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식 코미디 개척자 기인으로 살고, 후배들에겐 스승

[더팩트ㅣ강일홍 기자] 2025년 9월 25일 밤 9시 5분, 한국 방송 코미디의 큰 별 전유성이 세상을 떠났다. 전유성은 입원해 있던 전북대 병원에서 생을 마감했다. 향년 76세. ([단독]전유성 사망, 25일 밤 9시 5분께 전북대병원...코미디 거목)
"우주 영겁의 시간, 어차피 한번은 떠나게 되는 인생, 며칠을 더 살고 몇달을 더 사는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
그는 "우주의 영겁의 시간 속에서 인간의 삶은 어차피 언젠가 끝나는 것"이라며 연명치료를 거부했고, 딸과 충분한 대화를 나눈 뒤 담담히 세상을 떠났다. 그는 마지막 모습조차 기인(奇人)답고 의연했다.
한국방송코미디언협회 관계자는 26일 오전 "전날 밤 9시 5분경 유일한 가족인 딸이 지켜보는 가운데 세상을 떠났다"면서 "이미 마음의 각오는 했지만, 너무나 안타깝고 슬프다"고 말했다.
유족과 코미디협회는 조문객들의 편의와 공간적 이유를 들어 이날 새벽 전북대병원에서 서울아산병원(장례식장 1호실)으로 옮겨 빈소를 마련했다.
전유성은 1970년대 초반 MBC 라디오와 텔레비전을 통해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 당시 한국 코미디는 주로 상황극 중심으로, 단순한 해학과 풍자에 머물러 있었다. 그는 다른 길을 택했다.

언어유희, 기발한 발상, 예상치 못한 반전으로 웃음을 창조하는 독창적인 스타일을 도입했다. 특히 '일요일 밤의 대행진', '쇼 비디오 자키' 등에서 보여준 그의 감각은 신선했고, 기존 코미디 문법을 깨부수는 실험 정신이 돋보였다.
그의 기발한 아이디어는 방송사 PD들이 "전유성이 있으면 프로그램의 색깔이 달라진다"고 말할 정도였다.
단순히 무대에 서는 개그맨이 아니라, 프로그램 전체를 기획하고 연출하며 후배들을 끌어올리는 제작자적 기질도 강했다. 이 때문에 동료들은 그를 '아이디어 뱅크'로 불렀다.
전유성의 삶은 평범하지 않았다. 그는 세속적 성공이나 물질적 풍요에 크게 연연하지 않았다. 방송가에서는 그가 돌연 프로그램을 떠나거나, 전성기에도 지방으로 내려가 공연을 벌이는 등 예상치 못한 행보를 자주 보였다.
경북 청도에 자리 잡고 닭을 키우며 지역 축제를 기획하기도 했는데, '코미디 철가방', '코미디 시장' 같은 행사를 통해 대중과 소통했다. 이 시도를 두고 사람들은 '전유성은 늘 자기만의 리듬으로 사는 사람'이라고 평했다.

그의 언행은 종종 괴짜로 불릴 만큼 독특했다. 하지만 그 속에는 사회와 대중을 향한 깊은 애정이 숨어 있었다. 그는 "코미디는 사람을 웃게 하는 게 아니라, 웃음 속에서 삶을 다시 보게 만드는 것"이라고 말하곤 했다. 단순히 웃음을 주는 것이 아니라, 생각할 거리를 남기는 코미디를 추구했던 것이다.
전유성의 진짜 업적은 후배 양성에 있다. 그는 김미화, 이경규, 김국진, 강호동, 이윤석 등 수많은 스타 방송인들의 길을 열어준 멘토였다. 방송 제작 현장에서만이 아니라, 사석에서도 후배들에게 끊임없이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다.
전유성은 후배들에게 정답을 알려주지 않았다. 대신 엉뚱한 질문을 던져 스스로 답을 찾게 했고, 그 과정에서 개성 넘치는 개그맨들이 탄생했다. 그는 "웃음에는 정석이 없다. 각자가 자기만의 방식으로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흥미로운 점은 전유성이 늘 대중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살았다는 사실이다. 그는 미디어에 얼굴을 자주 내비치지 않았고, 대중적 인기를 적극적으로 소비하지 않았다. 이는 그가 자유로운 영혼이었음을 보여준다.
화려한 방송 무대에서 잠시 물러나 지방 소도시에서 공연을 하고, 소박한 일상을 즐기며 살았다. 하지만 그 거리는 무관심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만의 방식으로 대중과 더 깊게 연결되려는 태도였다.

그는 시골 장터 공연에서 아이들과 함께 웃었고, 지역 주민들과 어울리며 소통했다. "웃음은 방송국 안에만 있는 게 아니라, 삶의 구석구석에 있다"는 그의 철학은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세상과 이별하는 순간에도 그는 특유의 기개를 보였다. 딸에게 남긴 말처럼, 생과 사를 초월한 철학적 태도는 그가 평생 추구해온 자유와 의연함을 그대로 드러낸다. 산소호흡기를 달고 있으면서도 지인들과 통화를 이어가고, 연명치료 대신 대화와 나눔을 택한 선택은 그의 삶의 방식과 닮아 있다.
그의 죽음을 접한 동료와 후배들은 "방송 코미디계에서 전유성이 차지하는 비중은 가늠할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그가 뿌려놓은 아이디어, 가르침, 정신은 여전히 후배 개그맨들과 방송인들의 삶 속에 살아 있다.
전유성은 화려한 무대의 중심에 오래 서 있지 않았지만, 한국 코미디의 궤적은 그의 손길에서 크게 바뀌었다. 새로운 길을 열고, 후배들을 키우며, 삶의 현장에서 웃음을 실험했던 그의 발자취는 방송사 연혁 어디에도, 또 수많은 후배들의 기억에도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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