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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일홍의 클로즈업] '69년 대배우' 이순재가 남긴 '연기 인생'
'스타 보다 배우' 택한 69년 품격, "인기에 우쭐하지 말라"
'연기란 무엇인가' 끝없는 질문...직업 윤리와 예술의 기준


이순재는 50~60년대 TV 브라운관이 대중에게 막 보급되던 시절부터 연극·라디오·TV를 오가며 열정을 쏟은 주역이다. 69년의 장구한 세월, '연기란 무엇인가'를 끝없이 탐구해온 한국 대중문화의 교과서였다. /더팩트 DB
이순재는 50~60년대 TV 브라운관이 대중에게 막 보급되던 시절부터 연극·라디오·TV를 오가며 열정을 쏟은 주역이다. 69년의 장구한 세월, '연기란 무엇인가'를 끝없이 탐구해온 한국 대중문화의 교과서였다. /더팩트 DB

[더팩트ㅣ강일홍 기자] 대한민국 TV 드라마 역사의 근원을 이야기할 때, 배우 이순재의 이름을 빼놓고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그는 50~60년대 TV 브라운관이 대중에게 막 보급되던 시절부터 연극·라디오·TV를 오가며 열정을 쏟은 주역이다. 시대가 요구하는 '연기란 무엇인가'를 끝없이 탐구해온 한국 대중문화의 살아 있는 교과서였다.

56년 첫 데뷔 이후 69년의 장구한 세월, 한 세대의 시간을 훌쩍 넘긴, 이 압도적 숫자가 말해주듯 그의 커리어는 경력이 아니라 역사였다. 그의 연기 활동은 단순한 출연이 아니라 한국 드라마 예술의 진화 과정 그 자체라고 말할 수 있다.

이순재의 연기에는 몇 가지 특징적인 결이 있다. 첫째는 사실성에 대한 집요한 탐구다. 그는 대사를 외우는 것을 연기의 출발점이 아니라, '의미를 구성해가는 준비 과정'이라고 봤다. 그래서 그는 후배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대사는 누구나 외울 수 있다. 그러나 작품을 올려주는 연기는, 연구 없이는 절대 나오지 않는다."

이 말은 단순한 조언이 아니라 그의 평생 연기론의 핵심이었다. 연기란 태도이자 사고 방식이며, 매 작품마다 다시 태어나는 창조 행위라는 믿음이 그의 중심에 있었다.

단기간의 성과, 빠른 인지도, 스타 시스템 중심 산업 구조 속에서도 이순재는 꾸준함·겸손·인내라는 오래된 가치가 얼마나 강력한 힘을 갖는지 몸으로 증명했다. 빈소에는 후배 연기자들의 조화가 줄을 이었다. /사진공동취재단

"인기에 우쭐하지 말라" 역할 대하는 마음가짐과 태도 중시

둘째는 역할을 대하는 겸손함이다. 그는 스타라는 호칭보다 '배우'라는 말을 훨씬 소중히 여겼다. 한 작품에서 주연이든 단역이든, 역할의 크기는 본질이 아니라 태도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 이순재는 오히려 후배들의 유명세가 커질수록 '인기에 우쭐하지 마라'는 조언을 자주 남겼다.

"연예인은 특권층이 아니다. 대중이 없으면 우리도 없다. 벼슬이라 착각하지 마라."

그의 엄격한 발언들은 때로는 따끔한 꾸짖음처럼 들렸지만, 결국 그 안에는 '후배들이 더 오래, 더 단단하게 연기자로 살아가길 바라는 애정어린 마음'이 담겨 있었다.

그는 '나이를 이긴 배우'가 아니라, 나이를 연기의 깊이로 승화한 배우였다. 사진은 지난 25일 91세 일기로 타계한 직후 서울 송파구 풍납동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인의 빈소 모습. /사진공동취재단
그는 '나이를 이긴 배우'가 아니라, 나이를 연기의 깊이로 승화한 배우였다. 사진은 지난 25일 91세 일기로 타계한 직후 서울 송파구 풍납동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인의 빈소 모습. /사진공동취재단

나이를 이긴 배우 아닌 나이를 '연기의 깊이'로 승화한 배우

그가 걸어온 길을 보면, 노년에도 왜 그만의 특별한 존재감을 잃지 않았는지 알 수 있다. 80대 후반에 접어든 뒤에도 그는 작품마다 캐릭터에 맞는 체력 관리와 자료 수집을 꾸준히 이어갔다. 촬영 현장에서의 노련한 짜임새, 감정의 호흡, 디테일을 놓치지 않는 집중력은 젊은 배우들을 압도했다. 그는 '나이를 이긴 배우'가 아니라, 나이를 연기의 깊이로 승화한 배우였다.

