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킬러스', 6년 만의 한국 스크린 복귀작
"배우로서 해보고 싶었던 결의 작품…연기는 애증"
[더팩트|박지윤 기자] '써니'(2011)에서 눈을 뒤집고 차진 욕을 구사하더니 '수상한 그녀'(2014)로 스무 살 시절로 돌아온 70세 할머니의 감정선을 완벽하게 표현하며 관객들을 매료시켰다. 이후 일본으로 활동 영역을 넓혀 굵직한 기록을 남기더니 한국 영화계에 용기 있는 작품이 될 옴니버스 영화로 돌아왔다. 배우로서, 그리고 사람으로서 아직 보여줄 얼굴과 매력이 많은 심은경의 발자취다.
심은경은 23일 스크린에 걸린 영화 '더 킬러스'(감독 김종관·노덕·장항준·이명세)에 출연해 열연을 펼쳤다. 그는 개봉을 앞둔 지난 21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있는 카페에서 <더팩트>와 만나 "설레는 만큼 긴장되네요"라고 오랜만에 한국 영화를 선보이게 된 소감을 전하며 작품과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이날 심은경은 블랙 수트를 입고 시크한 분위기를 자아내면서도 오랜만에 진행되는 인터뷰였던 만큼 긴장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9명의 취재진에게 수줍게 인사를 건넨 그는 "배우로서 언젠가는 한번 해보고 싶었던 결의 작품을 선보이게 돼서 기뻐요"라며 "다양한 장르와 방식의 시간에서 이야기하는 영화를 해보고 싶었거든요. 제 필모그래피에서 옴니버스 영화는 '더 킬러스'가 처음이에요"라고 '궁합'(2018) 이후 6년 만에 한국 영화로 돌아와서 설레는 마음을 드러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단편소설 '살인자들(The Killers)'을 모티브로 한 '더 킬러스'는 대한민국 대표 감독 4인이 각기 다른 시선과 스타일로 해석하고 탄생시킨 4편의 살인극을 담은 시네마 앤솔로지다.
작품에는 김종관 감독의 스타일리시한 감각을 볼 수 있는 '변신'부터 노덕 감독의 재기발랄함이 돋보이는 '업자들', 1979년을 배경으로 한 장항준 감독의 서스펜스 시대극 '모두가 그를 기다린다'와 이명세 감독의 누아르 '무성영화'까지 네 명의 감독이 각기 다른 시선으로 해석한 네 편의 단편 영화가 담겼다.
또한 윤유경 감독과 조성환 감독의 단편까지 총 6편으로 제작된 '더 킬러스'는 추후 온라인 VOD 및 OTT를 통해 확장판으로 6개의 작품을 모두 감상할 수 있다.
심은경과 '더 킬러스'의 인연은 이명세 감독의 러브콜로부터 시작됐다. 먼저 '무성영화' 출연 제안을 받았던 때를 회상한 그는 "동경하는 감독님이어서 무조건 하겠습니다'라고 했어요. 그 이후에 다른 감독님들이 대본을 주셨고 어쩌다 보니 제가 다 나오게 됐죠"라며 "이명세 감독님께서 배우를 통일해서 작품의 유기적인 흐름의 중심축을 잡아줬으면 좋겠다고 하셔서 6편에 다 출연하게 됐어요"라고 작품에 출연하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더 킬러스'를 만난 심은경은 '변신'에서 뱀파이어를 연기하고 '업자들'에서 영문도 모른 채 납치된 소민 역을 맡아 짧은 시간 안에 다양한 감정을 드러낸다. '모두가 그를 기다린다'에서 잡지 표지 모델이 된 그는 '무성영화'에서 괴짜 웨이트리스라는 개성 강한 캐릭터를 연기한다. 이렇게 심은경은 다채로운 얼굴과 함께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입증하며 네 작품을 모두 관통하는 유일한 배우로서 대체 불가한 존재감을 발산한다.
다만 '무성영화'는 대중성보다 예술성을 택해 보는 이에 따라 어렵고 난해하다고 느껴지는 구간이 있다. 그렇다면 심은경은 해당 글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준비했을까.
