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불륜', '슈룹'·'시그널'·'소년심판' 보는 기분"

[더팩트ㅣ김샛별 기자] 배우 김혜수에게도 여전히 단숨에 읽게 만드는 대본이 있다. 오랜 시간 수많은 작품을 경험했지만 매력적인 이야기를 만나면 계산하기보다 먼저 빠져든다. '지금 불륜이 문제가 아닙니다'도 마찬가지였다. 익숙한 소재를 다루면서도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대본에 끌렸고, 선택한 뒤에는 박경희라는 인물에 온전히 몰입했다.
김혜수는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엇 <더팩트>와 만나 쿠팡플레이 시리즈 '지금 불륜이 문제가 아닙니다'(극본 박경희·김수진, 연출 김정식, 이하 '지금 불륜') 공개 관련 인터뷰를 진행했다. 극 중 성공한 인플루언서이자 가족을 지키기 위해 치열하게 살아온 가장 박경희 역을 맡은 그는 작품과 캐릭터, 함께한 배우들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전했다.
지난달 31일 첫 방송된 '지금 불륜'은 행복한 가정을 팔아온 인기 인플루언서 부부와 진흙탕 이혼 소송 중인 이웃집 의사 부부가 불륜조차 하찮아지는 감당 불가한 비밀로 얽히면서 폭주하는 연쇄 충돌 블랙코미디를 그린 드라마다.
작품은 제목부터 김혜수의 시선을 잡았다. '불륜이 문제가 아니라면 무엇이 문제일까'라는 궁금증에 대본을 펼쳤고, 한 번 읽기 시작한 뒤에는 단숨에 받은 4부까지 읽었다. 결국 출연을 결정하게 만든 가장 큰 이유도 대본이었다. 소재 자체가 완전히 새롭지는 않았지만 익숙한 사건을 전환하는 방식이 독특했고, 그 안에서 예상하지 못한 재미를 발견했다.
김혜수는 과거 '슈룹'과 '시그널' '소년심판'을 떠올리며 좋은 대본을 만났을 때의 공통점을 이야기했다. 작품마다 장르와 캐릭터는 달랐지만 이야기가 가진 힘이 강할 때만큼은 배우로서의 계산보다 독자로서의 몰입이 먼저였다는 설명이다.
"처음 대본을 봤을 때 제목이 가장 시선이 갔어요. '불륜이 문제가 아니면 뭐지?' 싶었죠. 그래서 빨리 대본을 봤어요. 보통은 다른 것도 하다가 억지로 보는 경우도 있는데 이건 밤에 시작했다가 새벽까지 쭉 본 것 같아요. '슈룹'이나 '시그널' '소년심판' 때도 그랬어요. 각자 스타일은 다르지만 아무 생각 없이 몰두해서 읽었죠. 이야기가 가진 힘이 굉장히 있었어요."

이에 김혜수는 작품을 단순히 '성공한 인플루언서의 불륜 이야기'로 접근하지 않았다. 그는 "경희라는 인물의 중심에는 화려한 삶보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 치열하게 살아온 가장이라는 정체성이 있다고 봤다. 불륜은 경희의 삶을 뒤흔드는 출발점일 뿐 사건을 통해 각 인물이 어떤 선택을 하고 숨겨왔던 민낯을 어떻게 드러내는지가 작품의 핵심이라고 해석했다"고 밝혔다.
특히 경희는 대중에게 끊임없이 자신의 삶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인테리어를 중심으로 콘텐츠를 만들며 화려한 가족의 모습을 보여주지만, 김혜수는 그 외피 자체보다 그 안에 감춰진 불안과 욕망에 집중했다. 그는 "성공한 인플루언서라는 설정은 경희의 성격을 설명하는 하나의 장치였고, 실제 연기에서는 '가족을 지키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는 본질을 놓치지 않으려 했다"고 설명했다.
외적인 모습 역시 같은 맥락에서 접근했다. 실제 인플루언서들의 콘텐츠와 스타일을 참고하고 브랜드가 드러나는 의상, 화려한 헤어스타일 등을 활용했다. 김혜수는 "평소 내 취향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인플루언서 경희'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선택했을 법한 모습을 만드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돌이켰다. 그 덕분에 화려한 스타일링은 단순한 볼거리가 아니라 경희가 세상에 보여주는 또 하나의 가면이 됐다.
"김혜수가 꾸미는 역할을 했다고 해서 마음껏 꾸며봤다는 식으로 읽히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제 화려함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인플루언서 경희로서 보여야 했죠. 실제 성공한 셀럽들의 외관을 많이 참고했어요. 경희는 끊임없이 주변의 시선을 의식해야 하는 사람이니까요."

