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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F인터뷰] '허수아비' 감독·작가, 남겨진 이들을 위한 애도와 바람
"태주처럼 한 명이라도 잘못을 인정하고 사죄하길"
값진 결과 뒤 제작진의 진심…"하고 싶은 이야기는 후반부"


박준우 감독(왼쪽)과 이지현 작가가 ENA 월화드라마 '허수아비' 종영을 기념하며 작품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인터뷰를 마련했다. /ENA
박준우 감독(왼쪽)과 이지현 작가가 ENA 월화드라마 '허수아비' 종영을 기념하며 작품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인터뷰를 마련했다. /ENA

[더팩트ㅣ김샛별 기자] 한 시대의 비극을 마주하고 세상에 꺼내놓는 일은 창작자에게 늘 뼈아픈 숙제다. 그것이 차가운 현실에 발을 딛고 있는 실화라면 더더욱 그렇다. 대놓고 무거울 수 있는 소재를 선택한 '허수아비'가 우려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이들의 가슴에 먹먹한 여운을 남기며 ENA 역대 시청률 2위라는 값진 마침표를 찍었다. 드라마가 거둔 화려한 성적 뒤에는 외면하고 싶었던 사회적 메시지를 향해 끝까지 펜을 쥐고 메가폰을 잡았던 두 사람의 치열한 사투가 있었다.

박준우 감독과 이지현 작가는 최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더팩트>와 만나 ENA 월화드라마 '허수아비'(극본 이지현, 연출 박준우) 종영 기념 인터뷰를 진행했다. 각각 연출과 집필을 맡았던 두 사람은 5년 전 시작된 작품에 관해 다양한 이야기를 전했다.

지난달 26일 12부를 끝으로 막을 내린 '허수아비'는 연쇄살인사건의 진범을 수사하던 형사가 자신이 혐오하던 인물과 뜻밖의 공조 관계를 맺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1988년부터 2019년까지 무려 30년의 시간을 오가며 악연으로 얽힌 인물들의 진실을 추적한 작품은 묵직한 서스펜스와 인간 군상의 감정을 동시에 담으며 호평을 받았다.

'허수아비'의 시작점은 박 감독이 연출했던 전작 SBS '모범택시' 막바지 촬영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박 감독은 당시 실제 사건 피해자들을 깊이 배려하지 못하고 드라마의 극적인 소재로만 소비한다는 내용의 비판 기사를 접한 뒤 성찰을 겪었다.

"그 기사를 읽는데 '맞는 말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모범택시' 때도 마지막 에피소드는 공소시효에 관한 이야기였어요. 당시 공소시효 때문에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못한 사람들을 찾다 보니 윤성여 선생님과 고(故) 김현정 양의 아버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직접 찾아가 인터뷰를 진행했고 그 내용을 짧게 다큐멘터리로 엮어 드라마 말미에 붙였었죠. 그리고 두 분을 만나 뵙고 이춘재 사건 뒤에 가려진 예상 밖의 잔혹한 비극들을 알게 되면서 이를 본격적인 드라마로 풀어보고 싶었어요."(박준우 감독)

이후 박 감독은 곧바로 이지현 작가에게 대본 집필을 제안했다. 갑작스러운 제안이었지만 이 작가 역시 확고한 방향성을 가지고 대본 작업에 착수했다. 이 작가는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할 때부터 엔딩에 들어갈 '꿈 장면'을 머릿속에 명확히 그리고 있었다.

실제로 해당 장면은 '허수아비'의 마지막회를 채웠다. 이 작가는 "그 시절 연쇄살인이라는 끔찍한 비극 때문에 너무나 많은 분이 피해를 입었고 남겨진 가족들의 일상마저 송두리째 무너졌다. '만약 이 비극이 없었다면 저분들의 일상이 얼마나 소소하고 평범하며 온전했을까'를 꼭 표현하고 싶었다. 드라마를 통해 우리가 보낼 수 있는 최선의 애도이자 위로였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ENA 월화드라마 '허수아비' 제작진이 작품은 2021년부터 시작됐다며 다만 무거운 이야기로 인해 편성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고 고백했다. /ENA
ENA 월화드라마 '허수아비' 제작진이 작품은 2021년부터 시작됐다며 다만 무거운 이야기로 인해 편성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고 고백했다. /ENA

박 감독이 이 작품을 통해 가장 짚고 싶었던 핵심은 국가가 저지른 '이중 가해'와 이에 대한 반성의 부재였다. 윤성여 씨 사건을 모티브로 한 석만(백승환 분)과 현정 양 사건을 모티브로 한 혜진의 비극은 명백한 공권력의 남용이자 잘못이었기 때문이다. 윤성여 씨는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누명을 써 20년간 옥살이를 한 인물이며 현정 양은 연쇄살인에 희생됐으나 경찰의 시신 은폐로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알려진 피해자다.

"두 사람 모두 범인의 잔혹함뿐만 아니라 부실한 공권력에 의해 두 번의 피해를 입었다. 하지만 정작 국가가 저지른 일에 대해서는 누구 하나 충분한 반성을 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어 이 이야기를 꼭 해보고 싶었다. 즉 메시지와 결론은 처음부터 정해놓고 시작했다. 하지만 드라마화하는 과정에서 과연 대중이 이 무겁고 우울한 이야기를 좋아해 줄지 설득하는 과정이 큰 숙제였죠."(박준우 감독)

결국 두 사람은 초반부에는 범인의 정체를 추적하는 팽팽한 스릴러 장르물로 시청자들을 흡인력 있게 유입시킨 뒤 후반부에 묵직한 사회적 메시지를 던지는 구조를 선택했다. 박 감독은 "처음부터 사회고발적인 성격으로만 밀어붙였다면 지금처럼 많은 분이 찾아와 주지는 않으셨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좋은 취지의 기획이었지만 대중 매체로서 드라마가 거쳐야 할 현실적인 편성의 벽은 높았다. 대본을 돌릴 때마다 '메시지는 좋으나 너무 무겁고 우울하다'는 피드백과 함께 수많은 거절을 당하며 오랜 시간 표류해야 했던 '허수아비'다.

