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풍'으로 30년 만에 드라마 복귀
박동호 役 열연, 마지막까지 강렬한 인상 남겨
[더팩트ㅣ김샛별 기자] 딱 30년이 걸렸다. 배우 설경구가 다시 한번 드라마를 선택해 긴 호흡의 연기를 보여주기까지 말이다. 의도적으로 피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시간이 쌓이다 보니 드라마에 대한 선입견이 절로 생겼다. 그렇게 점점 멀어졌던 드라마였지만 '돌풍'으로 인해 단숨에 마음의 거리를 좁혔다. 이제는 드라마를 선택하는 데 있어 망설임이 없다는 설경구다.
설경구는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더팩트>와 만나 넷플릭스 시리즈 '돌풍'(극본 박경수, 연출 김용완) 관련 인터뷰를 진행했다. 극 중 박동호 역을 맡은 그는 이날 작품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전했다.
'돌풍'은 세상을 뒤엎기 위해 대통령 시해를 결심한 국무총리와 그를 막아 권력을 손에 쥐려는 경제부총리 사이의 대결을 그린 넷플릭스 시리즈다. '추적자 THE CHASER(더 체이서)' '황금의 제국' '펀치'로 '권력 3부작'을 선보인 박경수 작가가 7년 만에 내놓은 신작이다.
설경구는 부패한 세력을 쓸어버리기 위해 기꺼이 손에 피를 묻히기로 결심한 국무총리 박동호 역을 맡았다.
앞선 제작발표회에서 설경구는 김희애 매니저를 통해 이번 작품을 처음 알게 됐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인터뷰에서 당시 상황을 조금 더 자세히 들려줬다. 설경구는 "'보통의 가족' 촬영 때였다. 두 매니저가 뒤에서 자기들끼리 '돌풍'이라는 작품을 두고 이야기를 했나 보더라. 마침 김희애의 매니저가 우리 매니저에게 '혹시 선배님 드라마도 하실 생각이 있냐'고 물었고 매니저가 이 이야기를 내게 들려줬다. 그러면서 자신이 먼저 책을 읽었는데 재미있다고 하더라. 그래서 제작사를 통해 정식으로 대본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설경구 역시 '돌풍'에 빠져들었다. 그는 "처음에는 5부까지 받았는데 시해 장면으로 시작하는 게 충격적이었다. 그래서 오히려 재밌었다. 한 대 먼저 때리고 시작하는 느낌이었다"고 돌이켰다.
그러나 출연 결정까지는 쉽지 않았다. 고민이 많았기 때문이다. 설경구는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라고 느꼈다. 안 한다면 아쉽겠지만 하기에는 내가 드라마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던 것 같다"고 털어놨다. 그는 "아무래도 영화와 다른 환경이지 않나. 때문에 지레 겁을 먹었다. C팀까지 도는 촬영 환경이면 배우는 죽어난다고 생각해 익숙하지 않아서 자신이 없었다"고 말했다.
"고민하고 있던 찰나에 김희애 씨가 빨리 결정하라고 엄청난 푸시를 넣었죠. 사실 박경수 작가가 쪽대본을 준다고 해서 감당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는데 제작사에서 절대 그럴 일 없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믿고 결정했어요. 저 역시 '그래, 책 좋은데 이 기회에 그냥 한번 도전해 보자'라는 마음이었죠."
그렇게 설경구는 데뷔 후 무려 30년 만에 드라마에 참여했다. 주연으로서는 처음이었다. 그리고 이 작품을 통해 많은 선입견이 깨졌다는 설경구다. 그는 "겁먹었던 것에 비하면 생각보다 할 만 했다. 무엇보다 캐릭터가 캐릭터인지라 내가 만나러 다니지 않고 모두가 나를 보러 들어오지 않나. 그래서 좀 편했던 것도 있는 것 같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그렇다고 쉬운 역은 아니었다. 일단 대사량부터 압도적이었다. 설경구 역시 "지금까지 했던 작품 중 가장 많은 대사였다"고 밝혔다. 그는 "대본 한 페이지가 가득할 정도였다. 더군다나 평소에 절대 안 쓰는 단어들이 많았다. 농담으로 '밥 먹었니'라는 말을 하고 싶다고 말할 정도였다"며 "영화와 달리 드라마는 대사로 진행이 되다 보니 더더욱 말에 매달렸던 것 같다. 내일 촬영을 위해 오늘 이 장면만 외워서는 될 게 아니더라. 그래서 책이 나온 순간부터 손에서 대본을 놓지 않았다. 계속 반복해서 보며 미리미리 입에 붙여놔야 했다. 솔직히 굉장히 부담스러웠다"고 돌이켰다.
'돌풍'은 명대사가 많으며 말맛이 넘치는 작품이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설경구는 박동호의 시작점인 '당신이 만든 미래가 역사가 되면 안 되니까'가 가장 인상 깊었다고 밝혔다. 다만 회차 내내 반복되는 만큼 뒤로 갈수록 다소 질리긴 했단다. 그는 "가장 기억에 남는 대사다. 하지만 뒤로 갈수록 계속 나오니까 가끔은 이제 그만 나와도 될 텐데, 좀 빼도 됐을 텐데 싶은 순간이 있긴 했다"는 너스레로 웃음을 안겼다.
박동호의 마지막은 충격적이었다. 이에 대한 생각은 어땠을까. 설경구는 "좋은 결말이 아닐 거라고는 어느 정도 예상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독할 줄은 몰랐다"고 밝혔다.
"참 지독하게 보낸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박동호도 지독하죠. 마지막까지도 정수진의 눈을 보며 떨어지잖아요."
설경구는 함께 호흡을 맞춘 김희애에 대한 존경심을 표하기도 했다. 그는 "김희애가 벌써 데뷔 42년 차다. 정말 대단한 배우라고 생각한다"며 "리허설 때도 촬영하는 것처럼 연기를 할 정도로 정말 열심히 준비를 해서 온다"고 밝혔다.
"매 장면 '혈투'인 것처럼 촬영을 했어요. 한 번씩 장면을 찍고 나면 힘이 빠질 때도 많았죠. 그만큼 서로 감정을 놓치면 안 된다고 생각할 정도로 촬영에 임했어요. 각자의 연기 때도 카메라 밖에서 서로 죽일 듯이 똑같이 연기를 해줄 정도였어요. 덕분에 그 감정선이 제대로 담긴 것 같아요."
드라마의 선입견이 깨졌다는 설경구는 차기작 또한 OTT 시리즈로 결정했다. 제작 환경에 대해서도 많이 놀랐다는 그는 선입견이 깨진 만큼 이제는 작품 결정에 있어 거리낌이 없어졌다고 밝히기도 했다.
"'돌풍'을 막상 하고 나니 '별거 아니네'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벽이 없어진 기분이에요. 이제는 망설임 없이 드라마를 선택하는 것 같아요. 반대로 연기적으로는 무기 하나를 뺏긴 기분이에요. 모든 배우가 그렇지 않을까요. 이번 작품에서 보여준 모습을 다음 작품에서 또 보여드릴 수는 없잖아요. 오히려 피해야겠다는 생각이죠. 그러니 이번 작품 역시 잘 정리해서 보내주고 다음에는 또 다른 카드를 들고 찾아오겠습니다. 그게 배우가 할 역할이자 책임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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