특히 현대극과 사극을 넘나들며 선보인 역할의 폭은 그가 왜 국민배우로 불리는지 설명해준다. '허준'의 유의태 스승, '이산'의 노론 영수, '거침없이 하이킥'의 까칠하지만 인간미 넘치는 할아버지, 그리고 최근작들에 이르기까지, 그는 모든 캐릭터를 자기 방식으로 해석해 시대를 아우르는 보편적 감정으로 확장시켰다.

주목해야 할 부분은 또 있다. 바로 그의 직업윤리다. 이순재는 연기를 단순한 직업이 아니라 '책임이 필요한 공적 영역'이라고 믿었다. 드라마가 대중에게 미치는 영향력, 배우가 사회적으로 가지는 상징성, 그리고 예술가로서 창작에 대한 의무를 누구보다 진지하게 여겼다.

그는 후배들에게 '연기는 결국 사람이 사람을 이해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 말은 연기라는 행위의 철학적 본질을 정확히 짚은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를 상징하는 대배우의 깊이는 바로 그의 삶의 깊이와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단기간의 성과, 빠른 인지도, 스타 시스템 중심 산업 구조 속에서도 이순재는 꾸준함·겸손·인내라는 오래된 가치가 얼마나 강력한 힘을 갖는지 몸으로 증명했다. 빈소에는 후배 연기자들의 조화가 줄을 이었다. /사진공동취재단
단기간의 성과, 빠른 인지도, 스타 시스템 중심 산업 구조 속에서도 이순재는 꾸준함·겸손·인내라는 오래된 가치가 얼마나 강력한 힘을 갖는지 몸으로 증명했다. 빈소에는 후배 연기자들의 조화가 줄을 이었다. /사진공동취재단

스타시스템 중심 연예산업 구조속 꾸준함·겸손·인내 가치 입증

그가 남긴 발언과 태도, 그리고 수십 년간 보여준 활동은 오늘의 연예계에도 변함없이 유효하다. 단기간의 성과, 빠른 인지도, 스타 시스템 중심 산업 구조 속에서도 이순재는 꾸준함·연구·겸손·인내라는 오래된 가치가 얼마나 강력한 힘을 갖는지 몸으로 증명했다. 이러한 기준은 단지 '좋은 배우'의 조건을 넘어, 예술가가 스스로를 지탱하는 윤리 규범으로 작동한다.

그가 던진 질문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연기는 창조인가, 반복인가? 배우는 무엇을 연구해야 하는가? 대중 앞에서 예술가의 태도란 무엇인가? 이순재는 직접 정답을 제시하기보다는, 스스로 답을 찾도록 길을 열어주는 '장인'이었다.

'연기자는 나이를 먹어도 늙지 않는다.' 이 말이 그가 떠난 뒤 유독 소중한 가르침으로 더 와닿는 것은 작품 안에서, 관객 안에, 연구하는 태도 안에서 살아 있기 때문이다.

69년간 현역으로 살아온 그의 시간은 한 사람의 커리어라기보다, 한국 드라마와 연극, 방송예술의 지층을 이루는 거대한 축적물이라고 할 수 있다. 후배들이 현장에서 그를 보며 배운 것은 기술이 아니라 태도였고, 그 태도는 영원한 기준점으로 남게 됐다. '대배우 이순재'의 가르침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eel@tf.co.kr

단기간의 성과, 빠른 인지도, 스타 시스템 중심 산업 구조 속에서도 이순재는 꾸준함·겸손·인내라는 오래된 가치가 얼마나 강력한 힘을 갖는지 몸으로 증명했다. 빈소에는 후배 연기자들의 조화가 줄을 이었다.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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