라서 주·조연을 다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는데 좋은 작품들 더 많이 올 거라고 주연 더 하라고 했어요."

'기생충' 이후 다시 만난 박소담을 두고는 "딕션이 너무 좋고 연기를 잘하니까 그의 대사를 받았을 때 정신을 바짝 차리게 하는 매서움이 있다. 똘똘하고 야무지다. 아프고 나서 여유가 많이 생겨서 앞으로 자신의 길을 잘 갈 것 같다"고, 이번에 처음 만난 이연에 관해서는 "연극판에서 무슨 소문을 들었는지 처음에는 저를 좀 무서워하더라. 너무 귀엽고 열정적이다. 감독님과 대화를 가장 많이 하고 공부를 열심히 한다"고 남다른 애정을 드러냈다.

현재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와 '오디세이'가 쌍끌이를 하고 있는 극장가에 출격하는 '경주기행'이다. 대작들과 경쟁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지만, 여성 감독이 펼쳐낸 여성 서사라는 차별화된 매력과 '만약 나라면?'이라는 질문으로 출발해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는 점 그리고 시사회 이후 쏟아지는 호평은 흥행에 대한 기대감을 심어주기 위한 충분한 요소다.

"물론 여성 서사가 장점이 되기도 하지만 '아버지와 형제들이었다면 이런 일을 안 꾸몄을까?'라는 생각도 들어요. 그만큼 가족애에 대한 공감대가 더 형성돼서 각자의 상황에 빗대서 볼 수 있는 작품이니까 많은 분이 극장을 찾아주셨으면 좋겠어요. 진심이 닿으면 우리의 메시지가 전달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jiyoon-1031@tf.co.kr
[연예부 | ssent@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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