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앨범 'Ordinary Grace' 발매..타이틀곡 '그래 맞아'
"받아들이고 있는 마음이 저랑 닮아있다고 생각"
[더팩트 | 정병근 기자] 가수 백지영의 가장 큰 무기는 목소리 그 자체에 담긴 처절하고 애달픈 정서다. 비교군조차 딱히 없어 백지영의 '이별 발라드'를 '독보적'이라고들 한다. 많은 이들이 백지영의 노래를 사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자신은 그런 노래들에 지치기도 한다지만 담담하게 불러도 슬프게 들리는 게 또 그의 목소리다. 그런데 마침내 그 접점을 찾았다.
2일 발매한 미니 앨범 'Ordinary Grace(오디너리 그레이스)'의 타이틀곡 '그래 맞아'가 그 접점을 보여주는 곡이다. "처량하고 청승맞은 (곡의) 여자주인공도 사랑하지만 사실 듣는 분들도, 부르는 저조차도 지친다"는 백지영은 좀 더 담백한 곡을 찾았지만 "아무리 담담하게 불러도 슬프단 얘기를 듣는다". 그런데 '그래 맞아'는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그래 맞아'는 '더는 바라지 말기로 해'라는 가사처럼 더 바랄 게 없이 완벽한 가창과 감성으로 한 글자씩, 한 음정씩 써 내려간 곡이다. '그래 맞아 아름다웠지'로 시작하는 이 곡은 '모든 순간에 그대와 함께 써 내려간 이야기들은 이윽고 마지막'이란 노랫말을 지나 '더는 아프지 않기로 해/다시 쓰여질 너와 나'로 이야기를 끝낸다.
"그간 불렀던 이별 노래들, 처량하고 가녀리고 청승맞은 여자주인공들도 사랑하지만 사실 들으시는 분들도 지치고 부르는 저조차도 지쳐요.(웃음) 그간 그런 곡을 찾진 않았는데 대중 가수다 보니 또 그럴 수만은 없었어요. 그런데 이번엔 원하는 걸 확실히 하려고 했음에도 (타협점에서) 많이 벗어나지 않고 좋은 곡을 만났어요."
제목과 가사 일부만 봐도 '그래 맞아'는 백지영의 대표 이별곡들이 품은 처절함과는 거리가 좀 있다. 백지영이 딱 원했던 곡이다. 그는 "너무 처량하고 가슴 아프고 슬픈 얘기보다 지금 내가 담을 수 있는, 조금은 담담하고 시간을 거슬러서 받아들이고 있는 마음이 저랑 닮아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다만 백지영의 목소리에 처량하고 애달픈 정서가 담겨 있다 보니 곡의 담담한 감성을 얼마나 잘 살릴 수 있을 지가 관건이었다. 백지영 역시 "항상 담담하게 부른다고 하는데 가장 많은 요구가 담담하게 부르라는 거다. 그게 좋은 건가 아닌 건가 고민을 하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도 "이 곡은 그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래 맞아'는 처음부터 모든 걸 인정하는 가사예요. 그 뒤에 나오는 '이윽고 마지막'이란 가사를 제일 좋아하는데 '그래 맞아'는 뜨거웠던 그 날들도, 헤어진 뒤 일상을 사는 나도 다 받아들이는 인정의 의미로 다가왔어요. 굉장히 담담한 소절이었고 그냥 그대로 담담하게 불렀어요. 그래서 특별히 더 담담하게 부르려는 큰 노력은 하지 않았어요."
그러면서도 백지영은 "그래도 슬프게 들린다면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사실 노래의 감상은 듣는 사람에 따라 다르고 또 그 사람의 기분에 따라도 다르다. 그래서 애달픈 목소리로 담담하게 부른 '그래 맞아'는 더 오묘한 감성을 품고 있다. 처절한 오열도 아니고 그렇다고 건조한 얼굴도 아닌, 눈물이 그렁하게 맺힌 눈을 바라볼 때 드는 감정이랄까.
"마음이 자신과 닮아다"는 것 외에도 '그래 맞아'가 특별한 이유는 또 있다. 바로 강타가 작곡한 곡이라서다. 심지어 송캠프 때 누가 쓴 곡인지 모르고 선택했는데 알고 보니 강타의 곡이었다. 백지영은 "나한텐 감동스러운 순간이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강타와 친하게 지냈고 술도 마시고 그런 옛날을 떠올려보면 지금 강타와 이런 작업을 하고 이런 날이 왔다는 게, 곡을 달라고 해서 받고 그런 게 아니라 우연하게 만난 게 감동적이었어요. 강타는 많이 놀라워하진 않았고 자신이 있어 보였어요. 가사를 히키가 썼는데 둘이 작업하면서 결과물에 서로 칭찬도 하고 그랬나 보더라고요."
이 앨범이 팬들에게 특별할 만한 요소도 있다. '그래 맞아'를 비롯해 하루의 망설임을 이겨내고 아껴둔 마음을 품어 그 문을 열기 바라는 마음을 담은 'Fly(플라이)', 순수한 모습과 찬란한 순간들에 대한 아쉬움과 회상하는 마음을 담은 '단잠', 삶의 무게에 지쳐 꿈꾸는 것조차 힘이 들 어른이들을 위로하는 '숨은 빛'까지 백지영이 직접 코멘터리를 남긴 것.
"SNS를 많이 이용하는 시대지만 전 잘 그러지 않았어요. 내뱉고 난 다음에 평생 후회할 자신이 있지 않으면, 전 글 쓰는 직업이 아니니까 안 써도 되잖아요. 그러면서 외면하기도 하고 넘어가기도 했던 거 같아요. 이번에 이렇게 제가 마음껏 써도 무방한 공간이 생겨서 용기를 내봤어요. 파장이 있을 글은 아니지만 솔직한 마음이었어요."
'Ordinary Grace' 앨범은 시기적으로도 의미가 있다. 바로 백지영이 데뷔한 지 25주년이 되는 해에 발매돼서다. "5나 10 단위로 끊는 게 사실 기념하기 위한 거고 그 앞뒤도 다 똑같다"는 백지영이지만 "제 인생에서 노래를 부르지 않았던 때보다 노래를 부른 때가 더 길어진 해다. 그런 면에서 특별하게 다가오긴 한다"고 말했다.
수많은 영광도 누렸고 우여곡절도 있었던 25년이란 그 시간들은 백지영을 더 단단하게 만들어줬다. 그래서 앨범의 성과에도 크게 연연하지도 않는다.
"성적도 관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너무 매 곡에 일희일비하고 싶지 않아요. 잘 되고 안 되고가 다음 작업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으면 하거든요. 곡을 냈을 때 성적이 좋지 않다는 건 기대에 못 미쳤다는 건데 의기소침하지 않고 지혜롭게 기다리는 게 필요한 거 같아요. 큰 텀으로도 큰 파도가 왔다갔다 하는데 어떻게 매일 흔들리면서 살아요.(웃음)"
백지영이 바라는 건 자신의 음악을 들은 사람들 중 누군가가 '위로를 받았다'는 느낌을 받는 것. "그런 반응이 있으면 너무 행복할 거 같다"는 백지영이다. 이는 그가 그려나가는 가수의 방향성과도 맞닿는다. 그는 "그렇게 대단한 가수가 아니더라도 '좋은 가수야' 그런 얘기를 들으면 뿌듯할 거 같다"고 말하며 특유의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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