"편성이 계속 미뤄지면서 2024년 봄쯤 현실적인 선택으로 '좋은 놈과 나쁜 놈'의 대립 구도를 확실히 정립했어요. 사실 마음만 같아서는 주인공 태주(박해수 분)도 악인으로 밀고 나가고 마지막엔 죽이고 싶었죠. 그러나 작가님의 반대와 여러 의견으로 지금의 태주 시영(이희준 분)의 관계가 완성됐어요. 무엇보다 1988년도가 중요한 게 아니라 2019년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 시간을 액자식으로 구성하다 보니 작가님이 고칠 때마다 앞뒤를 다 수정하느라 엄청나게 고생을 많이 했어요."(박준우 감독)

박준우 감독과 이지현 작가가 ENA 월화드라마 '허수아비' 캐스팅 비하인드를 밝히며 작품을 웰메이드로 완성해준 배우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ENA
박준우 감독과 이지현 작가가 ENA 월화드라마 '허수아비' 캐스팅 비하인드를 밝히며 작품을 웰메이드로 완성해준 배우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ENA

드라마의 제목이자 가장 중요한 메타포인 '허수아비' 역시 치열한 논의 끝에 탄생했다. 박 감독은 당초 실제 사건 현장에 경찰이 심어둔 허수아비 속 '자수하지 않으면 사지가 썩어 죽는다'는 글귀를 그대로 제목으로 쓰자고 제안했으나 이 작가의 강력한 만류로 지금의 제목이 낙점됐다.

이 작가는 "처음에는 시대적 수사를 제대로 하지 못한 무능하고 껍데기뿐인 공권력을 빗대기 위한 아이디어로 '허수아비'를 떠올렸다"며 "대본을 쓰면서 의미가 점차 확장돼 범죄를 저지르기 위해 사람인 척 서 있는 인간 같지 않은 범인 용우(=기환, 정문성 분)의 시각적 설정과도 완벽히 맞물리게 됐다"고 설명했다.

'허수아비'의 성공에는 배우들의 압도적인 열연이 있었다. 2024년 여름 가장 먼저 캐스팅된 정문성을 비롯해 박해수 이희준 곽선영 등 주연 배우들은 30년의 세월을 넘나드는 고난도의 연기를 훌륭하게 소화해 냈다.

특히 대호 역을 맡은 류해준에 대한 칭찬도 아끼지 않았다. 박 감독은 "젊고 잘생긴 배우를 찾다가 전작을 보고 컨택했다. 성품이 너무 착해서 박해수와 배신하는 장면을 찍을 때 자꾸 울려고 하더라"며 "너 이렇게 약하게 하면 망한다고 더 야멸차고 야비하게 배신해야 한다고 주문했는데 결국 훌륭하게 해내줬다"고 말해 웃음을 안겼다.

ENA 월화드라마 '허수아비' 제작진이 제목을 '허수아비'로 결정한 이유와 작품을 통해 세상에 내놓고 싶었던 궁극적인 이야기와 메시지를 밝혔다. /ENA
ENA 월화드라마 '허수아비' 제작진이 제목을 '허수아비'로 결정한 이유와 작품을 통해 세상에 내놓고 싶었던 궁극적인 이야기와 메시지를 밝혔다. /ENA

실화를 모티브로 한 만큼 실제 사건의 당사자들과 유가족들의 반응은 제작진에게 무엇보다 조심스럽고 중요했다. 박 감독은 방송 이후 윤성여 선생님과 연락을 지속하고 있다고 밝혔다.

"윤성여 선생님께서는 드라마를 처음부터 끝까지 시청해 주시면서 오히려 '분량이 조금 더 길었으면 좋겠다'며 아쉬워하셨어요. 드라마 속 세세한 설정은 허구이지만 강압수사를 받았던 맥락이 잘 담겨 좋아해 주셨죠. 곽선영 씨의 사인을 부탁하셔서 전달해 드리기도 했어요.(웃음) 조만간 주인공들과 함께 청주에 내려가 식사를 대접하기로 했습니다. 반면 현정 양의 오빠분은 인터뷰 전에도 연락을 했는데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아 방송을 보지 못하셨다고 들었어요. 그 먹먹한 마음을 알기에 감히 방송을 보라고 강요할 수 없었습니다."(박준우 감독)

작품 속에서 차시영의 거짓 증언 이후 결국 공소시효 만료로 가해자들이 법적 처벌을 받지 않는 결말은 현실의 씁쓸함을 그대로 투영한 결과다. 실제 사건에서도 가해자들은 처벌받지 않았고 한 가족을 송두리째 망가뜨린 이들에 대한 인정이나 반성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실에서는 그 누구도 잘못을 인정하거나 사과하지 않았어요. 그래도 우리 극에서만큼은 '잘못을 저지른 누군가가 스스로 모든 것을 바로잡는 이야기'라는 판타지를 열어두고 싶었어요. 태주가 결점 없는 무결한 인물이 아니라, 과거의 과오가 있는 상태에서 이를 바로잡으려 했기에 더 큰 울림을 주길 바랐어요. 현실의 누군가도 이 드라마를 보고 이제라도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기를 바라는 저희의 작은 바람이었습니다."(이지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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