이에 그는 "대본을 처음 읽고 '이제 나도 예술을 할 수 있겠다'고 진심으로 생각했어요"라며 "글을 이해하려고 했는데 안 되더라고요. 그랬는데 감독님이 '다 이해할 필요 없어. 나는 가끔 영화의 이미지만 봐서 대사가 기억 안 나는 경우가 있어. 그런데 이것도 괜찮아'라고 하셔서 뭔가가 확 와닿고 이해됐어요. 머릿속을 비우고 백지상태로 가서 감독님의 말을 전적으로 따랐어요"라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심은경은 다른 감독들과 협업한 소감을 전했다. 감독들의 성대모사를 곁들이면서 말이다. 특히 장항준 감독과 놀라운 싱크로율을 자랑해 취재진을 놀라게 한 그는 "뱀파이어 역할에 열의가 많아서 김종관 감독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어요"라며 "'업자들'은 크랭크인 작품이라 상당한 부담감을 느꼈어요. 3~40분 안에 다양한 감정을 연기하는 게 저에게 도전이라 설렜는데 촬영 시점이 다가올수록 부담이 되더라고요. 사소한 것도 감독님에게 문자를 보내고 의견을 물으면서 준비했어요"라고 덧붙였다.
1994년생인 심은경은 2003년 MBC '대장금'으로 데뷔해 드라마 '황진이' '태왕사신기' 등에 출연하며 아역 배우로서 남다른 존재감을 발산했다. 이후 그는 영화 '써니' '광해, 왕이 된 남자' '수상한 그녀', 드라마 '내일도 칸타빌레' '머니게임' 등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오가며 탄탄한 필모그래피를 구축했다. 그리고 일본으로 활동 영역을 넓힌 심은경은 2019년 영화 '신문기자'로 제43회 일본 아카데미상 여우주연상을 받는 쾌거를 거뒀다.
어릴 때부터 해외 진출을 갈망했다는 그는 "제가 개척했다기보다 선배님들이 잘 갈고 닦아놓으신 거에 영향을 받았을 뿐"이라며 "일본에서 활동하면서 언어라는 벽에 부딪혔어요. 그래서 번역 대본을 완벽하게 숙지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소리 내면서 읽으면서 일본어를 달달 외웠어요. 그러면서 제가 지난날 잊고 있었던 연기 연습 방식을 떠올리게 해줬죠"라고 활동 영역을 넓히면서 새롭게 깨달은 부분을 언급했다.
"제가 예전에 찍은 드라마 대본이 집에 있는데 그걸 보니까 그때 제가 계속 반복하면서 연습했던 게 떠올랐어요. 성인이 되면서 연습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서 저만의 스타일을 찾으려고 했거든요. 그때 제 안에서 잘 갖고 있다가 현장에서 터뜨리는 날것의 연기를 보여주고 싶었는데 제 안에 맴도는 무언가가 느껴지더라고요. 충실했지만 화면에는 다르게 비쳤고요. 해답을 찾으려고 했는데 일본에서 준비하면서 깨달았어요. 대본을 읽다 보면 전체가 보이거든요. 제가 전체를 바라봤어야 했더라고요. 연습의 중요성과 연기하는 관점을 다시금 상기하게 되는 계기가 됐어요."
어느덧 데뷔 21년 차가 된 심은경이다. 삶의 반 이상을 배우로서 살아가고 있는 그에게 연기는 어떤 존재일까. 잠시 고민에 빠진 심은경은 '애증 관계'라는 답을 내놓았다.
"어렵고 미울 때도 많고 아직도 해야될 게 많아요. 정의를 내릴 수 없는 무형의 어떠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처음에는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했어요. 성격을 바꾸기 위해서 연기 학원에 다녔는데 재밌더라고요. 열정이라는 감정을 처음 느꼈고 무언가를 끝까지 해보고 싶다고 느끼게 된 계기가 됐어요. 하지만 '과연 내가 적합한 배우인가?'라는 생각이 끊임없이 들어요. 지겹지만 또 빠지게 되는 애증의 관계죠."
끝으로 심은경은 자신의 필모그래피에 처음 새겨진 옴니버스 영화 '더 킬러스'에 관해 "블랙 코미디도 있고 잔인한 장면도 있고 실험적인 고전도 있어요. 한 편의 영화에서 다채로운 걸 즐길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매력"이라고 자신하며 많은 관람을 독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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