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연기' 떼고 극 안정적으로 이끌어
'착붙 캐릭터'에 노력 더해 배우로서 전환점 마련

연예계는 그 어떤 분야보다 수많은 이슈가 쏟아지고 또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는다. 뻔한 이야기 같아도 그 이면에 예상 외의 요소들이 있고, 그 안을 내밀히 들여다 보면 새롭게 보이는 것들도 있다. 이는 어떤 콘텐츠를 만들기까지의 과정, 결과물, 그리고 그걸 만드는 인물 모두에 해당한다. 그 '변수'들을 들여다 봤다. <편집자 주>
[더팩트 | 정병근 기자] 넷플릭스 시리즈 '월간남친'(극본 남궁도영, 연출 김정식)을 보기까지 고민이 많았다. 가장 큰 이유는 매 작품 혹평이 쏟아진 블랙핑크 지수의 연기력이다. 가뜩이나 필자와 다른 성별의 로망 실현 로맨틱 코미디라는 게 딱히 끌리지 않는 상황에서 '지수의 벽'은 매우 높았다. 결론부터 말하면 1회부터 그 벽은 무너져 내렸다.
'월간남친'은 글로벌 슈퍼스타 지수의 출연작으로 주목받는다. 그런 그의 존재감은 양면적이다. 블랙핑크로 대체불가 성과를 쌓은 가수로서야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배우로서는 의심만 가득하다. 지수가 나온 작품을 (직업상) 어쩔 수 없이 몇회씩이라도 봤지만, 그가 나오는 장면마다 인상이 찌푸려졌다. 대중의 반응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필자에게 (아마도 대다수에게) '배우 지수'는 확실히 불신의 대상이고, 온라인에 떠돌아다니는 '발연기 짤'에도 적극 공감해 왔다. 그런 이유로 1회를 시작하기도 어려웠고, 시청하기를 누르면서 언제든 중단하고 다른 작품으로 건너갈 마음의 준비가 돼있었다. 그런데 이틀 동안 10회를 다 봤다. 그것도 재미있게. 무엇보다 지수의 연기에 놀라며.
처음 몇 장면을 보면서 이전과 확연하게 달라진 자연스러운 연기에 놀랐지만, 곧 이전의 모습이 나올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일상과 직장 그리고 가상 세계를 오가는 다채로운 상황 속에서도 지수는 흔들림이 없었다. 그렇게 불신을 차츰 거둬들였고, 작품을 다 본 뒤 지수에 대해 남은 감상은 '천지개벽'이다.
기대치가 낮아서일 수도 있다. 그런 영향이 없을 순 없다. 그러나 확실한 건 몰입을 방해하지도 않았고, 지수가 연기한 서미래라는 캐릭터에 꽤 이입을 했다. 한 장면만은 제외하겠다. 작품 공개 후 소셜 미디어에 돌아다니는 그 장면이다. 후반부 병원에서 우는 신은 확실히 별로였다. 안정적이던 연기가 그 신에선 갈피를 못 잡는 듯 보였다.
지난 6일 전편 공개된 '월간남친'은 현실 생활에 지친 웹툰 PD 서미래가 가상 연애 시뮬레이션을 통해 연애를 구독하고 체험해보는 로망 실현 로맨틱 코미디다.

