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세대 밴드들도 보다 적극적인 활동 필요

'밴드붐'은 불완전하다. 최근 몇 년 사이 페스티벌을 중심으로 여러 밴드가 인기를 얻었지만, 페스티벌이 수가 늘어나면서 '라인업이 너무 천편일률적'이라는 지적이 반복되고 있다. 특히 한국 록의 최전성기를 이끈 80년대 1세대 메탈 밴드나 헤비니스 같은 특정 장르를 전문으로 하는 밴드는 좀처럼 페스티벌에서 보기 어렵다는 점은 '밴드붐은 일부 인기 밴드에 국한된 이야기'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게 한다. 이에 <더팩트>는 80년대를 이끈 로커와 마이너 장르 밴드들의 생각과 함께 최근 빠르게 늘고 있는 '보이밴드'의 목소리도 더불어 들어봤다. <편집자주>
[더팩트ㅣ최현정 기자] 2025년 6월 영국 사우스웨스트 잉글랜드 서머싯 필튼 농장에서 열린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GLASTONBURY FESTIVAL)의 토요일 공연은 1960년 대부터 활동을 이어오며 '그런지의 대부'로 불리는 닐 영(Neil Young)이 헤드라이너로 무대에 올랐다.
또 이 해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에는 2023년 재결합을 발표한 '브릿팝의 전설' 펄프(Pulp)가 27년 만에 다시 메인 스테이지에 출연해 공연을 펼쳤고, 1968년 데뷔한 영국의 전설적인 싱어송라이터 로드 스튜어트(Rod Stewart)도 메인 스테이지에 올라 페스티벌을 빛냈다.
다른 유명 페스티벌인 코첼라도 2025년 토요일 공연의 헤드라이너로 '네오 펑크의 주역'이자 40년 가까이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그린데이(Green Day)를 내세웠고, 전설적인 펑크 밴드 미스피츠(Misfits)가 메인 스테이지에 오르기도 했다. 심지어 코첼라는 미스피츠에게 사상 처음으로 공식 포스터에 아티스트 고유 로고의 사용을 허가해줘 '전설'을 대하는 예우를 보여줬다.
이처럼 해외 유명 페스티벌에서 오랜 역사와 명성, 특별한 상징성을 지닌 뮤지션이 헤드라이너나 그에 준하는 무대를 장식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또 관객들 역시 아낌없는 박수와 환호로 이들을 맞이하며 전설들의 무대에 기꺼이 리스펙트를 보내곤 한다.
그야말로 세대와 시대를 초월해 음악으로 연결되는 아름다운 장면이라 할 수 있지만, 국내 록페스티벌에서는 좀처럼 이런 광경을 찾아보기 어렵다. 현재 국내 록 페스티벌의 헤드라이너 자리는 해외에서 초청한 유명 밴드를 제외하면 사실상 몇몇 밴드가 독점하다시피 맡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록 음악의 근간은 70년대와 80년대에 집중돼 있다. 1960년대가 '한국 록의 대부'로 불리는 신중현을 중심으로 록 음악이 태동하는 시기였다면 70년대에는 신중현과 엽전들, 산울림, 송골매 등이, 80년대는 시나위, 백두산, 부활, 들국화, 무한궤도 등이 인기를 얻으며 록 음악과 밴드 음악이 대중음악계에 정착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한국 록의 근간을 이루는 이들의 모습은 거의 모든 페스티벌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현재 한국 밴드 시장은 페스티벌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 많게는 70팀 이상의 밴드가 무대에 오르고 수만 명의 관객이 몰려드는 페스티벌의 특성상, 이곳에서 공연을 하면서 자신의 음악을 알리거나 새로운 팬을 만드는 사례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페스티벌 무대에 1세대 밴드들이 출연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한국 록의 근본'을 후대에게 전하는 자리가 될 수 있어 그 의미가 작지 않다.
물론 현시점에서 가장 인기 있는 아티스트가 헤드라이너를 맡는 것도 당연하다. 또 지난해 부산국제록페스티벌에 출연한 윤수일밴드나 메들리메들리 페스티벌에 출연한 김창완밴드처럼 드물지만 1세대 밴드가 출연한 사례도 존재한다.
