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서사 속 안정적인 연기로 호평

[더팩트ㅣ최수빈 기자] 익숙한 로맨스 공식 위에 판타지 설정을 얹은 '내 여자친구는 상남자'. 다소 낯선 이야기에 시청자들의 호불호가 생기는 가운데 한 배우의 존재감이 눈길을 끈다. 바로 신예 배우 유정후다. 탄탄한 연기력과 섬세한 표현으로 극의 중심을 단단히 붙든 그는 작품의 아쉬움을 딛고 오히려 자신의 가능성을 증명해 보이고 있다. '내 여자친구는 상남자'를 통해 발견한 가장 큰 수확은 유정후일지도 모른다.
유정후는 지난달 23일 첫 방송한 KBS2 수목드라마 '내 여자친구는 상남자'(극본 이해나, 연출 유관모)로 시청자들과 만나고 있다. 작품은 하루아침에 꽃미남이 돼버린 여자친구 김지은(아린 분)과 그런 여자친구를 포기할 수 없는 박윤재(윤산하 분)의 이야기를 그린다. 총 12부작으로 4회까지 방영됐다.
유정후는 성별이 바뀐 이후의 김지은인 김지훈 역을 맡아 여성이었던 캐릭터가 남성이 된 뒤 겪는 혼란과 정체성의 위기를 섬세하게 표현하고 있다. 단순한 로맨스 코미디를 넘어 성 전환이라는 낯선 설정 속 감정선과 인간관계를 어떻게 설득력 있게 그려내느냐가 작품의 핵심인 만큼 김지훈 캐릭터는 극 전체를 이끄는 중심축이기도 하다.
그 중심에서 유정후는 역할에 몰입하며 무게를 단단히 붙잡고 있지만 아쉽게도 작품 전체가 그 기대치를 온전히 받쳐주지는 못하고 있다. 전체적인 톤은 2000년대 초반 웹드라마의 향수를 자극할 만큼 낡은 전개로 흘러간다. 설정 자체는 흥미롭지만 이를 풀어가는 방식이 다소 진부해 설득력도 잃었다.

특히 일부 캐릭터의 연기력은 작품 전체의 몰입도를 떨어뜨리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현실감보다는 만화적인 톤에 가까운 인물들이 많고 연출 또한 그 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듯한 모습을 보여 극의 리듬을 끊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정후는 유일하게 정서의 흐름을 붙잡고 있다.
유정후는 본래 여자였던 김지은이 남자 김지훈이 됐을 때의 미묘한 감정선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단순히 목소리나 제스처를 여성스럽게 표현하는 수준이 아니라 여성 캐릭터로서의 내면과 눈빛 말투 습관 등을 남성의 몸에 그대로 담아내며 현실적이고 설득력 있게 표현했다. 정말 그 상황에 놓인 인물처럼 연기하다 보니 '실제 내가 이 상황이면 어땠을까?'라는 몰입을 하게 만든다.
특히 인물의 혼란과 불안을 담아낸 눈빛 연기가 인상적이다. 성별이 바뀌고 난 뒤에도 연인 박윤재를 향한 애틋한 감정을 담은 눈빛 그리고 사랑을 유지하려는 태도가 캐릭터에 깊이를 부여한다. 감정이 복잡하게 얽힌 장면들에서조차 과장되지 않고 절제된 표현을 유지해 캐릭터에 신뢰를 심었다.
그렇다 보니 상대 배우 윤산하와의 케미에서도 안정감을 보여준다. 상황에 따라 친구 같기도 하고 연인 같기도 한 미묘한 감정선을 유지하는 두 사람의 호흡은 이 드라마의 유일한 재미다. 특히 브로맨스 장면에서도 선을 잘 지켜내 독특한 상황을 불편하지 않게 만들었다.

유정후가 보여주는 연기의 또 다른 미덕은 섬세함이다. 여성의 몸에서 남성의 몸으로 바뀐 인물이라는 전제가 자칫 희화화되거나 어색하게 보일 수 있음에도 유정후는 행동 하나하나에 고민의 흔적을 남기며 캐릭터의 현실성을 높였다. 걸음걸이 손짓 말투 표정의 미묘한 변화까지 캐릭터 연구에 공을 들인 모습이 역력하다.
더 놀라운 점은 이처럼 탄탄한 연기를 보여주고 있음에도 유정후는 아직 신인 배우라는 점이다. 2022년 웹드라마 '배드걸프렌드'로 데뷔한 유정후는 '뉴 연애플레이리스트' '청담국제고등학교' '아씨두리안'을 통해 천천히 연기 스펙트럼을 쌓으면서 차근차근 계단을 밟고 있다. 이러한 면에서 유정후의 성장 가능성이 엿보인다.
'내 여자친구는 상남자'는 이야기와 연출 모두에서 아쉽다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 틈 사이로 자연스럽게 스며든 유정후의 존재가 오히려 선명하게 기억된다. 흔들리는 극을 단단하게 붙잡고 있는 유정후는 결과적으로 이 드라마가 남긴 가장 큰 수확이기도 하다.
유정후가 활약 중인 '내 여자친구는 상남자'는 매주 수, 목요일 오후 9시 50분 방송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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