지수는 서미래를 연기했다. 직장에선 나름 인정을 받지만 더 특출난 PD의 존재에 다소 가려져 있고, 일상에선 반복된 생활에서 안정을 찾을 만큼 무료하고, 연애에선 과거의 상처가 다 아물지 않은 솔로다. 우연히 접한 가상 연애 서비스를 통해 다양한 연애와 설렘을 경험하고 결국 중요한 건 현실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캐릭터가 전체적으로 러블리하고 상큼하지만, 그것만으로 끌고갈 수 있는 작품의 서사가 아니다. 특히나 '월간남친'은 사실상 지수 원톱이다. 다채로운 면을 보여줘야 하는 지수의 연기가 단조롭거나 몇 장면만 연속으로 어색해도 서사 자체가 힘을 잃고 몰입도가 떨어지고 만다. 특히나 채널 돌릴 준비를 하고 있던 사람에겐 더 그렇다.
지수는 일상의 무료함과 직장에서의 전문성 그리고 깨발라하거나 욱하거나 좌절하거나 기뻐하는 감정들이 오가는 순간들에서 아주 자연스럽게 얼굴을 바꾼다.
지하철에서 아주머니에게 실수로 머리채를 잡힐 때의 언행과 표정은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지수의 얼마나 연기가 자연스러워졌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자신이 맡은 윂툰작가가 1위에 오르자 혼자 신나하다가 막춤을 추는 장면은 웬만하면 어색하기 마련인데 이 역시도 자연스럽게 웃음을 짓게 할 정도였다.
특히 자신의 동창과 결혼을 앞둔 전 남자친구와의 통화에서 매우 덤덤한 단 몇마디로 켜켜이 쌓인 지난 세월과 미련 등 복잡한 감정을 모두 집약해 드러내거나, 이별 신에서 화를 내다가 무기력해지는 과정은 지수가 단순히 연기를 '잘 해낸다'기보다 이제 캐릭터와 상황에 '오롯이 몰입하고 있다'는 걸 느끼게 해준다.
여기에 더해 소개팅 후 포장마차에서 혼자 술을 마시며 "내가 미쳤지"라며 한탄하는 톤과 표정, 술에 취한 상태에서 홍보용 입간판을 가상 연애 속 남자친구라 착각하고 좋아하는 모습, 현대인의 고독을 운운하면서 '월간남친' 구독료 결제를 정당화하는 장면 등을 보면, 지수는 누구와 붙지 않아도 혼자 흥미롭게 신을 끌고 갈 힘이 생겼다.

서미래는 가상 세계에 접속할 때마다 완전히 다른 콘셉트의 데이트를 경험한다. 거기서 만나는 남자들도 다양하다. 그때마다 평범한 대학생 복장부터 화려한 드레스까지 갈아입으며 그에 맞는 분위기로 남자 배우와 시너지를 낸다. 옷만 바꿔입는다고 분위기가 확 달라지는 건 아니다. 지수는 상대 캐릭터 및 상황에 따라 다른 이미지를 보여준다.
많은 남성 캐릭터와 호흡을 맞춰야 하는 상황에서 주인공이 흔들리면 삼천포로 간다. 지수는 억눌렀던 욕망을 실현하는 가상 세계 속 서미래와 '언젠가 변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현실의 서미래 사이에서 안정적으로 균형을 유지한다. 어느 순간 몰입해 인지를 하지 못하다가도 때때로 '정말 지수 맞나?'란 생각이 들 정도다.
지수가 작품에 자연스럽게 묻어난 데에는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무엇보다 서미래 캐릭터가 이전에 맡았던 작품 '설강화' '뉴토피아' 속에서의 모습보다 현실 속 모습과 가장 닮아서다. 여기에 발성과 호흡에서 이전보다 안정감이 생겼다.
김정식 감독은 제작발표회에서 "지수의 실제 모습은 현실 속 미래랑 똑같은 것 같다. 반대로 아티스트일 때의 화려한 모습은 가상 현실에서 필요했다"고 말했고, 지수 역시도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다. 특히 미래는 나와 연령대가 비슷한 친구다 보니까 고민과 헤쳐나가는 부분이 공감이 됐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해도 이 같은 변화와 성장은 노력 없이 설명하기 어렵다. 이 작품은 내레이션이 굉장히 많다. 발성과 목소리 톤에서 가장 많은 지적을 받았던 지수에게 어쩌면 가장 큰 난관이지만, 그는 이마저도 잘 극복해 목소리에 감정을 담아 전달한다. "노력이 재능을 이길 수 있다는 걸 믿었다"는 김정식 감독의 말은 과대포장이 아니다.
누구에게나 계기가 필요한데, 지수에게는 '착붙'('착 달라붙듯이 잘 어울린다'는 의미의 신조어) 캐릭터'에 노력이 빛을 발한 '월간남친'이 전환점이 될 전망이다. 물론 누군가는 여전히 지수의 연기에 몰입이 방해될 수도 있지만, 분명 누군가에겐 지수가 배우로 보이기 시작했을 것이고, 여기 그 한 사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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