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주의자 5층 役
"인생 너무 짧아…스스로 아껴주고 싶어"
[더팩트ㅣ최수빈 기자] 문정희에게 'The 8 Show(더 에이트 쇼)'는 어깨가 무거워지는 작품이었다. 결코 쉬운 역할이 아니었던 만큼 배역을 소화하기 위해 정말 많은 노력을 했고 힘든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그만큼 깨달은 바도 많아 뿌듯한 시간이었다. 이를 자양분 삼아 앞으로도 좋은 작품과 배역으로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자 하는 문정희다.
문정희는 최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더팩트>와 만나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The 8 Show'(극본·연출 한재림)와 관련한 이야기를 나눴다. 모든 참가자를 존중하는 평화주의자지만 막판에 큰 반전을 가져온 5층을 연기한 문정희는 "연기하는 게 쉽지 않은 캐릭터였다. 하지만 시청자분들께 납득시키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고 회상했다.
'The 8 Show'는 8명의 인물이 8층으로 나뉜 비밀스러운 공간에 갇혀 '시간이 쌓이면 돈을 버는' 달콤하지만 위험한 쇼에 참여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총 8부작으로 지난 5월 17일 전편 공개됐다. 공개 직후부터 많은 사랑을 받은 이 작품은 공개 2주 차에 넷플릭스 글로벌 톱10 시리즈(비영어) 부문 1위에 등극하는 기염을 토했다.
문정희가 연기한 5층은 모두가 갈등 없이 잘 지내기를 바라는 쇼의 평화주의자다. 천사 같은 마음씨로 참가자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불화를 중재하며 주변을 항상 챙기지만 한편으로는 다소 답답한 면모도 있다. 모두가 행복하고 평화로운 분위기에서 쇼를 이어가고 싶지만 마음처럼 쉽지 않다.
5층은 분쟁이 발생할 때마다 중간에 나서서 타협을 돕기도 하고 누군가가 다쳤을 때 지극정성으로 보필하기도 한다. 언뜻 보면 평화주의자처럼 보이지만 문정희는 "그게 전부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겉으로 보면 친절한 여자지만 내면에는 다른 모습을 숨기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의문스러운 분위기를 항상 풍기고 있는 것처럼 보였죠. 5층은 절대 자기한테 손해가 되는 행동은 하지 않아요. 항상 친절을 베풀고 모든 사람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지만 막상 본인이 피해를 볼 것 같은 상황에서는 나서지 않죠. 계단을 오를 때도 5층은 다리가 불편한 1층(배성우 분)을 안타까워만 하지 절대 대신 뛰어주지는 않거든요."
이러한 의문점이 가득한 인물이기에 문정희는 연기하는데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 한재림 감독도 5층에게 숨겨진 뭔가가 있었으면 하는 느낌을 계속 주길 원했다고. 문정희는 친절함과 의문스러움 그 사이의 타협점을 찾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5층은 내가 누군가의 고통을 공감하고 있을 때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사람인 것 같아요. 고통을 공감함으로써 만족감을 느끼는 거죠. 그래서 2층(이주영 분)이 8층(천우희 분)과 4층(이열음 분)을 풀어줬다는 환각에 휩싸이고 그들에게 환하게 웃으면서 손을 흔들잖아요. 그러다 결국 6층(박해준 분)에게 가죠. 이런 모습이 자칫 잘못하면 되게 답답하고 별로처럼 느껴질 수 있으니까 그 중심을 잡으려고 정말 많이 노력했던 것 같아요."
이러한 많은 노력을 한 문정희이기에 유난히 기억에 남는 장면도 있었다. 환각에 싸였던 5층이 6층에게 가서 "2층이 모두 다 풀어줬다"고 고백하는 장면이다. 이때 눈치가 빨랐던 6층은 그게 5층의 환각이라는 점을 깨달은 뒤 그를 회유하기 시작한다. 문정희는 이 장면을 "습한 느낌"이라고 표현했다.
"늪으로 빠져드는 것 같았어요. 좀 질척였던 것 같기도 하고요.(웃음) 원래 2층이 풀어줬다는 걸 얘기하러 간 건데 이때 6층이 5층을 안으면서 진한 숨소리를 내요. 그때 5층의 모드가 성적인 걸로 바뀌었던 것 같아요. 5층은 왕게임을 할 때도 성적인 에너지를 가감 없이 표현하는데 이 장면에서 극대화된 게 아닌가 싶어요. 5층의 이러한 행동으로 인해 아래층의 혁명이 깨지고 모두가 다 망가지게 되니까 이 장면이 저한테는 가장 중요한 장면이었죠."
문정희는 그간 영화 '숨바꼭질' '연가시' '판도라' 등 다양한 작품으로 관객들과 만나왔으나 대부분 캐릭터가 아픈 서사를 갖고 있는 어둡고 쉽지 않은 역할이었다. 'The 8 Show' 또한 마찬가지. 다른 작품에 비해 인물의 서사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아니었지만 5층 또한 나름의 사연을 갖고 이 쇼에 참여하게 된 인물이다. 그리고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그의 숨겨져 있던 '복수'에 대한 열망이 극대화되기도 했다. 쉽지 않은 배역인 만큼 무거운 책임감도 느꼈다.
"제가 중심을 정말 잘 잡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감독님께서는 5층을 현실적인 인물로 표현하길 원하셨어요. 너무나도 다른 8명의 참여자들 사이에서 유기적으로 잘 돌아갈 수 있는 윤활제 역할을 5층이 한다면 성공적일 것 같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이 배역이 사랑스러운 역할은 아니지만 잘하고 싶은 욕심도 생겼던 것 같아요. 사실 감독님께서 저를 믿어주시는 게 너무 잘 느껴져서 더 자신 있게 연기했던 것도 있죠.(웃음)"
1998년 극단 학전에서 연극 '의형제'로 데뷔한 문정희는 어느덧 데뷔한 지 20년이 넘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다양한 작품 속 다채로운 색깔을 가진 역할을 연기하고 끊임없이 도전하는 중이다. 그에게 있어 연기는 "나를 사랑하는 방법 중 하나"였다.
"시간이 지나니까 인생이 너무 짧다는 게 느껴졌어요. 그러다 보니 스스로를 아껴주고 싶다는 생각이 참 많이 들었던 것 같아요. 나를 사랑할 줄 아는 노력은 누구에게나 훈련이 돼야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저도 힘들었던 시기를 충분히 많이 지나왔죠. 하지만 매일매일이 너무 소중하니까 '우리에게 주어진 똑같은 이 시간을 어떻게 잘 쓸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항상 해요. 저도 한계라는 건 있는 사람이니까 문제들을 빨리 필터링 해나가면서 방향성을 잡고 연기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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