하지만 지난해 국내에서 개최된 록, 인디, 밴드 중심의 페스티벌이 50여 개에 달한다. 개최된 페스티벌의 수와 여기에 출연한 아티스트의 수를 고려하면 고작 한두 개의 사례만으로 '한국 록을 상징하는 전설을 향한 예우를 갖췄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한국 록의 뿌리'에 해당하는 1세대 록 밴드를 페스티벌에서 만나기 어려운 이유는 간단하다. '돈'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에서 개최되는 페스티벌은 대부분 자본의 논리에 따라 운영되고 있으며, 대부분의 페스티벌이 인기 있는 밴드나 뮤지션의 출연을 바라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라인업이 대동소이해진다는 것이다.
공연업계 관계자 A씨는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페스티벌의 섭외 담당자는 밴드를 밴드명이나 음악으로 보는 게 아니라 티켓 매수로 본다. 어떤 밴드가 티켓을 몇 장이나 팔 수 있는지를 리스트화해서 쭉 꿰고 있는 것이다"라며 "어쨌든 수익이 나야 운영을 할 수 있으니 자본주의 논리를 배제하기 쉽지 않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몇 명이나 찾을지 모르는 옛날 밴드를 섭외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현재 직접 페스티벌을 주최하고 있는 회사 사람들 말도 크게 다르지 않다. 페스티벌을 운영하고 있는 회사의 한 관계자는 "결국 문제는 돈이다. 모두가 더 많은 티켓 세일즈가 되는 아티스트를 섭외하려고 하니 라인업이 크게 달라질 수가 없다. 그나마 지자체의 지원을 받는 인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이나 부산 국제 락 페스티벌은 라인업 구성에 여유가 있겠지만 그 외에는 결국 '수익'이라는 현실을 외면하기 어렵다"고 털어놓았다.
다만 A씨는 수익성과 별개로 업계의 '리스펙트 부족'과 1세대 밴드들의 안일한 태도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A씨는 "현재 페스티벌 업계가 1세대로 분류되는 밴드에 존중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겉으로는 수익 악화나 티켓 판매 부진을 이유로 내세우지만 애초에 고려 대상으로도 생각하지 않은 업체가 대부분일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그는 "그래서 1세대 밴드들도 본인들이 더 적극적으로 음악 활동도 하고 페스티벌 출연 의사를 밝혀야 하는데 그런 모습이 부족하다. 더군다나 방송이나 예능에서 '보컬리스트'로 이미지 소비가 되면서 록 밴드라는 인식 자체가 희미해진 경향도 있다"며 "크라잉넛이나 노브레인이 여전히 록 밴드의 대표주자로 꼽히고 페스티벌에 단골로 불리는 데에는 꾸준히 활동한 게 크다"고 덧붙였다.
A씨의 이같은 지적은 1세대 밴드도 일부 공감하고 있는 내용이다. 예를 들어 부활, 시나위, 작은하늘 등의 보컬을 두루 경험한 김종서가 솔로 데뷔한 해는 1992년이고 크라잉넛이 드럭에서 활동을 시작한 것은 1995년이다. 불과 3년 차이임에도 사람들은 김종서는 과거 가수로 크라잉넛은 현역 가수로 인식한다.
이번 취재를 위해 용산의 모처에서 직접 만난 김종서는 "활동을 쉰 게 꽤 길었다. 나는 한다고 했는데 결과적으로 오래 쉬었던 게 됐다. 예전에 공연을 조금 오랫동안 안 하다가 한 번 했는데 '이렇게 안 올 수가 있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참패를 했다. 그때 데미지가 커서 한동안 공연을 못 했다"고 말했다.

이는 비단 김종서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대부분의 1세대 밴드가 겪고 있는 일이다. 부활의 경우 핵심 멤버 김태원의 투병으로 긴 공백기를 가져야 했고, 시나위도 2015년 이후 사실상 활동 중단 상태다. 또 백두산, 들국화 등도 특정 멤버 개인이 예능 등에서 활동할 뿐 밴드로서의 재결합이나 활동은 희박한 상황이다. 더군다나 팀의 핵심 멤버가 이미 세상을 떠난 경우도 많다.