경희의 진짜 얼굴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지는 김혜수가 가장 고민한 부분이었다. 이에 그가 선택한 건 남편의 불륜을 발견하는 순간에도 단순한 충격이나 배신감만을 앞세우지 않았다. 김혜수는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상황을 지나 점차 현실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경희가 그동안 감춰왔던 감정이 조금씩 새어 나와야 한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경희의 내면에 자리한 오래된 공포도 중요했다. 그는 "아무것도 갖지 못했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마음, 어렵게 일군 가족과 삶을 잃고 싶지 않다는 욕망이 경희를 움직이는 힘이라고 해석했다"고 짚었다. 때문에 대사로 모든 감정을 설명하기보다 결정적인 순간의 표정과 반응으로 오래 묵은 감정을 드러내는 데 집중했다.
"경희에게는 소중한 아기가 아픈데도 제대로 케어할 수 없었던 시절이 있었다 보니 밑바닥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마음이 강박처럼 있었을 거예요. 그 오래 묵은 떨칠 수 없는 본질적인 공포를 짧게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대사도 없지만 반드시 한 번은 방점을 찍어야 하는 부분이었죠."
남편 재홍(김지훈 분)과의 관계를 바라보는 방식도 흥미로웠다. 김혜수는 경희가 가족 안에서 모든 것을 통제하는 인물이라고만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경제적으로 가정을 이끌거나 현실적인 판단을 맡는 대신 순수하고 해맑은 남편을 품고 가는 방식으로 가족을 유지한 거다. 그런 관계였기에 재홍의 배신은 단순히 외도라는 사건을 넘어 경희가 오랫동안 지켜온 삶 자체를 흔드는 일이 됐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함께 호흡을 맞춘 배우들에 대한 만족감도 컸다. 김혜수는 "조여정과는 오랜만에 다시 만났고, 김재철에게서는 이전 작품에서 보지 못했던 새로운 얼굴을 발견했다"고 돌이켰다.
또한 김지훈에 관해서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지훈 씨는 기존과 다른 영역의 연기를 준비해왔고 현장에서 상황을 빠르게 받아들이며 재홍이라는 인물을 완성했다. 특히 모니터에 재홍이 등장하면 현장 스태프들이 웃을 정도로 캐릭터의 순수함과 해맑음을 잘 살렸다"고 전했다.

김혜수는 이날 아직 공개되지 않은 회차가 많다 보니 계속해서 말을 아끼면서도, 연신 작품의 가장 큰 재미는 '예상 밖의 전개'라며 다음 이야기를 기대하게 만들었다. 특히 불륜으로 시작해 이를 기점으로 새로운 사건이 등장하고 인물들의 관계가 뒤집히지만, 그 과정이 억지스럽지 않고 충분히 설득력을 갖춘다는 점에서 작가들의 역량을 높이 평가했다.
"계속해서 무언가가 더 있어요.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아요. 그런데 그게 기가 막히게 말이 돼요. 그게 저희 드라마가 가진 신선한 재미인 것 같아요. 작가들의 역량이죠. 기대해도 좋을 것 같아요. 생각보다 많이 웃을 거예요."
오랜 시간 배우로 활동해온 김혜수지만 좋은 이야기를 만났을 때의 태도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매력적인 대본을 만나면 다시 처음처럼 몰입하고, 선택한 작품에서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몫을 다한다. 이번에도 캐릭터의 화려한 외피를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안에 숨겨진 불안과 욕망까지 들여다봤다.
작품이 공개된 뒤의 반응을 떠나 김혜수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결국 현장이다. 좋은 대본을 만났고, 그 이야기를 잘 전달하기 위해 충분히 준비했다면 자신의 역할은 끝났다는 듯 담담했다. 수많은 작품을 지나온 배우에게도 새로운 이야기는 여전히 배우를 움직이는 힘이고, 그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만큼은 처음과 다르지 않다.
"저는 현장이 다예요. 현장에서 정말 열심히 준비했고, 최선을 다해서 하고 끝냈어요. 그다음은 진짜 잘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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