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수: 더 그레이'서 특수 전담반 팀장 준경役
과한 연기톤→어색한 액션으로 '시끌'
[더팩트ㅣ최수빈 기자] 출산 3개월 만에 '기생수: 더 그레이' 촬영을 시작할 정도로 열정이 가득했던 이정현. 그러나 오히려 독이 됐다. 맞지 않은 옷을 입은 듯한 캐릭터, 과한 설정으로 작품의 흥행 성적만큼 시끄러운 연기력 논란이다.
이정현은 지난 5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기생수: 더 그레이'(극본·연출 연상호)로 시청자들과 만났다. 작품은 인간을 숙주로 삼아 세력을 확장하려는 기생생물들이 등장하자 이를 저지하려는 전담팀 '더 그레이'의 작전이 시작되고 이 가운데 기생생물과 공생하게 된 인간 수인(전소니 분)의 이야기를 그린다.
'기생수: 더 그레이'는 30개 이상의 지역과 국가에서 누적 판매 2천5백만 부 이상을 기록한 이와아키 히토시의 만화 '기생수'를 원작으로 한다. 기생생물이 인간의 뇌를 장악해 신체를 조종한다는 기발한 상상력과 철학적인 메시지로 많은 사랑을 받은 작품이기에 '기생수: 더 그레이'를 향한 기대는 컸다.
작품은 국내를 넘어 글로벌 시청자들까지 사로잡았다. 지난 10일 넷플릭스 톱10 차트에 따르면 '기생수: 더 그레이'는 공개 이후 3일 만에 630만 시청 수를 기록해 글로벌 톱10 시리즈(비영어) 부문 1위에 등극했다. 또한 대한민국 말레이시아 필리핀 톱10 1위를 비롯해 아르헨티나 프랑스 독일을 포함한 총 68개 국가에서 톱10에 이름을 올렸다.
이같은 흥행에 발목을 잡은 건 이정현의 연기였다. 이정현은 극 중 기생생물 전멸을 위해 모든 것을 건 전담반 '더 그레이' 팀의 팀장 준경 역을 연기했다. 남편을 빼앗아 간 기생생물에게 강한 적개심을 가진 준경은 기생생물들을 쫓던 중 인간도 기생생물도 아닌 변종 수인을 발견하고 그를 집요하게 쫓기 시작한다.
준경은 작품 속에서 가장 영향력 있고 중요한 인물로 작용한다. 기생생물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위해서는 준경의 남편이 기생생물로 변하는 서사가 필요했다. 준경의 남편은 기생생물을 유인하는 도구로 쓰였으며 준경은 그 모든 작전을 지휘하고 기생생물과 대립한다.
이정현은 앞서 진행된 제작발표회에서 준경을 "평범하지 않은 캐릭터다. 기생생물 죽이는 걸 게임으로 생각하는 열정적이고 강렬한 인물이다"라고 설명했다. 남편의 복수를 위해 그 누구보다 기생생물 잡는 것에 열의를 다한다.
그 열정이 너무 과했던 탓일까. 모든 연기가 과하거나, 어색하다. 1회에서 준경이 남일경찰서에게 기생생물의 존재를 브리핑하는 장면은 마치 유치원생을 모아다가 연극을 하는 것 같다. 준경의 브리핑이 시작되자 철민(권해효 분)은 "유치원 재롱 잔치냐"고 언급한다. 이 대사가 의도적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일각에서는 철민의 대사가 시청자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 같다는 의견을 내비친다.
이정현의 목소리는 과하게 하이톤이며 어색하다. 연상호 감독은 이와 관련해 "'가짜 광기'라는 가면을 쓰고 있는 인물"이라고 표현했지만 광기보다는 오버하는 느낌이 든다. 기생생물이 등장해 인간들을 점령할 수 있는 위험한 상황임에도 이정현의 튀는 목소리로 인해 분위기가 장난스럽게 변질된다. 수사가 진행되고 기생생물을 잡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로 작용할 인물이 잘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듯 작품의 몰입도를 떨어트린다.
표정 변화도 부자연스럽다. 기생생물을 잡으러 출동하는 현장이나 수사본부에서 사건 파일을 보는 상황에서도 시종일관 미간에 억지 주름을 짓고 있다. 또한 체형이 작은 편에 속함에도 늘 긴 트렌치코트를 입고 나온 채 자신의 몸집만 한 장총을 쏜다. 기생생물로 인한 피해를 직접 경험했기에 '광기' 가득한 눈빛과 행동으로 싸워야 하지만 부자연스러운 표정 연기에 버거워 보이는 장총이 합해지니 액션 장면 자체가 어색하게 느껴질 뿐이다.
한편에서는 이러한 연기가 감독의 잘못된 디렉팅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1996년 영화 '꽃잎'(감독 장선우)으로 데뷔한 이정현은 그간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넘나들며 필모그래피를 차곡차곡 쌓아왔다. 특히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감독 안국진)에서 정수남 역을 맡은 그는 사랑스러움 뒤에 숨겨진 광기로 뛰어난 연기력을 보여줘 2015년 제36회 청룡영화상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은 바 있다. 이미 여러 작품을 통해 연기력을 인정받았기에 본인과 맞지 않는 배역, 상황과 알맞지 않은 디렉팅 등의 이유로 이정현이 제대로 소화하지 못했을 거라는 지적이다.
게다가 준경 역은 원작에는 없는 역할이다. 원작에 없는 캐릭터가 사건을 전개하는 중요한 인물로 등장하면서 납득하기 어려운 서사가 더해졌기에 이정현이 배역을 완벽히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는 반응도 있다. 앞서 이정현도 "처음에 콘셉트 잡을 때 너무 힘들어서 감독님과 상의를 많이 했다"고 솔직하게 말한 바 있다.
출산 후 14kg을 감량하고 3개월 만에 '기생수: 더 그레이' 촬영을 시작한 이정현. 장총을 사용하는 장면을 위해 3kg 아령을 항상 가지고 다니는 등 작품을 향한 엄청난 열정을 보여준 그이기에 이러한 논란이 아쉽게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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