이처럼 활동하지 않은 시기가 길어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기억에서 밀려나게 된 지금 상황을 자초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종서도 이를 인정하며 보다 적극적인 음악 활동에 나설 것을 예고했다. 김종서는 "당시 음반 실적도 안 좋고 다른 일을 많이 하느라 더 의기소침했던 거 같다. 콘서트에 트라우마가 생겨서 계속 못 하다가 이상우가 옴니버스 공연을 같이하자고 해서 나갔는데 사람이 정말 많이 왔다. 그 많은 사람이 열광하는 것을 보며 잠자고 있던 세포들이 살아난 느낌이었다. 정말 큰 치료가 됐고 그때부터 다시 공연하는 김종서가 되자고 다짐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지난해 콘서트를 하는데 오랜 팬이 '공연하는지 몰랐다'고 하더라. 그건 내 책임이다. 그래서 이제 적극적인 프로모션을 통해서 활동을 많이 알리려고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사실 김종서는 한국 록 음악사에 여러 가지 전설적인 기록을 남긴 '역사적인 뮤지션'이다. 80년대를 풍미한 시나위와 부활, 작은하늘을 모두 거친 유일한 인물이며 1992년 솔로로 데뷔해서는 '대답 없는 너'로 록 장르 최초 음악방송 1위에 오르는 업적을 남겼다.
김종서의 1집 'REHTONA(레토나)'와 '겨울비'가 수록된 2집 'PETSDN2(세컨드 스텝)'은 모두 판매량 100만 장을 넘겼으며 이 앨범의 성공으로 '록 발라드'라는 말을 대중화시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신중현과 김창완 등이 한국 록의 선구자라면 김종서는 한국 록의 대중화를 이끈 개척자라고 할 수 있다. 국내 음악계를 통틀어도 '상징성'의 측면에서 김종서를 능가할 로커는 손에 꼽는다.
때문에 김종서는 한국 최초의 국제 록 페스티벌인 '트라이포트 록페스티벌'(1999) 라인업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김종서는 여기에 연연하지 않고 천천히 자신의 입지를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이다.
김종서는 "예전엔 잠실주경기장이나 세종문화회관처럼 크고 의미 있는 무대도 많이 서봤다. 지금도 큰 무대에 서고 싶은 욕심이 왜 없겠냐. 공연장이 작아진 건 내가 그동안 공연을 많이 안 했기 때문"이라며 "2년 전부터 새로운 시작을 하자고 결심했고 욕심내지 말고 천천히 입소문을 내는 것을 목표로 잡았다. 가수가 무대에 서는 것만큼 행복한 게 또 뭐가 있겠나. 이렇게 욕심 안 내고 꾸준히 가면서 소식을 알리면 내년에는 또 상황이 달라지지 않을까 싶다"고 밝혔다.
그 말처럼 김종서는 2024년부터 '모두의 김종서'라는 이름으로 단독콘서트를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약 500석 내외의 소형 공연이지만 꾸준히, 자주 공연하는 것을 첫 번째 목표로 잡았다.
또 그는 4일 자신의 대표곡인 '에필로그'를 2026년 버전으로 새롭게 녹음해 발표하기도 했고, 한 광고에서는 유머러스하게 망가진 모습을 보여줘 인기를 끌기도 했다.
김종서는 "광고는 조금 무거웠던 이미지를 가볍게 툭 털어내서 좋은 것 같다. 친근감 있게 받아들여져서 좋다"며 "그리고 '에필로그'는 전성기 시절에도 라이브로 부르기 어려운 곡이었는데 올해 새로운 도전의 의미를 담아서 원키로 다시 불렀다"고 말했다.
이러한 활동 덕분인지 김종서는 2025년에 '양천 락페스티벌'과 2026년 '경록절 클래식' 등에 출연하면서 2007년 부산국제락페스티벌 이후 오랜만에 페스티벌 형식의 무대에 다시 올랐다.

김종서는 "크라잉넛과 만났는데 개인적으로 이들을 굉장히 좋아한다. 친구들끼리 모여서 밴드를 결성하고 한결같이 활동하고 있다. 후배지만 참 존경스럽다. 이번 '경록절'에 연락받고 출연하면서 나 개인적으로 많이 친해졌다고 생각한다"며 웃었다.
