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박지윤 기자] 작품의 배경과 소재는 다소 낯설고 거리감이 느껴지지만, 그 안에는 세월을 뛰어넘고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위로하는 이야기가 담긴 '렌트'가 돌아왔다.
뮤지컬 '렌트'는 작곡가 지아코모 푸치니의 오페라 '라보엠(La Bohême)'을 현대화한 것으로, 1990년대 뉴욕 이스트 빌리지에 모여 사는 예술가들의 치열한 삶을 그린 작품이다.
공연은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 다큐멘터리 제작자이자 스토리텔러 마크의 등장으로 시작된다. 그는 죽기 전에 마지막 곡을 남기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가난한 작곡가 로저와 함께 뉴욕 이스트 빌리지에 있는 낡은 다락방에서 지내지만, 체납된 집세 때문에 전기와 난방이 모두 끊긴 상태로 연말을 맞게 된다.
두 사람은 에이즈 환자이자 오직 오늘을 위해 사는 강인함을 가진 클럽 댄서 미미부터 거리의 드러머이자 에이즈 환자인 엔젤과 컴퓨터 천재이자 대학 강사인 콜린, 자유분방한 행위예술가 모린 그리고 꼼꼼하고 치밀한 성격의 공익 변호사 조앤까지, 저마다의 꿈을 가진 개성 가득한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
이 가운데 모린은 건물을 철거하려는 부당한 세입자 배니에 맞서는 퍼포먼스 공연을 선보이고, 친구들도 삶의 터전을 잃지 않기 위해 이러한 반대 시위에 동참한다. 이렇게 함께 또 따로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청년들은 갈등과 이별, 죽음과 화해가 반복되는 1년 동안의 뜨거운 삶을 통해 '오늘을 살아라'라는 메시지를 깨닫는다.

'라보엠'은 프랑스어로 보헤미안이라는 뜻으로, 집시를 의미하는 말이다. 19세기 후반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방랑자 자유분방한 예술가 문학가를 일컫는다.
그리고 창작자 조나단 라슨은 자신이 직접 경험한 시대의 불안과 열정을 바탕으로, 로저와 미미, 엔젤과 콜린, 모린과 조앤이라는 세 커플을 통해 1990년대 사회의 기득권이 외면했던 동성애 에이즈 마약 중독 등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며 그 시대 청춘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공동체 의식과 사랑을 밀도 있게 담아냈다.
1996년 브로드웨이에서 첫선을 보인 '렌트'는 젊은 세대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으며 청춘을 대변하는 작품으로 자리 잡았고, 초연 이후 12년간 5123회 공연 및 전 세계 50개국 26개 언어로 무대화되며 '세계를 사로잡은 록 뮤지컬'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다만 조나단 라슨은 개막 하루 전 대동맥 박리로 세상을 떠나 이를 보지 못했다.
국내에서도 2000년 초연 이후 청춘의 상징 같은 작품이 된 '렌트'는 이번에 열 번째 시즌을 맞이한 만큼, 기존 멤버들과 새롭게 합류한 배우들로 조화로운 앙상블을 이루며 이전보다 더 열정적이고 다채로운 무대로 관객들을 매료시키고 있다.
그동안 '인간의 법정' '삼총사' 등 꾸준한 작품활동을 통해 뮤지컬 배우로서 탄탄한 입지를 다진 SF9(에스에프나인) 유태양은 기타를 들고 무대에 등장한 첫 순간부터 로저 그 자체로 온전히 존재한다. 그는 한층 더 탄탄해진 가창력과 명확한 가사 전달력 위에 자신이 해석한 로저의 매력과 복잡다단한 내면을 켜켜이 쌓아 올리고, 감정이 폭발하는 장면까지 자연스럽게 그려내며 단 한 순간도 긴장감과 집중력을 잃지 않는 열연으로 관객들의 몰입도를 한껏 끌어올린다.
미미로 분한 솔지는 EXID(이엑스아이디)의 메인보컬로서 활약해 온 만큼, 이번 작품에서도 흔들림 없는 가창력과 힘 있는 고음으로 여러 넘버를 무리 없이 소화해 낸다. 또한 안정적인 연기력까지 보여주며 뮤지컬 배우로서 앞으로 어떤 행보를 펼칠지에 관한 기대감도 충분히 심어준다.

김려원은 다른 배우들에 비해 다소 늦게 모습을 드러냄에도 불구하고 등장하자마자 시선을 단숨에 가져가며 남다른 무대 장악력을 뽐낸다. 그는 인물의 도발적이면서도 자유로운 에너지를 통통 튀지만 과하지 않게 그려내고, 다른 배우들과도 신선한 케미를 형성하며 대체 불가한 존재감을 발산한다. 여기에 진태화 황건하 황순종 정다희 구준모 등도 제 몫을 다 해내며 극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렌트'를 본 적은 없어도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본 곡이자 작품을 관통하는 메시지가 담긴, 1년을 분 단위로 나눈 '52만 5600분의 귀한 시간들'이라는 가사로 시작하는 'Seasons of love(시즌스 오브 러브)'를 비롯해 기타 리프와 빠른 비트가 인상적인 'Rent(렌트)', 로저와 미미의 아슬아슬한 감정선이 펼쳐지는 'Light My Candle(라이트 마이 캔들)', 엔젤의 정체성 그 자체인 'Today 4 U(투데이 포 유)' 등 청춘들의 분노 사랑 자유 상처 등 여러 감정이 담긴 생동감 있는 넘버들은 눈과 귀를 더욱 즐겁게 한다.
이렇게 록 R&B 탱고 발라드 가스펠 등 다양한 장르를 혼합한 송스루(Sung-through, 대사 없이 노래로만 진행하는) 형식인 '렌트'는 매 순간 불안하고 흔들리지만 그럼에도 꿋꿋하게 목소리를 내고 오늘에 집중하는 청춘의 모습과 서로를 의지하고 지지하며 만들어가는 공동체의 따뜻함으로 관객들에게 큰 위로와 용기를 선물한다. 1990년대를 배경으로 하지만,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청춘들이 캐릭터들에 공감할 수 있다는 지점이 '렌트'가 오랫동안 사랑받고 있는 이유임을 다시금 느끼게 한다.
다만 어떠한 정보 없이 바로 '렌트'의 세계에 뛰어든다면 자극적인 소재와 대사에 다소 당황하거나 초반에 쏟아지는 여러 인물의 서사와 이야기가 버겁게 느껴질 수도 있으니 어느 정도는 찾아보고 가는 걸 추천 한다. 내년 2월 22일까지 코엑스아티움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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