특히 그는 "한경록이 '경록절'로 우리 세대와 요즘 세대를 연결한 것이다. 그런 면에서 경록이가 대단한 역할을 하고 있다. 덕분에 나도 터치드, 비비와 같이 무대를 할 수 있었다"고 엄지를 치켜들었다.
더불어 김종서는 '경록절'의 사례를 계기로 역사와 전통, 뿌리를 조명하는 사례가 더 늘기를 바랐다.
"물론 페스티벌도 경제의 논리기 때문에 이를 무시할 수는 없다. 그래도 꾸준히 전통과 명맥을 잇는 사람들을 상기해 줬으면 좋겠다"고 입을 연 김종서는 "사실 음악뿐만 아니라 모든 문화에서 과거 기반을 다졌던 분들을 상기시키는 태도가 부족한 감이 있다. 전통에 대한 긍지, 자부심 등이 좀 더 존중받았으면 한다. 트렌드와 유행을 빨리 취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뿌리 없는 가지는 없다. 전통의 가치가 좀 더 존중받고 단단하게 아래에서 받쳐줘야 한다"고 당부했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김종서는 지금의 페스티벌이나 '밴드붐'을 비판하려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그는 페스티벌이 늘고 밴드붐이 일어나는 현재 상황을 매우 긍정적으로 보고 기뻐했다.
김종서는 "록 밴드들이 많아지고 페스티벌 늘어나는 것을 보면 내 일같이 기쁘다. 또 예전에는 밴드들의 음악색이 다 비슷했는데 이제는 각양각색의 밴드가 많아져서 더 기쁘다. 이렇게 다양해지면 토대가 탄탄해지는 거다. 이제는 '밴드붐'이 진짜로 오래갈 것 같아서 너무 좋다"고 말했다.
또 그는 그렇기 때문에 페스티벌을 비롯한 공연 산업이 발전하고 밴드들에게 실질적인 수익이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종서는 "이제 밴드가 한국 음악 산업의 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힘들고 돈을 못 벌면 다시 죽어버리게 된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정당한 보상이 뒤따르지 않으면 열정이 식어버리니까 그렇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다행히 실리카겔이 KSPO돔에 입성하는 등 성공 사례가 계속 나오고 있다. 이러면 동력이 계속 생기는 거다"라고 덧붙였다.
그리고 김종서는 이 '성공 사례'를 위해서는 밴드들이 전략과 꾸준함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종서는 "아직 네임드가 아닌 밴드는 어쩔 수 없이 자기가 노력해서 뚫어야 한다. 우리가 아는 네임드 밴드인 쏜애플, 실리카겔 이런 친구들도 결국 다 뚫었다"며 "우리나라 시장이 작다. 인구가 두 배만 돼도 소화가 되는데 파이가 작아서 그렇다. 그래서 전략과 꾸준함이 필요하다. 실리카겔이 꾸준함의 성공 사례라면 전략의 성공을 보여준 친구가 QWER이다. 그리고 전략과 꾸준함을 모두 가진 게 DAY6(데이식스)다"라고 설명했다.

더불어 김종서는 "후배들에게 바라는 건 없다. 지금은 모든 게 다 좋아졌다. 역사를 새롭게 쓰고 있고 두각을 드러낸 밴드들에게 박수 쳐주고 싶다. 선배들이 못 한 걸 해줘서 고맙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비록 김종서는 '모든 것이 다 좋아졌다'고 하지면 여전히 상대적으로 사람들에게 덜 주목받는 장르도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헤비니스 계열이 그렇다.
이에 헤비니스 신에서는 현재 밴드붐과 페스티벌붐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하드록 밴드 해리빅버튼의 프런트맨 이성수와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계속>
[밴드붐은 없다②] 대한민국에서 하드록 밴드가 살아남는 법
[밴드붐은 없다③] '아이돌 밴드' 꼬리표 떼기
laugardagr@tf.co.kr
[연예부 | ssent@tf.co.kr]
- 발로 뛰는 <더팩트>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 · 카카오톡: '더팩트제보' 검색
- · 이메일: jebo@tf.co.kr
- · 뉴스 홈페이지: https://talk.tf.co.kr/bbs/report/write
- · 네이버 메인 더팩트 구독하고 [특종보자→]
- · 그곳이 알고싶냐? [영상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